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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질문맹률 소동의 오해와 진실

입력 2022.09.29 03:00

수정 2022.09.29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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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온 나라는 ‘국민 실질문맹률’ 보도로 난리법석을 떨었다. ‘심심한 사과’라는 말을 ‘심심하다’라는 뜻으로 오해하는 등의 사소한 이유가 발단이 되었고, 급기야 이런 청년들을 ‘실질문맹자’로 몰아세우기도 했다. 어떤 매체는 한 술 더 떠서 한국의 ‘실질문맹률’이 75%에 이른다는 심각한 오보를 냈고, 적지 않은 언론들이 검증이나 자료 확인 없이 그 기사를 그대로 베껴썼다. 이런 일련의 사건들은 얼마나 우리 언론들이 문해에 대해 낮은 감수성을 가지고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이참에 문해에 관한 몇 가지 오해를 풀어 본다.

한숭희 서울대 교육학과 교수

한숭희 서울대 교육학과 교수

첫째, 언론에서 거리낌 없이 사용하고 있는 문맹률이라는 표현은 비문해율로 표기하는 것이 맞다. 문맹이라는 표현은 이른바 문자생활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을 얕잡아 보는 말이다. 게다가 인간을 ‘문해자’와 ‘비문해자’로 가르는 기준은 절대적이지 않다. 문해율은 하나의 숫자로 제시할 수 있는 단일 개념이 아니며, 마치 건강한 사람과 건강하지 않은 사람을 나누는 기준이 하나가 아닌 것과 같다.

둘째, 문해조사 자체가 여러 문항으로 이루어진 시험과 같아서 한 개인의 문해력은 등간의 연속적인 점수 분포 가운데 어느 위치로 나타난다. 그 가운데 어디인가를 임의적으로 나누어 편의상 문해자와 비문해자를 구분한다. 대개 1~5개 정도의 수준별 급간으로 나누게 되는데, 이 중에서 하위 1단계의 경우 실질적으로 문해생활이 불가능하거나 혹은 제한적일 수 있기 때문에 이를 통상 비문해자로 분류하는 경우가 있다.

셋째, 문해는 한 가지 잣대로만 재는 것이 아니다. 흔히 말하는 언어 문해력과 함께 수리이해력, 문제해결력, 디지털 문해력, 문화적 문해력, 전문가 문해력 등 다양한 종류의 문해 개념이 존재한다. 우리가 말하는 문해력은 주로 언어 문해력만을 지칭하고 있지만 OECD 등 국제적 추세는 문해 개념을 확장하여 포괄적인 핵심역량(skill 혹은 competencies)과 동격으로 이해한다.

넷째, 문해력의 수준을 측정하는 방식도 조사방법과 목적에 따라 들쭉날쭉하다. 교육부가 2020년 조사한 성인문해능력조사에서는 전체 인구의 79.8%가 최고 수준인 4단계 문해력 소유자로 분류된 반면, 2013년 OECD의 성인역량조사는 우리나라 하위 1~2 단계 문해력을 가진 사람들의 비율이 전체 인구의 50%에 가깝다고 했다. 그중에서 노인층으로 갈수록 하위 1단계에 속한 인구비율이 급격히 높아진다.

돌이켜 보면,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국가는 비문해자들을 거의 버려두다시피 했다. 이들은 일종의 투명인간이었다. 그 실체가 드러날 것이 두려워서 제대로 된 문해조사 한번 하지 않았고, 한국인의 문해율이 90% 이상이라고 국제사회에 선전해 왔다. 그러면서도 국가가 방기한 비문해자들을 위한 제대로 된 문해조사나 교육사업에는 인색했다. 가난과 차별 때문에 기초교육도 받지 못하고 일터로 내몰렸던 청년들이 이제 나이를 먹고 고령자 반열에 들어섰다.

지난 시간 교육부는 학교교육 문제에 끌려다니느라 국가 전체 인구의 문해력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한국인의 문해력이 생각보다 높지 않다는 점을 솔직히 인정하고 대책을 마련하는 일은 이제 더 이상 미루어져서는 안 된다. 지난 OECD 조사에서 전체 성인인구의 절반이 2단계 문해력 이하의 성적표를 받아들었던 점도 곱씹어 보아야 한다. 2단계 문해력이란 짧은 분량의 문장 안에 기술된 단순한 사실을 파악하고 답하는 능력을 말한다. 반면 3단계 문해력은 여러 페이지 분량의 문서에 담긴 복합적인 요소들을 분석하고 이해하는 능력을 말한다. 이 말은 결국 한국 성인의 절반이 복합적인 내용의 문서를 읽고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뜻이다.

청소년 혹은 청년층의 경우도 문해 논란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작년에 OECD가 수행한 만 15세 청소년들의 디지털정보문해력조사에서 드러난 점은 한국 청소년 4명 중 3명이 오피니언과 팩트의 차이를 구분할 줄 모른다는 것이었다. 만일 정말로 한국 국민들이 ‘주장’과 ‘사실’을 구분하지 못하거나 복합적인 문서 이해력 부재를 경험하고 있다면 이것은 결코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특히 낙후된 정치문화와 관련해 볼 때, 국민 문해력 수준의 전체적 업그레이드가 없다면 시시때때로 등장하는 가짜 뉴스, 속빈 선거공약, 부풀려진 정책 등 지긋지긋한 후진적 정치행태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혹시 최근 벌어지고 있는 윤석열 대통령의 사적 비속어 파문이 쉽게 끝나지 않는 이유도 이런 배경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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