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삶

공감·연결·유대···문학은 다정한 네트워크

김종목 기자

다정한 서술자

올가 토카르추크 지음·최성은 옮김│민음사│378쪽│1만5000원

올가 토카르추크가 ‘문학과 글쓰기’에서 강조하는 건 공감, 교감, 연결이다. 그는 쓰기보다 읽기에 우선 몰두하라고 조언한다. 사진 Karpati & Zarewicz / ZAiKS

올가 토카르추크가 ‘문학과 글쓰기’에서 강조하는 건 공감, 교감, 연결이다. 그는 쓰기보다 읽기에 우선 몰두하라고 조언한다. 사진 Karpati & Zarewicz / ZAiKS

노벨문학상 수상자, 12편 묶어 첫 에세이
SNS 등 다중음성이 폭발하는 세계,
고유 언어 잃은 사람들
“다정함과 이타심 함께 하는 문학이
치유할 수 있어”


“나는 많은 이에게 문학이 단순한 오락거리로 취급되고, 그저 ‘읽을 만한 책’ 정도로 요약되며, 설사 문학이 없더라도 다수가 행복하고 충만한 삶을 살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안다.”

2018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 올가 토카르추크의 말이다. ‘문학이 없어도 좋은 세상’을 둘러싼 풍경은 어지럽다. 요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엔 “내가 어디에 갔는지 말해 줄게” 같은 일인칭 서술이 넘쳐난다. “트위터와 블로그, 미디어마다 다양한 일인칭 서술자가 서로를 향해 소리를 질러대는 다중 음성의 세계”다. 토카르추크는 “우리는 지금 전례 없는 과정, 즉 ‘나’라는 이름의 글쓰기 주체가 점점 비대해져 가는 과정을 목격하고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나’는 마치 독을 품은 나팔꽃처럼 다른 관점들을 질식시키기 시작”했다. 작가들마저 종종 “지나치게 커진 자아”를 드러낸다.

이 현상을 마냥 부정하고 비판할 순 없다. “과거에는 소수에게만 국한되었던, 말과 이야기로 자신을 표현하는 능력을 다수가 보유하게 되면서 발생한 대대적인 현상”이기 때문이다. ‘일인칭 서술’ 덕에 “세상은 우리가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하는 영웅이나 신들의 공간이 아니라 우리 개인의 이야기들이 메아리치는 곳”이 됐다. “서술자와 독자 혹은 청자 사이의 공감에 기반한 새로운 유형의 정서적 교감이 싹트게 되었고, 덕분에 우리는 타인을 나와 동등한 인간으로 여기며 더 쉽게 동일시”하게 됐다.

지금의 현상은 “이목을 끌기 위해 너도나도 경쟁하는 목소리들이 포개어진 채 유사한 음역대에서만 맴돌며 결국 서로의 음성이 들리지 않을 정도로 동시에 시끄럽게 소리를 질러대는” 솔리스트들로만 구성된 합창단과 흡사하다.

공적인 영역의 언어는 어떤가. 토카르추크는 “인간이 자신의 고유한 언어를 잃고 집단의 언어가 사적인 언어를 모조리 집어삼키는 것보다 더 무서운 질병은 없다. 관료, 정치인, 학자, 성직자들이 바로 이러한 질병을 앓고 있다”고 말한다. 문학의 상품화도 가속한다.

토카르추크는 이런 세상을 치유하는 게 결국 ‘문학’이라고 본다. 강연록과 에세이 12편을 묶은 이 책을 꿰는 건 ‘문학과 글쓰기’인데, 그가 내내 강조하는 건 ‘공감’ ‘교감’ ‘연결’ ‘통합’ ‘타인’ 같은 말이다.

토카르추크가 보기에 문학은 내밀하고 사적인 것이 아니다. 문학은 “타인의 시각, 그리고 개인의 고유한 정신을 통해 여과된 세계관을 이해하게 해 주는 ‘참깨’”이자 “개별적이면서도 특별한 자신만의 언어가 타인의 언어와 만나는 가장 독창적인 순간을 의미”하는 것이다. 문학은 “사적인 것들이 공적인 것들로 탈바꿈하는 공간”이자 “개인들이 경험을 상호 주고받는 토양”, “민주적인 공간”이다. “하나의 존재를 구성하는 모든 개체 사이에 광범위한 교감과 연결”하기 때문에 “문학은 본질적으로 ‘네트워크’와 유사”하다. 문학은 결국 “인류의 경험이 하나로 통합된 공동의 심리적 실체인 우누스 문두스(unus mundus·라틴어로 ‘하나의 우주’ ‘통일된 세계’를 뜻한다)”이다.

“세상에 관한 이야기를 직조하는 끊임없는 과정”인 문학을 두고 토카르추크는 “상호 간의 영향과 연결이라는 통합적 관점으로 세상을 조망하는 에너지가 문학만큼 강력한 장르는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문학은 소통과 유대 형성을 위한 이타적인 도구다. 토카르추크는 “문학에는 항상 일종의 이타심이 함께한다고 믿는다”고 말한다. 그 이타심이라는 건 “보편적인 다수의 시각에서 봐도 그 자체로 가치가 있는 뭔가를 쓰고 싶어” 하는 마음과 뜻이다.

올가 토카르추크. Karpati & Zarewicz / ZAiKS

올가 토카르추크. Karpati & Zarewicz / ZAiKS

문학론 곳곳에 이어지는 건 ‘다정함’의 철학과 글쓰기 방법론이다. 토카르추크는 “기차역이나 호텔, 노점에서 뒹구는 일상적이고 보편적인 예술이어야 한다. 문학은 거리에서 체득한 생활의 지혜와 같은 현명함을 갖고 있어야 한다”며 화려한 문체에 대한 유혹이나 지적 허세를 피해야 한다고 말한다.

“글을 쓸 때 나는 내 안에서 모든 것을 생생히 느껴야 한다”고도 했다. “책에 등장하는 모든 생명체와 사물, 인간의 영역에 속한 것과 인간이 아닌 존재에 관한 것, 살아 있는 것과 생명이 주어지지 않은 것, 이 모든 것이 반드시 나를 통과해야 합니다. 사물이든 사람이든 가까이에서 하나하나 주의 깊게 살펴보고, 내 안에서 그것을 의인화하고 인격화해야 합니다.”

토카르추크는 이런 글쓰기를 할 때 도움을 주는 것으로 ‘다정함’을 꼽았다. 복음서에 나오지 않고, 맹세하는 사람이나 인용하는 사람도 딱히 없으며, 특별한 로고나 상징물도 존재하지 않는 종류의 “가장 겸손한 사랑의 유형”이다. 이 다정함은 “대상을 의인화해서 바라보고, 감정을 공유하고, 끊임없이 나와 닮은 점을 찾아낼 줄 아는 기술”이자 “(인간들이) 겪었던 상황들과 기억들로 대표되는 이 세상의 모든 작은 조각과 파편들에 존재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고, “다른 존재, 그들의 연약함과 고유한 특성, 그리고 고통이나 시간의 흐름에 대한 그 존재들의 나약한 본질에 대해 정서적으로 깊은 관심을 표명하는 것”이다.

“인간의 가장 정교한 소통 방식”인 다정함은 “우리를 서로 연결해 주는 유대의 끈을 인식하고 상대와의 유사성 및 동질성을 깨닫게 해” 준다. 다시 문학이란 “우리와 다른 모든 개별적 존재에 대한 다정함에 근거”하는 것이다.

책 제목인 ‘다정한 서술자’는 노벨 문학상 수상 기념 연설 제목이기도 하다. ‘다정한’으로 수식되는 서술자의 역할과 책임은 무엇인가. 토카르추크는 “하느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라고 적은 “감히 신의 생각을 미루어 짐작했던 (<구약>의) 서술자”를 거론한다. 그는 신학적 의문점을 제쳐 두고 이 서술자의 “모든 것을 볼 수 있는 관점과 시각”을 분석한다. 신 못지않은 시각의 전지전능을 말하려는 게 아니다.

책 내내 강조한 말이 다시 나온다. “모든 것을 본다는 것은 존재하는 모든 것이 서로 연결되어 하나의 전체로 결합된다는 궁극적인 사실을 인정한다는 의미입니다.” 이는 또 “‘이곳’에서 이루어지는 개별적인 행위들이 ‘저곳’에서 벌어지는 다른 행위들과 서로 연결되어 있고 세계의 어떤 지역에서 내린 결정이 다른 지역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다정한 서술자’는 결국 “총체적이면서 통합적인 사인칭 서술자”이기도 하다.

“‘사인칭’이란 단순히 문법적인 구조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각 등장인물의 다양한 시각을 포괄하면서 동시에 개별적인 시각의 지평을 넘어설 수 있는 시점을 말합니다. 더 많이, 더 넓게 조망하고, 시간을 과감히 무시할 수 있는 그런 서술 방식 말이죠.”

토카르추크는 출판을 앞두고 번역자 최성은과 진행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부연했다. “제가 꿈꾸는 사인칭 서술자란, 극도의 전지적 시점을 가진 스토리텔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시간과 공간을 자유롭게 이동하는 서술자, 예를 들어 개구리의 관점에서 새의 관점으로 자유롭게 시점을 넘나드는 초월적 지위를 가진 서술자, 저자의 한계를 초월하는 서술자를 말합니다.”

글쓰기는 “지옥이고, 끊임없는 고문이며, 끓어오르는 타르”와도 같다. 글쓰기는 “천국”이기도 하다. “내가 누구인지 끊임없이 질문하게 하고, 공감력을 발달시켜 주며, 타자를 더욱 잘 이해할 수 있게 해 줍니다.

‘쓰기’보다 ‘읽기’가 우선이다. 토카르추크는 문학이라는 이름의 이 모든 현상의 본질을 ‘읽기’로 규정한다. ‘읽기’에 몰두하라고 조언한다. “우리가 세상을 이해한다는 것은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그것을 해석하는 것”이다. 문학의 우누스 문두스에서 “독자는 해석을 통해 자기 역할을 수행”한다. 그는 독서 이력을 적은 글을 이렇게 마무리했다. “우리가 지금 여기에 있는 건 책을 읽기 위해서다.”

[책과삶] 공감·연결·유대···문학은 다정한 네트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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