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스트의 결혼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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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10월 7일자 플랫 뉴스레터(링크)에 게재된 글입니다. 뉴스레터 전문에서는 한 주 간 있었던 젠더 뉴스, 이에 대한 플랫 독자들 반응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백래시의 소음에서 반 보 물러나 여성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면, 매주 금요일 7시 플랫 뉴스레터를 구독해주세요. 혹시 링크가 연결되지 않으면 괄호 안의 주소(https://bit.ly/3rDtwPy)로 들어오실 수 있습니다.



독자님은 주말에 보통 뭐하시나요? 맑고 선선한 날씨때문인지 저는 요즘 부쩍 결혼식 초대를 많이 받고 있습니다. 지난주에도 회사 선배의 결혼식에 다녀왔는데요. 하객들의 축하 속에서 행복하게 웃는 신랑 신부의 모습을 보니 저까지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신부가 ‘서프라이즈 축가’로 신랑을 울린 것(!)도 기억이 남았고요.

그런데 결혼식 도중 신랑의 지인분께서 해주신 축사의 한 대목을 듣고 곰곰 생각에 잠기게 됐습니다.

“사랑을 포기하는 시대에 사랑을 선택한 두 사람에게…”

지금이 ‘사랑’을 ‘포기’하는 시대일까, ‘결혼으로 완성되는 사랑’을 포기하는 시대가 더 정확한 표현이 아닐까, 하는 생각들이 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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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2분기 합계출산율은 0.75로, 5년 연속 최저치를 경신하고 있습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결혼적령인구라 불리던 19~49세에서 ‘결혼은 반드시 해야 한다’에 동의하는 비율은 남성 12%, 여성 5%에 그쳤습니다. 페미니스트들이 결혼에 반감을 갖거나 주저하는 것도 당연합니다. 여성의 사회 진출이 활발해졌음에도여성에게만 가사와 육아노동의 부담을 강요하고, 이러한 노동을 비생산적인 것으로 치부하는 사회 분위기는 여전히 공고하니까요.

많은 페미니스트들에게 ‘결혼식’은 일상에서 애써 외면하던 ‘가부장제’를 대면하는 순간입니다. 일찌감치 비혼을 선언한 제 지인은 신부 아버지가 신부 손을 잡고 입장해 신랑에게 ‘건네주는’ 것이 불편하다는 말을 자주 했어요. 그는 결혼식에 갈때마다 갑갑함을 느낀다고 했습니다. “평소에는 사회 주변부를 자유롭게 날아다니면서 살다가, 결혼식에 갈때면 중앙부의 박스 안에 갇혔다가 풀려나는 기분이 든다”면서요.

하지만 제 캘린더 속 수많은 결혼식 일정들을 보면서, 모든 페미니스트가 ‘결혼’ 자체를 거부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어찌보면 당연한 일입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친밀하고 단단한 관계를 맺고 싶다는 욕구, 그리고 이를 많은 사람들 앞에서 공표하고 축하받고 싶다는 욕구는 충분히 자연스러운 감정이니까요.

2019년 한 호텔 예식장에서 신부가 두 명인 결혼식이 열렸다. 결혼식의 주인공이기도 한 김규진씨는 결혼을 준비하기까지의 과정을 담은 에세이 <언니, 나랑 결혼할래요?>를 펴냈다. 위즈덤하우스 제공

2019년 한 호텔 예식장에서 신부가 두 명인 결혼식이 열렸다. 결혼식의 주인공이기도 한 김규진씨는 결혼을 준비하기까지의 과정을 담은 에세이 <언니, 나랑 결혼할래요?>를 펴냈다. 위즈덤하우스 제공

페미니스트들에게 ‘결혼’은 무슨 의미일까요. 사실 그 답은 이땅에 존재하는 페미니스트들의 수만큼 다양할 것입니다. 어떤 페미니스트에게 비혼 비출산은 ‘가부장제에 편입되지 않겠다’는 실천적 선언일수도 있고, 또다른 페미니스트에겐 좋은 사람이 나타나면 몰라도 굳이 애쓸 필요 없는 어떤 것일 수 있습니다.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리고 싶은 열망이 있는 페미니스트들도 있겠지요. 결혼 이후 대안적이고 평등한 관계맺음에 대해 고민할수도, 결혼을 하고 싶어도 할수 없을 수 없는 상황에 좌절할 수도 있겠고요.

‘페미니즘적 결혼’의 정의가 다양할 수 있음을 인지하고서부터, 저는 결혼식 구경하는 것을 좋아하게 됐습니다. 틀에 박힌 웨딩의 빈틈을 비집고 나온, 사람들의 개성과 생각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거든요.

제가 제일 기억에 남는 결혼식은 한 회사 선배의 결혼식이었어요. 전형적인 ‘공장형 웨딩’이었는데 인상적인 변주들이 있었어요. 웨딩드레스를 입은 신부가 신랑과 함께 로비에서 손님들을 맞았고, 부케는 남자인 선배가 받았거든요. 2019년엔 ‘레즈비언 부부’를 인터뷰하기도 했는데요. 두 명의 신부가 순백의 드레스를 차려입은 웨딩 사진들을 보면서, 이렇게 아름답고 저항적인 결혼이 가능하구나 감탄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물론 가부장제와의 싸움은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이길 때가 있으면 질 때도 있을 수 있죠. 어느 결혼식에서는 신랑 신부가 동시입장을 하고 둘이 함께 성혼선언문을 낭독하길래 ‘오 페미니즘적인데’라고 기대를 했었는데요. 그 기대가 무색하게도 ‘아무리 피곤해도 남편에게 5첩 반상 아침상을 차려주겠다’ ‘아내가 간단한 빵으로 아침상을 차려도 투정하지 않겠다‘같은 서약들이 나오는걸 보고 이마를 짚었던 적이 있습니다. 시대착오적인 주례사나 사회를 들을 때면, 겉으론 웃고 있어도 속으론 화를 참고 있을 신부를 가엾어한 적도 많고요.

‘정상가족’을 중심으로 한 가부장제의 틀은 여전히 공고해보입니다. 여성가족부는 지난해 비혼, 동거 커플 등 혼인이나 혈연 관계로 묶이지 않은 관계도 법률상 ‘가족’으로 인정하는 내용의 4차 건강가정기본계획(2021~2025)을 발표했다가, 새 정부가 들어서자마자 이를 철회했습니다. 윤석열 정부는 여성가족부를 폐지하고 대부분 기능을 보건복지부 산하 ‘인구가족양성평등본부’로 이관하겠다고 선언했죠. 낡은 가족의 틀을 거부하는 여성들은 늘어나는데, 정부는 이러한 변화를 애써 무시하고 있습니다.

📌비혼·동거도 ‘가족’으로···다양한 가족 포용 나선다

📌“사실혼·동거 등 ‘법적 가족’ 인정 안 해” 돌변한 여가부

📌“‘정상 가족’은 이미 해체 중”···가족은 어떻게 ‘저항’의 언어가 되는가

그 공고한 벽을 깨려면, 결혼이냐 아니냐의 이분법에서도 벗어날 필요가 있습니다. 대신 어떤 관계를 어떤 방식으로 맺을 것인가에 대한 더 풍부하고 다양한 서사를 발굴할 때라는 생각이 들어요. 이런저런 사례들을 풀어놓은 이유는 페미니스트의 결혼(식) 이야기를 독자분들과 나눠보고 싶어서고요!

📌공자님의 주례사, 신부는 불편해요

📌나? 남다를 것 없는 한국에 사는 ‘유부녀 레즈비언’

📌“동성 결혼도 30년 뒤엔 아무것도 아닐거야”

페미니스트들의 결혼(식)에 대한 여러분들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결혼 계획이 있으신가요? 결혼식에 갈때는 어떤 기분이 드시나요? 결혼식을 하게 된다면 어떻게 하고 싶으신가요? 여태까지의 결혼식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 있나요? 아래 링크에서 결혼(식)에 관한 솔직한 이야기를 플랫팀에게 자유롭게 나눠주세요. 여러분들이 주신 답변을 모아 콘텐츠로 다루어보겠습니다.

(링크가 눌리지 않는다면 https://forms.gle/e4peZLqtHpPj4sEP7 를 입력해주세요!)


심윤지 기자 sharpsim@kh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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