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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여행엔 시간 낭비가 없다

입력 2022.10.13 03:00

수정 2022.10.13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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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준의 옆집물리학] 빛의 여행엔 시간 낭비가 없다

빛은 출발한 곳에서 목적지를 향해 똑바로 직선을 따라 직진한다. 평평한 거울에 닿은 빛은 입사한 각도와 같은 각도로 반사하고, 맑은 연못 바닥은 실제보다 얕아 보인다. 기하광학의 여러 성질을 고전 물리학은 딱 하나의 원리, 가장 시간이 짧은 경로를 따라 빛이 움직인다는 페르마(Fermat)의 최소 시간의 원리로 설명한다. 우주에서 가장 급히 움직이는 빛은, 어떤 경로로 움직일지 정할 때도 시간이 기준이다. 가장 빨리 갈 수 있는 길을 따라 가장 빠른 속도로 간다. 빛의 여행에는 시간 낭비가 없다.

김범준 성균관대 물리학과 교수

김범준 성균관대 물리학과 교수

두 점을 연결하는 무한히 많은 경로 중 길이가 가장 짧아 특별한 경로가 바로 직선이다. 빛의 속도는 어디에서나 같아서 직선은 또 가장 짧은 시간이 걸리는 경로이기도 하다. 페르마의 최소 시간의 원리를 생각하면 빛은 당연히 직진할 수밖에 없다. 빛이 평평한 거울에서 반사해 진행하는 경로를 거울 면 반대쪽으로 대칭적으로 뒤집으면 거울에 닿기 전 직선 경로의 연장선 위에 놓인다. 빛이 반사한 각도가 입사한 각도와 똑같아야 하는 이유는, 그렇게 되어야 전체 경로가 최소 시간 경로가 되기 때문이다. 공기 중에서 물로 입사한 빛의 방향이 꺾이는 것을 굴절이라고 한다. 공기와 물에서의 빛의 속도가 각각 주어지면 최소 시간의 원리를 이용해 빛이 꺾이는 각도도 구할 수 있다. 빛이 직진하는 이유, 거울 면에서 입사한 각도와 같은 각도로 빛이 반사하는 이유, 그리고 빛이 다른 매질로 입사할 때 방향을 꺾어 굴절하는 이유, 이 모두를 고전 물리학은 페르마의 최소 시간의 원리로 한칼에 설명한다. 물리학이 자주 추구하는, 하나로 여럿을 설명하는 멋진 방식이다. 훌쩍 빠르게 갈 수 있는 더 나은 길이 있다면 빛은 굳이 에둘러 빙 돌아가지 않는다. 자연에는 이처럼 낭비가 드물어, 주어진 환경에서 가장 효율적인 길을 찾을 때가 많다. 물리학의 설명에도 낭비 없는 검약이 미덕이다. 물리학은 복잡한 여럿을 단순한 하나로 낭비 없이 설명하려는 끊임없는 노력이다. 자연은 움직임을 아끼고 과학은 설명을 아껴, 둘 다 낭비를 꺼린다.

빛에 대한 최소 시간의 원리는 변화를 설명하는 물리학의 흥미로운 방식의 한 종류다. 현상의 원인으로 목적을 생각하는 목적론을 닮은 설명이다. 손에서 놓은 동전이 아래로 떨어지는 이유는 아래에 있을 때가 위에 있을 때보다 중력에 의한 에너지가 더 낮기 때문이고, 빛이 직진하는 이유는 그럴 때가 걸린 시간이 최소가 되기 때문이다. 빛이 줄이려고 노력하는 목적함수는 시간이고, 동전이 줄이려고 노력하는 목적함수는 에너지에 해당한다. 빛은 최소 시간을 목적으로 직선을 따라 나아가고, 동전은 최소 에너지를 목적으로 아래로 떨어진다.

내가 지금 이곳에 앉아 있는 이유는 마감 전에 이 글을 마쳐야 한다는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다. 의지와 목적을 명확히 가진 존재인 우리 인간의 많은 행위는 목적론으로 설명할 수 있을 때가 많다. 하지만 구름에서 비가 내리는 이유는 땅 위 온갖 식물에 물을 주기 ‘위해서’가 아니고, 번개는 죄 지은 이를 하늘이 벌주기 ‘위해서’ 치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 의도와 목적을 가질 수 없는 구름이 나무와 꽃을 위해 비를 내릴 리 없고, 손목시계도 차지 않고 이성도 없는 빛이 경로상의 시간을 최소로 하겠다는 목적을 가지고 경로를 선택할 리도 없다. 빛의 움직임을 설명하는 물리학의 목적론적 설명에는 목적의 주체가 없다. 낭비를 줄이는 자연의 방법에는 이처럼 주어가 없어서, 늘 그렇듯 자연은 줄이려는 의지 없이 자연스레 스스로 낭비를 줄인다.

가장 짧은 시간이 걸리는 경로를 따라 곧게 뻗어가는 빛을 보며 구불구불 우리 인생을 떠올린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가야 하는지도 모르면서 누구나 터벅터벅 긴 길을 걸어간다. 힘든 고비를 만나 고생도 하고, 고비를 넘긴 후 내리막길을 한껏 달리며 상쾌한 맞바람에 시원하게 땀을 식히기도 한다. 걸어온 긴 길을 돌아보면 알게 되는 것이 있다. 구불구불 오르락내리락 걸어온 길에서 만난 모든 것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는 사실이다. 어쩌면 곡절 많은 우리 각자의 인생은 최소 시간의 원리가 아니라 최대 의미의 원리로 작동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효율과 빠름이 아닌 의미를 기준으로 한 선택이 어쩌면 삶의 낭비를 줄이는, 느려서 오히려 더 빠른 길일지도 모르겠다. 순간의 낭비도 없이 늘 서두르는 빛을 보며 내 삶의 목적과 의미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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