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래 탄 마약’에 중독 당한 여성들

술·음료에 몰래 넣는 ‘퐁당’ ‘몰래뽕’

대부분 남성 가해자 ‘성적 쾌락 목적’

연인·클럽 헌팅·유흥업 여성 상대 범행

“마시는 건 분간 안돼…한번에 중독

자신이 느끼는 흥분, 호감으로 착각”

[마약, 0.03g의 굴레①] ‘몰래 탄 마약’에 중독 당한 여성들

“‘퐁당’은 살인이에요.” 지난 11일 서울 강남 지역 ‘마약 중독자 회복을 위한 자조 모임’에서 만난 이재완씨(가명·25)가 말했다. 스무살 때부터 5년 가까이 마약을 하다가 끊은 이씨는 주변 남성들로부터 ‘퐁당 무용담’을 셀 수 없이 들었다. ‘퐁당’은 술잔 등에 마시는 사람 몰래 마약을 빠뜨리는 행위를 일컫는다. “요즘 필로폰이 워낙 많아지니 ‘몰래뽕’도 많아요. 예쁜 여자가 있어서 ‘퐁당’을 했다고 자랑하듯 말하는 식이에요.”

이씨는 ‘퐁당’을 당한 여성들이 마약 중독에 쉽게 빠진다고 했다. “클럽에서도 콜라에 필로폰을 몰래 넣는 걸 여러 번 봤어요. 필로폰은요, 한 번만 해도 중독될 수밖에 없어요. ‘퐁당’ 당하고 나면 다 중독돼요. 주사로 맞지 않고 마시는 건 처음엔 분간이 잘 안될 수 있어요.”

이씨와 같은 모임에서 만난 강지형씨(가명·26)는 자신도 과거에 몰래 약을 탄 적이 있다고 털어놨다. “‘물뽕’을 탄산음료에 타서 자연스럽게 유도하거나 전자담배나 물담배를 권하는 척 하면서 필로폰을 마시게 하는 거예요. 샴페인에 마약을 타서 주기도 하고요. 유흥업소 여성보다 회사원이나 학생들이 오히려 더 경계심이 덜하기도 했어요. 여자들도 남자들 잔에 타긴 하지만 95%는 남자가 여자 술에 타죠. 지금은 죄책감이 많이 들지만 한창 약을 하고 있을 때는 뇌가 다 망가져서 미안함이란 걸 몰랐어요.”

누군가 ‘몰래’ 몸에 밀어넣은 마약에 서서히 중독돼 늪에 빠지는 사람들이 있다. 자기도 모르게 마약을 시작하고, 끝내 중독에까지 이르는 것은 다수가 여성이다. 여성들의 잔에 마약을 타는 건 연인이기도, 클럽에서 친절해 보이는 얼굴로 접근하는 초면의 남성이기도, 유흥업소를 찾는 성구매자들이기도 하다.

이들은 마약에 중독된 상태에서 성적 쾌락을 목적으로 여성의 몸에 마약을 침투시킨다. 여성의 술잔에 섞인 필로폰(메트암페타민)은 ‘퐁당’ ‘몰래뽕’ 등으로 불린다. ‘퐁당’과 ‘몰래뽕’의 대부분이 성적 쾌락을 목적으로 한다. 성범죄 수단으로 ‘물뽕’을 사용해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2018년 ‘버닝썬 사건’ 이후에도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 한 마약사건 전문 변호사는 13일 “한국의 마약사범들은 필로폰을 하는 목적이 대부분 성관계”라고 했다. 이렇게 접한 마약에 결국은 중독된다.

유흥업소 여성 종업원 A씨는 지난해 남성 손님이 준 초코우유를 마셨다. 필로폰을 탄 초코우유였다. 뭔가 이상하다는 걸 깨달았을 때쯤 남성의 협박이 시작됐다. 이 남성은 “네가 한 건 마약이고, 신고해도 처벌될 것”이라고 겁박했다. 입막음 뒤 성착취가 시작됐고, 칼을 들이밀며 강제로 마약을 하게 했다. 중독에 빠진 A씨는 마약 운반책이 됐고 결국 경찰에 붙잡혔다.

유흥업소 직원 B씨도 2020년 업주의 강권으로 필로폰을 하게 됐다. 업주는 성관계를 목적으로 B씨가 마약을 투약하게 했다. 업주의 범행은 성매매 알선과 성폭행 등 복합적인 형태로 수년간 지속됐다. 여성 C씨도 10대 후반에 오피스텔 성매매업소에서 남성 손님이 몰래 마약을 탄 음료수를 마신 이후로 약물에 중독됐다. 해당 남성은 C씨를 강간하고 수백건의 성착취영상도 촬영했다. 지난 7월에는 서울 강남구의 한 유흥업소 여성 직원이 손님이 필로폰을 탄 술을 마셨다가 사망했다. ‘마약 후 성매매’를 조건으로 성매매 여성을 구하는 오픈채팅방도 존재한다.

이성 동료에게 ‘숙취해소제’라고 속여 마약을 투약하게 했다가 구속된 프로골퍼 겸 유튜버도 있다. 서울 서초경찰서는 지난 7월 서울 강남의 한 유흥주점에서 함께 술을 마시던 동료 여성 골퍼 D씨에게 ‘숙취에 좋다’며 엑스터시 한 알을 건넨 20대 프로골퍼를 구속했다고 13일 밝혔다. 피해자 D씨는 술자리를 마치고 집에 돌아간 뒤 “몸이 이상하다”며 직접 경찰에 신고했고, 남성 프로골퍼는 경찰 조사에서 혐의를 시인했다.

대검찰청이 발간한 ‘2021 마약류 범죄백서’에 따르면 일반 마약, 향정, 대마 중 ‘향정’ 부문에만 여성 사범의 비율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향정(향정신성의약품) 중 국내에서는 필로폰이 가장 널리 유통된다. 지난해 전체 마약류사범 1만6153명 중 향정사범은 1만631명으로 65.8%를 차지했다. ‘향정’ 항목에서 여성 사범 비율은 2017년 18.6%, 2018년 18.7%, 2019년 20.3%, 2020년 23.9%, 2021년 24.6%로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전체 마약류사범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도 2016년 처음 20%를 넘긴 이래 떨어지지 않고 있다.

남성들이 상대 여성에게 몰래 필로폰을 먹인 사례는 법원 판결에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청주지법은 2019년 2월 연인의 커피에 필로폰 0.04g을 섞어 마시게 해 마약 투약자로 만든 남성에게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했다. 2018년 10월 경기 포천시의 한 호텔 객실에서 필로폰 0.04g을 연인의 커피에 섞은 남성도 같은 법원에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전주지법은 지난해 10월27일 대전 중구의 한 모텔에서 성관계를 할 목적으로 상대방 여성의 커피에 필로폰 0.02g을 몰래 타서 마시게 하고, 이후에도 이 여성에게 마약을 주사하거나 성관계를 하면서 동영상으로 촬영한 남성에게 징역 2년을 선고했다.

다른 마약을 성범죄 수단으로 삼은 사례도 차고 넘친다. 인천지법은 지난해 5~6월 방송국 일을 하며 알게 된 여성 단역배우들을 ‘맥주 마시는 장면을 찍겠다’며 모텔로 유인해 졸피뎀을 탄 맥주를 마시게 하고, 피해자들이 정신을 잃자 강간을 하려고 한 남성에게 징역 7년을 선고했다. 대구고법은 노래방에서 여성의 맥주잔에 졸피뎀 성분 약을 타 정신을 잃게 한 후 모텔로 데려가 강간한 남성에게 징역 5년을 선고했다. 차량에 동석한 여성에게 졸피뎀을 탄 음료를 마시게 한 뒤 강간하고, 피해자의 나체 사진을 찍어 유포하겠다고 협박한 남성은 대구지법 서부지원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마약, 0.03g의 굴레①] ‘몰래 탄 마약’에 중독 당한 여성들

그러나 약물을 성범죄에 이용하더라도 가중처벌할 법적 근거는 뚜렷하지 않다. 마약류관리법 위반 혐의를 추가 적용하거나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 상태를 이용한 간음은 3년 이상 유기징역에 처한다’는 형법 조항을 적용할 수 있을 뿐이다. 민홍기 변호사는 “실무에서 양형을 할 때 가중처벌을 하고 있지만 별도 입법을 할 필요성이 있다”고 말했다.

마약 중독자들을 대상으로 치료·재활 상담을 하는 상담가, 마약 사건 전문 변호사 등은 남성보다 여성이 ‘타의에 의한 중독’에 훨씬 취약하다고 말한다.

최진묵 인천참사랑병원 상담사는 “보통 여성이 남성의 표적이 돼 마약을 시작한다”고 했다. 그는 “남성들이 여성에게 ‘안 위험하다. 이거 먹으면 돈 더 주겠다’는 식으로 꼬드기기도 한다”며 “채팅 앱(애플리케이션)에 등장하는 ‘아이스 한잔’ ‘한잔 하실 분’ 등의 표현이 다 ‘표적’을 구하는 표현”이라고 했다. 한부식 김해 다르크(약물중독재활센터) 원장은 “최근 시설에 온 한 여성도 채팅에서 만난 남성이 약을 탄 음료수를 건네 줘 모르고 마셨다가 그 길로 중독이 돼 재활 치료를 받고 있다”고 했다.

임상현 경기 다르크 센터장은 “연인 사이에서도 몰래 음료나 술에 마약을 탄 뒤에 성관계를 하는 등 방법으로 서서히 중독시키는 경우가 있다”며 “이렇게 중독된 여성들은 특정 남자를 만나면 이상하게 기분이 좋으니 관계에 더 매달리거나, 분리되면 우울해하기도 한다”고 했다. 한 마약 사건 전문 변호사는 “최근에도 남자친구가 건넨 합성 대마와 케타민을 마약류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했다는 의뢰인을 만났다”며 “같은 자리에 있던 다른 여성은 그 이후로도 계속해서 마약에 손을 대 필로폰에 중독된 상태”라고 했다.

2019년 발표된 유상희 치유상담대학원대학교 교수의 ‘한국 여성의 마약류 경험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2018년 검찰의 교육이수조건부 기소유예프로그램에 참여한 여성 136명 중 마약을 인식이 없는 상태에서 타의로 시작한 경우가 17명(12.5%)이었다. 자의로 마약을 한 107명 중에서도 ‘권유’에 의한 사용이 91명(67%)에 달했다. 술과 커피 등에 몰래 들어간 마약을 복용한 경우도 8명(5.8%)이나 됐다.

유흥업소에서 일하는 여성들은 더욱 상황에 취약하다. 전경수 한국마약범죄학회장은 “유흥업소 여성 종업원들이 타의에 의한 마약을 가장 많이 당하고, 강간과 그에 따른 임신·유산 등 문제도 겪는다”며 “여성들은 피해를 당해도 신고하거나 가족에게 알리지 못한다”고 했다.

강혜정 인천 강강술래 대표는 “마약산업이 유흥업소 여성들을 마약에 노출시키고, 중독시킨 다음 유통책과 공급책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고 했다. 이어 “마약뿐 아니라 다이어트약, 정신과약에 심하게 의존하는 여성들도 많다”며 “성매매 여성들이 날씬한 상태를 유지하게 하기 위해서 식욕을 저감시키는 각성제 성분 다이어트약을 고가에 사게 하고, 이 비용을 빚으로 올려 착취의 구조에 종속시키는 것”이라고 했다.

사회적 안전망이나 의료체계 역시 매우 취약하다. 김희준 변호사는 “시설의 특성상 혼성으로 구성하면 위험 요소가 있어서, 여성을 전문적으로 치료하는 시설이 필요하지만 충분하지 않은 상황”이라고 했다. 이은의 변호사는 “유흥업소에서 일하는 여성들이 위험성을 충분히 경계할 수 있게 최소한의 교육이 필요하다”며 “이들에게 노출 위험도가 높은 감기약·졸피뎀 등 약물 관리 체계를 점검하고, 건강관리 등 의료지원이 필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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