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직을 여섯 번 했는데, 무기계약직과 파견·용역을 오갔다. 한 곳을 빼고는 모두 30인 미만의 소규모 사업장이었고 150만원 미만의 월급을 받았다. 대부분 6개월이 되기 전 퇴사했다. 해고됐고, 계약 기간이 끝났고, 수습·인턴 기간 만료 후 채용되지 않았고, 권고사직됐다. 먼저 사표를 낸 적도 있지만, 직장 내 괴롭힘 피해 때문이었다. 취업과 이직을 반복하며 심신이 피폐해졌다. 사는 내내 경제적으로 힘들었다. 금전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사람, 몸이 아플 때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 우울할 때 연락할 수 있는 사람, 여가를 함께 할 사람 모두 없다.”(1990년생 여성 A씨·고졸·서울 거주)
“이직을 세 번 했다. 마지막 직장에서 상사의 부당한 지시가 있었고, 휴가·휴직 사용이 자유롭지 않았으며 고용 안정성도 낮았다. 특히 성추행·성폭력 등 직장 내 성적 괴롭힘 문화가 심했다. 취업 준비를 많이 했지만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있다. 마음 건강이 나빠졌다. 내 미래는 밝지 않다고 생각한다. 죽을 만큼 가난하지 않은 이상 정부는 지원해주지 않는다.”(93년생 여성 B씨·대졸·경기 거주)
1990년대생 여성 노동자 100명 중 28명꼴로 우울 증상을 겪고 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불안정한 노동 환경과 직장 내 성폭력, 불합리한 채용 등 성차별 구조가 원인으로 분석됐다.
한국여성노동자회는 13일 ‘90년대생 여성 노동자의 노동 실태가 우울에 미치는 영향’ 토론회에서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설문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지난해 8월30일부터 9월24일까지 1990~99년생 여성 4632명을 온라인으로 설문조사한 결과이다.
우울 증상이 있는 것으로 파악된 응답자는 1319명(28.5%)이었다. 우울 정도를 자가진단하는 척도인 CES-D 점수가 16점 이상이면 ‘증상이 있다’로 분류된다. 심각한 정도별로는 ‘경증 우울’(16~20점)이 14.2%, ‘중등도 우울’(21~24점) 6.7%였으며 가장 심각한 ‘중증 우울’(25점 이상)도 7.6%에 달했다.
현재 일자리 여부, 일자리의 안정성, 비자발적 퇴사 경험 등이 특히 우울에 영향을 주는 요인으로 분석됐다.
‘현재 일하고 있다’고 답한 이들 중 우울 정도가 정상 범주로 분류된 응답자는 2756명(74.2%)이었고, 중증 우울 정도는 230명(6.2%)에 그쳤다. 반면 ‘일한 적 있지만 현재는 하고 있지 않다’고 답한 이들의 중증 우울 정도 비율은 13.9%였다. ‘현재 일하고 있다’고 답한 이들 중 ‘중증 우울’이 차지하는 비율(6.2%)의 2배가 넘는다.
‘비자발적 퇴사 경험이 없다’고 응답한 집단의 정상 범주 비율은 ‘퇴사 경험이 있다’는 집단보다 높게 나타났다. 해고 또는 수습·인턴 기간 만료 후 채용되지 않은 경험이 있는 집단의 우울 정상 범주 비율은 이 같은 경험이 없는 집단보다 15%포인트가량 낮았다. 이직 경험이 없는 집단의 우울 정상 범주 비율은 이직 경험이 있는 이들에 비해 5.5%포인트 높았다.
홍단비 신촌문화정치연구그룹 연구원은 “일했던 경험이 있으나 현재 실업 상태인 청년 여성 노동자의 우울 수준이 높은 이유는 또 다시 그런 일자리에 가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어느 일자리를 얻더라도 상황이 비슷할 것이라는 예측 등이 크게 작용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구조적인 문제들이 퇴사나 이직 등 개인화된 방식으로, 자기책임론으로 귀결되고 있는 것은 문제”라고 했다.
실태조사 후속연구를 진행한 박선영 중앙대 중앙사회학연구소 연구원은 “절대빈곤 수준 이하를 충족해야 지원받을 수 있는 잔여적 관점에서 벗어나 지속가능한 삶을 보장하는 정부 정책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며 “성차별적 괴롭힘을 직장 내 괴롭힘에 포괄하고 규제 시스템 및 처벌 수위를 강화해야 한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