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네 살·서른네 살·열세 살…마침내 자연스럽게 늙을 자유를 얻은 얼굴들

김지원 기자
[이미지로 여는 책]스물네 살·서른네 살·열세 살…마침내 자연스럽게 늙을 자유를 얻은 얼굴들

사로잡는 얼굴들
이샤 레슈코 지음·김민주 옮김
가망서사 | 2만8000원

공장식 축산 시스템은 동물로부터 ‘삶’뿐 아니라 ‘늙음’도 빼앗아간다. ‘치킨’이 되는 닭의 수명은 약 1~2개월이다. 케이지 속 닭은 빠르게 태어나고 빠르게 죽을수록 돈이 된다. 이 때문에 공장식 축산 시스템은 어떻게 하면 ‘생산성’을 높일지에 집중한다. 동물들은 생명이 아닌 물건으로 취급되어 최악의 삶을 산다. 그마저도 제 수명을 훨씬 못 채운 채 지극히 ‘효율적’인 죽음을 맞는다. 자연상태라면 십수년까지도 살다 늙어 죽을 수 있었던 생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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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샤 레슈코의 <사로잡는 얼굴들>은 공장식 축산 시설 등에서 구출된 뒤 여생을 제 수명대로 늙어가고 이제 죽음을 앞둔 동물들의 모습을 담은 사진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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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상 유튜브의 생추어리, 구조 관련 영상들은 구조 직전의 절망과 기뻐서 겅중겅중 뛰는 동물들의 벅찬 모습을 대비시킨다. 사람들은 ‘구원자에 의해 지옥에서 천국으로 끌어올려진’ 동물의 모습에 감격한다. 하지만 <사로잡는 얼굴들> 속 동물들을 수식하는 단어는 기쁨과 환희보다는, 무심한 자연스러움과 고요함에 가깝다. 한때 로데오 올가미 던지기 연습 대상이었던 상처투성이 당나귀 뱁스는 스물네살이다. 경매장에서 팔린 서른네살 말 스타의 옆 얼굴은 나이 탓에 바싹 말라있고 힘이 없다. 열세살짜리 양 필리스는 깎지 않은 털이 뭉글뭉글하다. “이 동물들은 아무것도 요구받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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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추어리조차도 이들의 상처를 말끔히 치유해줄 수는 없었다. 많은 농장동물들은 구조돼 보살핌을 받아도 관절염 등 시설에서의 학대가 원인이 된 병으로 인해 죽는다. 다만 이 동물들은 구조 시점부터라도 자연스럽게 나이들고 늙어서 땅에 묻힐 기회를 얻었다. 당연할 권리가 되었어야 할 기회다. 이샤 레슈코의 섬세한 시선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한다. “농장동물들도 우리 인간이 원하는 것들을 원한다. 평안하게 살다가, 자연스럽게 나이 들어가는 것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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