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9명의 아이들이 잠자리에 든 후 깨어나지 못했다.
2015년부터 1년 새 스웨덴의 여러 도시에서 발생한 일이다. 온갖 검사가 진행됐지만 의학적으로는 아무런 이상 소견이 없었다. 뇌파 기록 또한 외관상의 무의식과 달리 정상이었다. 아이들의 증상은 비슷했다. 처음엔 불안과 우울 증세를 보이다 말을 하지 않게 되고, 결국엔 어떤 신체적·사회적 활동도 거부한 채 죽은 듯 잠만 잤다. 운이 좋으면 몇 달 만에 깨어난 아이도 있었지만 보통은 1년이 넘게, 길게는 수년간 잠든 아이도 있었다. 언론은 이를 “불가사의한 병”이라고 불렀다.
이 증상이 처음 의학적으로 보고된 것은 2005년이었다. 의료진은 아이들의 병증을 ‘체념증후군(resignation syndrome)’이라 이름 붙였다. 환자들에겐 공통점이 있었다. 긴 잠에 빠져든 이들은 가족이 스웨덴에서 수년째 망명 절차를 밟고 있는 난민 가정의 아이들이었다.
차라리 잠을 선택한 아이들
영국의 신경학과 전문의인 수잰 오설리번은 마치 동화 속 ‘잠자는 숲속의 공주’처럼 집단적으로 잠에 빠져드는 아이들의 소식을 듣고 스웨덴을 찾는다. 그리고 이 사례를 시작으로 ‘불가사의’라는 꼬리표를 단 채 오독되거나 외면받아온 ‘심인성 장애’를 경험한 공동체들을 찾아나선다.
한때 ‘히스테리’라 불렸던 심인성 장애는 정신적·심리적 원인에 의해 생기는 질환을 의미한다. 실제 장애가 있는 신체적 증상을 보이지만, 질병이 아닌 심리적·행동주의적 원인에서 이 증상들이 기인한다. 몸의 모든 기관은 심리적인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으며, 실제 이는 매우 흔한 질병이다. 저자에 따르면 신경학적 증상을 호소하는 환자의 3분의 1에게 나타나는 것이 심인성 증상이다.
체념증후군에 걸린 아이들은 병에 걸리기 전, 본국을 떠나는 과정에서부터 정신적인 외상을 입었다. 희망과 낙담이 교차하는 길고 지난한 난민 심사 과정에서도 극심한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았다. 저자는 체념증후군이 발병한 집단의 특성에 주목한다. 심인성 이론으로만 체념증후군의 원인을 설명할 수 있다면 이 증상은 전 세계 난민 집단에서 산발적으로 발병해야 자연스럽다. 난민 대다수가 비슷한 스트레스와 트라우마를 겪지만, 체념증후군은 초기 유독 스웨덴에서만 집중됐다. 스웨덴 안에서도 구소련과 발칸반도 출신, 심한 박해를 받은 야지디와 위구르 민족 난민들이 주로 발병한 반면 아프리카에서 온 난민들은 체념증후군에 걸리지 않았다.
저자는 “나는 이 소녀들의 이야기를 접했을 때 문화적인 특수성을 살펴봐야 한다고 확신했다”며 “질병은 사람들이 인식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이 사회적으로 패턴화되는 행동”이라고 말한다. 사회적 환경이 질병에 미치는 영향이 심리적·생물학적 관점에 비해 오랫동안 등한시되어 왔다는 것이다.
발언권 없는 이들이 고통을 말하는 방식
저자는 스웨덴을 시작으로 전 세계에서 비슷한 증상을 경험한 집단을 찾아 나선다. 니카라과공화국의 미스키토 부족에선 10대 여자아이들을 중심으로 집단적인 발작과 환시 증상인 ‘그리지시크니스’가 종종 발병한다. 이 병에 걸린 이들은 공통적으로 ‘악마’의 환시를 본다고 증언하는데, 이 마법 같은 이야기는 1970년대 인류학자 필립 데니스에 의해 보고된 후 21세기에도 이어지고 있다. 2003년, 2009년에 이어 2019년에도 집단적 발병이 있었다.
환자는 환각과 환시 외에도 폭력적인 성향을 보이거나 자해를 하는데, 이 역시 의학적으로는 원인이 규명되지 않았다. 미스키토인들은 그리지시크니스가 사악한 목적의 ‘흑마술’로 인해 생기며, 의학적인 치료 대신 부족 치료사들의 주술적인 방식으로 회복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리지시크니스를 경험한 많은 이들이 실제 부족의 전통적인 치료법으로 회복됐다고 증언한다.
저자는 스웨덴의 체념증후군, 니카라과의 그리지시크니스 사례를 연구하며 이런 병증이 “고통을 표현하는 매우 효과적인 수단”이자 “구조 신호”라고 분석한다. 스웨덴 난민 가정의 아이들이 “말보다 훨씬 더 강력한 고통의 언어”로 자신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이야기하고 있다면, 미스키토 소녀들도 그리지시크니스를 통해 자신들이 겪는 사회적 압박과 고통을 드러낸다는 것이다. 성적 욕망의 주체가 되는 것은 엄격히 금지되면서 욕망의 대상이 되는 미스키토 소녀들은 이 집단 발병으로 자신들에게 주어진 보수적이며 모순적인 역할에서 벗어나는 순간을 경험한다. 이런 ‘구조 신호’가 반드시 의식적으로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저자는 “도움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신체화를 통해 육체적으로 느끼는 것”이라며 “심리적인 증상보다 신체적인 증상을 통한 표현이 더 선호되는 이유는 신체 증상이 문화적으로 인식되는 암호화된 메시지이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저자는 더 나아가 그리지시크니스가 “갈등을 다루는 상당히 정교하고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말한다. 미스키토 공동체에서 이 병에 걸린 사람은 혐오나 배척의 대상이 아니다. 그리지시크니스는 어디까지나 ‘악마’에 의한 것이기 때문이다. 영미권에서 심인성 장애를 앓는 이들이 공동체로부터 소외받고 배척당한다고 느끼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병에 걸린 개인보다 사회를 보라
심인성 장애에 대한 서구인들의 편견은 2016년 쿠바 주재 미국 대사관 직원들이 겪은 집단 이상 증세에서도 드러난다. 55년 만의 국교 정상화로 쿠바에서 근무하게 된 미 대사관 직원들은 두통과 이명 등 ‘아바나 증후군’이라 이름 붙은 집단적 질병에 시달린다. 고통을 호소하는 직원들 대다수가 어떤 낯선 소리를 들은 뒤 증상이 시작됐다고 진술했다. 이에 미국 정부는 2017년 필수 인력만 남긴 채 대사관 직원을 대거 철수시켰고, 쿠바 측의 ‘음파 공격’ 의혹을 제기하며 광범위한 조사를 벌였다. 하지만 현재까지도 이를 뒷받침할 만한 증거는 찾지 못했다.
저자는 미 당국의 고위급 인사들과 정치인, 전문가들이 이 병증의 심인성 질환 가능성을 단호하게 배제한 것에 주목한다. 일부 전문가들은 정신적 압박과 긴장 상태에 놓인 공동체에서 집단 심인성 질환이 발생하는 경향에 주목했지만, 미 당국은 이런 진단을 거부했다. 대신 과학적·의학적으로도 가능성이 희박한 음파 공격 등 외부 요인을 찾았다. 저자는 다른 질병과 달리 유독 심인성 장애 진단에 대해선 환자가 받아들이기 힘들어하거나, 꾀병이라며 고통을 과소평가하는 등 편견을 갖고 보는 데 대해 짚는다. “그래서 그 진단을 거부한 채 다시 자신만의 음파 무기설을 찾아 나선다”고 저자는 꼬집는다.
이 책에 언급된 공동체들은 대부분 심인성 장애 진단을 거부했다. 알츠하이머, 다발성경화증 등 현대의학이 원인을 밝혀낼 수 없는 수많은 신경병이 존재하지만, 유독 심인성 장애만이 ‘불가사의한 병’이라고 묘사된다.
책은 심인성 장애와 관련한 이런 ‘낙인’이 성별화된 방식으로 이뤄지는 점도 짚는다.
일례로 2014~2019년 콜롬비아 엘카르멘 지역에서 10대 소녀들이 원인을 규명할 수 없는 집단 발작을 일으키자 이들에게 성적으로 불만이 있거나 학대를 당해 미쳤다는 이야기가 돌았다. 히스테리를 ‘방황하는 자궁’ 탓으로 돌리는 오랜 여성혐오의 서사였다. 2011년 미국 뉴욕주 르로이의 여자 고등학생들에게 집단적인 틱장애와 투렛증후군이 발병했을 때도 이들을 ‘르로이의 마녀들’로 묘사하는 등 비슷한 낙인찍기가 이뤄졌다. 정말 아픈 게 맞는지 고통을 증명하라는 요구도 쏟아졌다. 반면 미국 외교관들이 의학적으로 규명할 수 없는 증상을 호소했을 때는 누구도 이들의 성생활을 거론하거나 부적절한 질문을 던지지 않았다. 저자는 “이 집단적인 사건 간의 가장 커다란 차이는 병에 걸린 사람들이 아니라 그들이 살고 있는 사회에 있다”며 “진부하게도 이 병은 남성들을 진단할 때는 배제되고 여성들을 희화화하는 데 사용되곤 한다”고 지적한다.
고통을 이해하는 법
한때 ‘집단적 히스테리’라 불린 이런 장애들이 병에 걸린 개인보다 그가 속한 사회와 관련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면, 해결책 역시 개인보다는 사회에 있다. 저자는 “심인성 증상들로 인한 생물학적 변화는 모든 사람에게 비슷하게 나타나지만, 회복하느냐 만성질환으로 가느냐를 결정하는 것은 공동체 차원의 반응인 경우가 많다”는 결론을 내놓는다. 저자가 만난 공동체들은 원인을 규명하기 어려운 질병들을 설명하기 위한 나름의 서사를 만들었다. 이런 서사를 통해 어떤 공동체는 회복을 했고, 어떤 공동체에서는 장기간 장애가 지속됐다.
저자는 ‘악마’에 대한 믿음을 갖고 있던 미스키토 공동체의 사례에 주목한다. 저자가 꼽는 “병에 대한 가장 우아한 해결책”을 제시한 집단이었다. 이들은 병증의 원인을 미신적인 데서 찾았을지언정 병에 걸린 이들을 배척하지 않았고 갈등을 외면화하며 집단 속으로 그들을 끌어들였다. 실증적인 서구 현대의학의 테두리 안에 있는 신경학자이며 “철저히 무신론자이고 실용주의를 선호”한다고 밝힌 저자는 이 공동체에서 받은 감화가 스스로도 예상치 못한 일이라고 털어놓는다. 저자는 이 방대한 사례 연구 끝에서 고통에 귀기울이는 공동체의 존재에 대해 묻는다. 우리의 공동체가 질병과 고통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지 자문하고, 질병이 증언하고 있는 사회적인 서사를 마주하자는 제언이다.
“비판하지 않고 들어줄 수 있는 공동체. 결함과 실패를 받아들이며, 자신의 기득권은 제쳐두는 겸손한 공동체. 건강에 대해 전체적인 시각을 지닐 수 있는 공동체,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런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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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명수 기자 sms@kh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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