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대화창 들어가기. 더하기(+) 버튼을 누르기. 주황색 ‘음성메시지’ 버튼. 빨간색 동그라미 누르기. 마이크에 말하고 노란색을 눌러서 완성.”
종이에 암호처럼 빼곡하게 적은 메모는 신승희씨(76)가 지난 스마트폰 수업에서 메신저로 음성을 보내는 법을 배우며 필기한 것이라고 했다. 지난 9월2일 서울 성북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신씨는 ‘스마트폰 선생님’ 박소현씨(62)와 복습 중이었다.
“빨간 버튼 누르고, 얘기해 보세요, 어머니.” “예, 안녕하십니까.” 녹음을 틀어 잘 녹음됐는지 확인했다. “핸드폰으로 글씨가 쓰려면 자판이 너무 작죠? 철자도 틀리셔서 무슨 뜻인지 모르게 전송될 때도 있잖아요. 말로 보내면 더 편하고 정확하니까 다음에 친구한테 써보세요.”
수업은 전화번호 저장법으로 이어졌다. 가족과 친구 10여명의 목록을 적은 쪽지를 꺼내 하나하나 번호를 누른다. 숫자와 이름, 저장 버튼을 번갈아 누르기를 반복하니 금세 30분이 지났다.
선생님의 한 마디도 놓치지 않고 ‘열공’한 신승희씨가 수업이 끝나고 말했다.
“너무 어려워요. 뭐하러 배운다고 해서 여러 사람한테 신세만 지는 거 아닌가 싶어요. 이런 수업을 할머니를 위해 만들어 준다는 게 감사하지요.”
고령층은 장애인·저소득층·농어민과 함께 디지털 정보화에 취약하다. 일반 시민(100%)보다 정보 습득이나 기기 활용·접근성이 떨어진다는 의미다. 특히 사회가 ‘노인’으로 분류한 만 65세 이상 고령층의 수준(78.1%)이 가장 떨어진다.
디지털 수준이 낮은 도시 거주자는 단순한 불편 이상을 넘어서는 경험을 한다. 시민에게 제공되는 문화·공간 정보, 복지 서비스 등에서 배제될 수 있다. 여러 기관들이 다양한 디지털 수업을 마련했지만 정작 신씨가 ‘스마트폰 선생님’이 있다는 사실을 접한 것은 종이 신문에 실린 기사였다. 택시·영화·먹거리 등 소비 활동에서도 다른 계층보다 선택의 제한을 받는다.
서울시 조사에 따르면 60세 이상 시민의 디지털 기기를 이용한 여가(54.6%)·공공(36.8%) 서비스 이용률은 20대(92.5%, 83%)의 절반 수준이다. 금융거래(58%)·전자상거래(45.9%)·모바일결제(32.2)도 20대(88.2%, 90.6%, 83%)와 격차가 크다. 키오스크는 55세 이상 시민의 이용률(서울디지털재단)이 45.8% 수준에 그친다.
‘나만 모른다’는 초조함과 ‘배워도 못 한다’는 좌절감이 심리적 위축을 불러 디지털 기기를 ‘무섭다’고 느끼게 만든다. 기술 발전이 가속화되면서 심리적 장벽은 삶의 질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이날 신씨의 옆자리에서 스마트폰 수업을 듣던 정내근씨(72)는 “지도도 보고 싶고 기차표도 예약하고 싶은데 한 번 배운다고 혼자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금방 잊어버린다”라며 “내가 뭘 모르는지를 모르니 질문하기도 어렵다”고 했다.
고령층이 디지털 기기에 익숙해지는 방법은 반복뿐이다. 스스로 무엇을 알아야 하는지, 어떤 것을 모르는지 인지하지 못하기 때문에 자세한 예시를 바탕으로 한 교육도 필요하다. 자녀 등 가족에게 물어보면 방법을 알려주기보다는 앱 설치나 프로그램 실행을 대신해 주는 식이 많아 학습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서울시가 디지털 약자 지원 사업으로 탑골공원, 연신내역, 인사동 문화거리, 도봉구 발바닥공원 등 고령층이 자주 찾는 지역에 직무 교육을 받은 ‘디지털 안내사’를 배치하게 된 이유다. 안내사에게 와이파이 설정, 말로 문자 보내기, 앱으로 택시 부르기 등 평소 궁금했던 기능을 물어 볼 수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60대는 일상에서 바로 사용할 수 있는 실전법을, 80대 이상은 교육 자체보다는 말벗이 필요한 경우가 많다”며 “같은 고령층도 수요가 다른 점에 착안해 대응 중”이라고 말했다.
박소현씨는 서울디지털재단(https://sdf.seoul.kr/)이 디지털 활용에 능숙한 55세 이상의 강사가 어르신들을 1대1로 가르치는 ‘어디나지원단’에 선발되면서 신승희씨의 선생님이 됐다. 무엇을 배워야 하고, 어떤 것을 알고 싶은지 스스로 인지하기 어려워서 고령층의 디지털 장벽은 더욱 공고해진다. 그래서 노년층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장년층을 강사로 뽑은 것이다.
박씨는 “사양이 높은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지만 한글을 몰라 검색 등을 활용하지 못하는 분도 계셨다”며 “그런 경우는 그림을 그려 사용법을 설명한다. 귀가 잘 안 들리시는 분도 많아 노인 교육은 다른 교육과 차별화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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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취재팀
취재 | 김보미(전국사회부) 배문규·김한솔·김지혜(스포트라이트부)
사진·동영상 | 강윤중·성동훈(사진부) 최유진(뉴콘텐츠팀)
인터랙티브 콘텐츠 | 박채움·이수민(다이브팀) 현재호(디자인팀)
편집 | 채희현·임지영(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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