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담·논문으로 본 에르노의 작품 세계
“나에게 글쓰기는 정치적 참여의 형식”
“개인적 경험을 통해 사회적 현실로 하강”
“일상에 집중해 지배와 피지배 문제 제기”
아니 에르노가 2022년 노벨 문학상 수상 열흘 뒤 모습을 드러낸 곳은 프랑스 파리 거리다. 그는 16일(현지시간) 좌파 야당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LFI) 주도로 파리에서 열린 시위에 참석했다. 앞서 9일 작가, 영화감독, 대학교수 등 69명이 “에마뉘엘 마크롱(프랑스 대통령)은 (부자를 제외한) 나머지를 희생하면서 인플레이션으로 빈부 격차를 확대하고, 자본 소득을 늘린다”는 내용 등으로 집회 참여를 독려하며 ‘일요신문(Le Journal du dimanche)’에 실은 기고에도 이름을 올렸다. 이들은 임대료 동결, 최저임금 인상, 초과 소득 과세, 공공서비스 투자 등이 “모두 정치적 의지에 달린 문제”라고 했다.
에르노가 문화사회학 연구자 이사벨 샤르팡티에와 대담할 때 했던 말 “문학은 싸움의 무기입니다”라는 말이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에르노는 2002년 4월19일 진행한 이 대담에서 “사회학처럼 문학이 (권력과 지배의) ‘감시 수단’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 건가요”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감시라, 그건 좀 약한 표현 같은데(웃음)! 물론입니다. 하지만 저는 훨씬 더 강한 표현을 쓸 거예요. 제게 문학은 싸움의 무기입니다.” 박진수(프랑스 사회과학고등연구원 박사 과정)는 에르노와 크로캉 출판사 허락을 받고 대담을 번역해 ‘오늘의 문예비평’(2020년 9월)에 실었다.
“당신에게 모든 작품은 행동 명령처럼 작동하는 것 같아요. 우리가 이미 말한 바와 같이 글쓰기 명령이지만 동시에 사회정치적 앙가주망 명령인 것 말이죠. 당신에게 문학은 본질적으로 정치적인 것 같습니다”라는 샤르팡티에 말에 에르노는 1958년 루앙의 임시 피란민 시설에 살던 한 알제리 가족을 돌본 일을 떠올리곤 이렇게 말했다. “그 후, 제게 글쓰기는 전적으로 정치적 참여의 형식이 되었고, 1970년대 이래로 글쓰기는 정치적 행위가 되었습니다.” 그는 “명령과 앙가주망이란 개념을 매우 좋아한다”고도 했다. 에르노는 작가들의 정치 참여가 흔하지 않던 시절, ‘앙가주망’과 ‘작가’라는 두 단어를 나란히 두는 것 자체가 무례한 짓이던 시절부터 정치적 글을 썼다고 했다. “글쓰기는 당연히 정치적 의미를 가집니다. 제가 쓰는 글에는 항상 정치적 의미가 존재하죠. 때때로 제 자신과 독립적일지라도 말이죠.”
아르노는 이 대담에서 피에르 부르디외에게 받은 영향도 여러 차례 언급했다. 부르디외도 정치 참여에 나섰는데 학자라는 이유로 힐난을 받았다. 아르노는 “그 영향력은 제게도 미쳤는데, 왜냐하면 ‘구별짓기’의 사례를 통해 보듯이 문화적 실천들에 대한 분석을 통해서 상징적 폭력, 사회적 위계들을 폭로하는 부르디외의 사회학은, 사회적 지배는 항상 정치적이었다는 것을 명백히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사회적으로 억압된 것(refoul social) 이란 표현은 분명 부르디외의 사회학에서 제가 발견한 거”라고 했다. “부르디외는 어딘가에서 그들과 함께 했던 것입니다… 특히 정치적 혹은 노동조합의 참여를 하고 있는 사람들과 독학자들에겐 정말이지 그랬습니다. 그건 놀라운 일이었어요! 매우 강력했고요.”
에르노의 소설들은 언뜻 정치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에르노도 “파리의 문학비평가 및 저널리스트들을 가장 성가시게 했던 건 제 책들이 명확한 정치적 메시지를 전하지 않기 때문이죠. 제가 갖고 있는 신념이 무엇인지, 제 앙가주망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것은 아니죠.(웃음) 결국 그 책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적이라는 걸 인식하게 될 겁니다(웃음)”라고 했다. <남자의 자리>를 출간했을 때는 ‘스탈린주의자’, <부끄러움>과 <나는 나의 밤을 떠나지 않았다>를 냈을 때 ‘최후의 진성 공산주의자 프랑스 소설가’라는 평론가들의 ‘평가’를 받은 일도 전했다.
그는 이렇게도 말했다. “저는 글쓰기를 하면 할수록 저를 통해서, 그리고 제가 개인적인 것을 가질 수 있었던 경험을 통해서, 타인과 공유하는 훨씬 일반적이고 집단적인 것이 존재한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글쓰기가 단지 문학적인 것만은 아니라는 결론에 이른 것이지요.”
에르노의 현대 일상 묘사에서도 ‘문학적인 것’ 이상의 의미가 담겼다. 강초롱(서울대 불어불문학과 교수)은 ‘아니 에르노의 <바깥 일기>와 <바깥의 삶> : 인간소외에 대한 비판의 글쓰기’에서 그 의미를 들여다본다. “손님에게 모욕당한 계산원, 사람들에게 외면당하는 구걸하는 노숙자, 사회 속에서 겪게 되는 폭력과 치욕스러움과 같이, 너무나도 익숙하거나 진부하기에 하찮고 의미 없는 것처럼 보이는 이 모든 것들에게서 이(욕망과 좌절감, 사회문화적 불평등)를 읽어낼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강초롱은 일상의 구체적 장면 하나하나를 자세히 들여다보는 행위들 모두가 현대사회를 관통하는 ‘사회문화적 불평등’, 현대인이 느끼는 ‘욕망과 좌절감’ 등을 파악할 실마리를 제공하는 의미 있는 장면에 해당한다는 깨달음을 준다고 했다. “이러한 깨달음은 현대사회의 문제점을 가시화하고 그에 대한 비판을 개진하는 것을 가능케 함으로써, 사회 변혁의 물꼬를 트는 데 일조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에르노가 제시하고 있는, 일상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이다.”
소비자와 판매자들이 주고받는 대화, 그들의 행동에 대한 묘사를 두고 “에르노는, 자본주의라는 거대한 기계의 부속품으로 전락한 채 살아가는 현대인의 현실을 비판적으로 가시화하고자 한다”고도 했다.
에르노는 자신의 글쓰기를 ‘칼 같은 글쓰기’로 규정했다. 강초롱은 논문 ‘아니 에르노의 <사진의 용도>: 현실 구원을 위한 글쓰기 원리의 탐색’에서 “현실을 감싸고 있는 겉면을 ‘재단하고’ ‘절단해’ 그 이면에 감추어져 있던 현실을 드러내는 행위로서의 글쓰기를 지칭한다. 이러한 규정은 그녀의 글쓰기가 기본적으로 현실을 드러내고자 하는 의지로부터 출발하고 있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고 했다. 에르노는 글쓰기를 “자신의 어린 시절을 넘어서 현실에 개괄적으로 몰입하는 것”이자 “개인적으로 겪었던 것들을 통해서” “사회적인 현실 속으로 하강하는 것”으로 규정했다고 강초롱은 정리했다.
오은하(연세대 불어불문학과 교수)의 논문 ‘아니 에르노의 평평한 글쓰기: 계층 이동의 서사, <자리>와 <한 여자>’도 일상 묘사 의미를 분석한다. 오은하는 ‘자전적 이야기’나 ‘회고담’처럼 보이게 하는, 흔한 듯한 유년 시절과 가족사에 관한 소재를 에르노는 다른 목적으로 다룬다고 했다. “첫째, 자전적인 소재를 가져오는 이유가 자신의 특수성이나 기원을 밝히고자 하는 의도에서가 아니라 자기라는 한 개인, 자기 가족의 모습 안에 투영된 한 사회집단의 모습을 추출하고자 하는 의지에서 온 것이라는 점이다. 사회 집단들끼리의 대립으로 드러나는 계층 문제를 담보하고 계승하는 요소로서 ‘가족’의 중요성을 생각해 볼 때 객관화의 출발점이 가족(부모)인 것은 자연스럽다. 둘째, 에르노의 소설은 일상에 집중하되 언어, 생활습관, 취향 같은 사소한 문제들에 얽힌 상징적 요소들의 미묘한 차이를 드러내는 데로 향한다. 이 ‘차이’의 부각은 일상생활에 뿌리박은 지배와 피지배의 문제를 제기한다.”
오은하는 “20세기의 보잘 것 없는 이들(프롤레타리아와 프티 부르주아를 오가는)의 역사에 대한 증언”이라는 평도 전한다. 예컨대, <남자의 자리>에 아버지가 실수로 기차 일등칸에 탄 장면을 에르노는 이렇게 묘사했다. “기차의 1등칸과 2등칸이 구분된 것처럼, 겉보기의 평등 이면에는 엄격하게 구획되어 있는 계급 질서가 있고, 아버지와 어머니가 속한 곳은 ‘무시당하는 계급’이다.” 이 논문은 “계층 질서와 불평등에 대한 인식과 폭로라는 부르디외 사회학의 영향이 한 세계를 떠나온 자의 죄책감과 의무감이라는 에르노의 글쓰기의 동기”도 분석한다.
오은하는 ’에르노가 스스로 ‘사회적-자서전’ 시기라 이름 붙인 세 텍스트 중 마지막 작품인 <부끄러움>(1997)에 관한 논문 ‘수치는 어디서 오는가: 아니 에르노의 <부끄러움>’도 썼다. 오은하는 “수치 가운데서도 전시 가능한 수치와 자신이 토로하는 수치의 차이를 작가는 날카롭게 인식한다”고 썼다. 몇몇 작가들이 “수치심으로 숨이 막힌다”고 신문에 쓴 것을 두고 “그들에게 수치심이란 어느 날 생겼다가 그 다음 날이면 떨쳐버릴 수 있고 어떤 상황에는(보스니아 내전) 적용되지만 다른 상황에는(르완다 내전) 그렇지 않을 수 있는 개념”이다. 보스니아 내전을 두곤 “문명화된 유럽인으로서 이상화된 자기 정체감을 훼손했다는 정서”를 강하게 느끼지만, 이 정서는 르완다 내전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걸 지적했다.
에르노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연대를 외치면서도 걸인을 외면하고, 전쟁의 비참함을 잊은 채 살아가는 자신도 드러낸다.
에르노가 가장 내밀하고 힘든 감정인 자신의 수치를 전시하며 “모두의 내면에 다른 의미로 새겨지는 고통의 개별성과 고유성을 증언했다”고 오은하는 말한다. <부끄러움> 집필을 끝내기 전 에르노는 작업 일기에 니체를 인용하며 “가장 나은 작가는 문인이라는 사실에 수치심을 느끼는 자일 것”이라고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