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지옥은 도망치고 싶다고 마음 먹을 때부터”···‘회복’과 ‘재활’을 꿈꾸는 사람들

유경선 기자    김송이 기자
[마약, 0.03g의 굴레③]“진짜 지옥은 도망치고 싶다고 마음 먹을 때부터”···‘회복’과 ‘재활’을 꿈꾸는 사람들

필로폰 0.03g, 대마 한 모금, 엑스터시 한 알, 펜타닐 패치···. “한번쯤은 문제 없겠지”라는 생각으로 빨아들인 마약에 인생을 송두리째 빼앗겼다. 펑펑 울음이 날 정도로 고통스러웠던 단약의 과정을 지나 회복기에 접어든 이들이 중독자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지옥처럼 힘들지만 반드시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다는 것.

지난 16일 인천 미추홀구의 한 카페에서 회복상담사를 꿈꾸는 네 사람을 만났다. 이들은 최진묵 인천참사랑병원 중독상담실장이 운영하는 카페에서 일주일에 한번씩 모여 서로를 돌본다. 그리고 멀지 않은 미래에 만날 중독자들을 돌보기 위해 공부를 한다. 모임을 이끄는 최 실장도 23년간 마약에 중독됐었다.

“함께 지내면서 망가진 모습을 한번씩 서로 봤잖아요. 다들 정신상태가 안좋을 때 만난 거죠.” 김두호씨(41·가명)가 웃으며 말했다. 이들은 약물에서 빠져나오려 몸부림치며 남다른 유대감을 쌓았다. 김씨는 “서로 ‘저 사람 이상하다’ 생각하면서 만났는데, 같이 회복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게 모두에게 큰 도움이 된다”고 했다. 이영식씨(37·가명)는 “일주일에 하루, 이 시간이 되면 그냥 여기를 오게 되는 것 같다”고 했다.

‘한번만 해보자’는 생각은 “지옥문 여는 것”

외로워서, 누군가 권해서, 클럽에서 만난 남자가 줘서···. 저마다 다른 이유로 마약에 손을 댔다. 이들은 ‘궁금하니 한번만’ 같은 생각은 절대 해서는 안 된다고 입을 모았다. 약물이 만들어내는 화학작용을 이길 수 있는 정신력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김두호씨는 25세부터 마약을 했다. 14년간의 마약 생활은 환각작용이 있는 ‘러쉬’로 시작해 ‘필로폰’에서 멈췄다. 김씨는 “약을 다스릴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약이 나를 지배하고 있었다”며 “하기 싫은데도 약을 하고 매일 깨어나자마자 우는 생활의 반복이었다. 지하철이 지나갈 때마다 뛰어내릴까 하는 생각을 할 정도였다”고 했다. “약에 호기심을 느끼는 사람이 있다면 ‘눈길조차 주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지옥문을 여는 거예요.”

이영식씨도 한때는 자신만만했다. 20대 초반의 이씨는 약물에 대한 경각심이나 죄책감 대신 호기심에 사로잡혀 있었다. “내가 약을 지배하는 것이지, 약이 나를 지배하는 일은 없다”고 믿었다. 그러나 순식간에 주종관계가 뒤집혔다. 10년 동안 펜타닐을 끊지 못하다가 지난해 12월 약에서 손을 뗐다. “코마 상태에 빠져서 죽을 뻔한 적도 있어요. 그런데도 내가 중독됐다는 자각조차 없었어요.”

안지환씨(30·가명)에게 필로폰을 건넨 사람은 “일단 해보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안 해도 된다”고 했다. ‘한번쯤은 괜찮겠지’ 생각했지만 착각이었다. “두 번째 만날 때부터 약을 찾게 되더라고요. 몇 번 하다 보니 금세 주체할 수 없어졌어요. 텔레그램으로 어렵지 않게 약을 구했어요. 내가 직접 살 수 있게 된 그 순간부터 끝난 거죠.” 그는 6년간 단약에 실패하다가 지난해 11월을 마지막으로 약을 끊었다.

서한아씨(25·가명)는 성년이 되는 새해 첫날을 친구들과 클럽에서 맞고 싶었다. 모르는 남성이 ‘기분이 좋아진다’며 대마를 권했다. 대마는 다른 마약에 대한 심리적 장벽을 무너뜨렸다. “필로폰, 코카인, 엑스터시, LSD, 펜타닐···. 종류별로 다 해봤어요. 끊을 수 있을 줄 알았어요. 약을 끊겠다고 아무리 마음을 먹어도, 정신차려 보면 또 대마초를 들고 있더라고요.”

“‘갈망’이 찾아왔을 때 펑펑 울었다”···중독만큼 힘든 ‘단약’

진짜 지옥은 마약에서 도망치고 싶다는 마음을 먹을 때부터 펼쳐졌다. 약을 끊으면 온몸이 아팠다. 약에 대한 갈망은 이제껏 경험한 적 없는 고통이었다. 중독자들은 마약을 다시 하고 싶다는 간절한 충동을 ‘갈망’이라고 표현한다. 갈망에 굴복하고 나면 이전보다 더 많은 양을 투약해야 했다. 중독 증상과 금단 증상은 더 심해졌다.

“단약 상담을 받을 때까지만 해도 언제든지 내 힘으로 끊을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내가 안하면 그만이라고, 약물이 내 인생을 좌우할 수는 없을 거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갈망’을 느껴버린 순간 완전히 무너졌어요.” 안지환씨는 처음 갈망을 느끼던 순간을 이렇게 떠올렸다.

“갈망은 ‘소변이 너무 급한데 화장실을 갈 수 없는 상태’를 생각하면 돼요. 일반인들은 쉽게 공감하기 어려운 정도의 충동이에요. 이성을 마비시킨다는 표현이 맞는 것 같아요. 돈만 생기면 약을 했어요.” 김두호씨도 “처음 갈망이 왔을 때 펑펑 울었다”며 “머릿속에서는 계속 약 생각이 나고, 약을 하지 않았는데도 몸에서 반응이 왔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김씨는 “감옥에 가기 싫어서” 약을 끊겠다고 다짐했지만 1년 반 만에 결심이 무너졌다. 증상은 약을 끊기 이전보다 훨씬 심해졌고, 결국 수사기관에 자수했다.

금단 증상은 파괴적이었다. 서한아씨는 펜타닐 금단 증상이 “온몸의 뼈가 으스러지는 느낌이었다”며 “독감에 심하게 걸렸을 때보다도 천배 만배 심한 근육통과 몸살이 왔다”고 말했다. 정신착란 증세도 생겼다. 2~3주를 이 악물고 버텼지만 서씨는 “끊고 나니 다시 ‘아편 파티’가 벌어졌다”고 했다. 다시 약을 시작하니 투약량이 늘고 약을 끊는 데 드는 기간도 늘어났다. “이걸 끊으면 또 지독하게 아플 거라고 생각하니까 금단이 무서워지기 시작했어요.” 약을 끊고 다시 하기를 반복하니 편집증과 망상 증상도 찾아왔다. “사람들이 날 죽일 것 같고, 누가 쫓아오는 줄 알고 밖으로 달려나가고 그랬어요.”

“눈만 봐도 알아요··· 굴레에 빠진 사람 돕고 싶어요”

“눈만 봐도 ‘이 사람이 약을 하고 왔구나, 거짓말을 하고 있구나’ 하는 걸 다 알 수 있어요.” 네 사람은 마약 중독과 회복을 경험한 자신들만이 할 수 있는 상담이 있다고 했다. 또 더 많은 중독자들이 회복상담사가 돼서 사람들을 다시 사회로 돌려보낼 수 있게 정부가 투약자 ‘회복’과 ‘치료’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했다.

김두호씨는 “마약을 하는 14년 내내 약을 너무 끊고 싶지만 도망칠 수 없었다”며 “끊고 싶지만 끊을 수 없는 상태는 경험자만이 알 수 있다. 내 경험을 살려서, 힘들어하는 사람에게 꼭 도움을 주고 싶다”고 말했다. 서한아씨는 “일반 치료사나 사회복지사들을 만났을 때는 ‘해본 적도 없으면서 뭘 안다고’ 하는 생각만 들었다”며 “최진묵 실장님이 본인의 경험을 나눠주고 현재 상태에 공감을 해주시니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이날 모임에서 유일한 여성인 서씨는 여성 회복상담사가 적은 현실을 지적했다. “여성 환자는 엄청나게 많은데, 여성 회복자가 많이 없어요. 그래야 여성 중독자를 잘 상담할 수 있고, 또 다른 여성 회복자를 길러낼 수 있거든요.” 여성 중독자들에게는 남성 상담사에게 말할 수 없는 사정도 많다. “약물 중독이 성적인 문제랑 같이 엮인 경우가 많거든요.” 약이 덜 깬 상태에서 남성 상담사의 세심한 도움을 ‘사랑’으로 착각하는 경우도 있다. “여성 회복자가 많이 늘어나야 하는 이유예요. 저도 그렇게 되고 싶어요.”

회복상담 공부는 장래에 만날 중독자를 위한 준비이면서 스스로 진정한 회복을 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이영식씨는 “제가 아프다는 걸 인정하고 나니까 더 깊게 공부해야겠다고 느끼게 됐다”며 “나처럼 ‘중독’이라는 질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에게 내가 느낀 걸 나눠주고 싶다”고 했다.

이들은 사회가 중독자들에게 ‘회복’의 기회가 있다는 것을 충분히 알려야 한다고 했다. 이씨는 “마약에 대한 법적인 책임은 당연히 져야 하지만 삶도 계속 살아가야 한다”며 “사회적으로 낙인을 찍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안지환씨는 “술이나 담배는 중독자 재활 관련 프로그램이 많고 예산도 충분한데 마약은 ‘범죄’로 일단 분류돼서 지원이 부족하다”고 했다. 서씨는 “자살 충동이 들 때 자살예방센터에 도움을 구할 수 있는 것처럼 마약을 끊고 싶은 경우에도 회복상담을 돕는 여러 단체들이 있다는 게 많이 알려졌으면 좋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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