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 늑장·내용에 시민들 비판
허영인 SPC그룹 회장이 21일 서울 서초구 SPC 본사에서 계열사 에스피엘(SPL)의 평택 공장에서 발생한 20대 노동자 사망사고 관련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 도중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있다. 성동훈 기자
“직원에 중요 가치 못 전했다
내 불찰, 배려 문화 정착 노력”
허영인 회장 노동인식 드러나
온라인 불매 운동 등 더 심화
SPC그룹 계열사 에스피엘(SPL) 경기 평택 공장에서 20대 노동자가 소스 혼합기에 끼여 숨진 일을 계기로 불붙은 SPC 제품 불매 운동이 확산하고 있다. SPC가 숨진 노동자의 빈소에 파리바게뜨 빵을 보낸 것이 기름을 부었다. 이번 산재 사망사고는 파리바게뜨 노동자 탄압, 불법 파견 등 그간 SPC가 보여온 반노동·반인권적 경영의 연장선에 있다는 것이다. SPC가 사고 발생 엿새 만인 21일 공식 사과한 것을 놓고도 ‘늦었다’는 반응이 많았다.
김은호씨(31)는 “(산재 사망 노동자의) 빈소에 파리바게뜨 빵을 보내는 말도 안 되는 행동을 하다가 여론이 악화하자 부랴부랴 원론적인 사과를 하는 것 같아서 마음에 와닿지 않는다”고 했다.
사과문의 몇몇 문구를 놓고도 비판이 나왔다. 노동자를 시혜 대상으로, 노동 문제를 부차적인 문제로 여기는 듯한 인식이 깔려 있다는 것이다. 허영인 SPC 회장은 이날 서울 양재동 SPC 사옥에서 발표한 사과문에서 “모두 제가 부족한 탓이며, 평소 직원들에게 더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지 제대로 전하지 못한 저의 불찰”이라며 “뼈를 깎는 노력으로 안전관리 강화는 물론, 인간적인 존중과 배려의 문화를 정착시켜 신뢰받는 기업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김하은씨(28)는 “생명과 안전을 ‘해줘야 한다’고 생각하는 발상은 사람이 살아가는 것보다 돈벌이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처럼 느껴졌고, 그런 사고방식을 가진 기업인, 더 나아가 대통령이 있다는 게 끔찍하다”며 “사람을 죽이지 않는 게 ‘배려’이고 ‘존중’인가”라고 했다. 허 회장이 ‘배려’를 언급한 것은 노동자 산재 사망사고와 관련해 ‘인간적인 배려’를 강조한 윤석열 대통령의 전날 발언과 맞닿아 있다는 것이다.
김씨는 “노동자가 자신의 안전보다 기계와 생산의 속도에 맞추는 게 더 중요하도록 만든 것, 사람이 죽어도 바로 그 자리에서 빵을 만들어내도록 지시한 것도 사업주”라며 “SPC는 소비자들에 의한 처벌도 받아야 하지만, 법적으로도 강력한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박나현씨(31)는 “ ‘모두 저의 불찰’이라는 표현은 노동자의 권리를 ‘경영인의 가치’에 달린 문제로 축소하는 것으로 비쳤다”고 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51부(재판장 전보상)가 지난 19일 SPC 매장 앞 1인 시위와 온라인 게시물 게재를 중단해 달라는 가처분 신청을 일부 받아들여 시위 문구 59가지를 금지한 것도 되레 불매운동을 키웠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는 금지 문구인 ‘파렴치한 SPC 사회적 합의 이행하라’ ‘밥 좀 먹고 빵 만들자’ ‘눈물로 만든 빵 안 먹어’ 등에 해시태그를 달아 공유하는 사례가 이어졌다.
대학가에서도 SPC 불매 운동이 확산하고 있다. ‘파리바게뜨 노동자 힘내라 청년공동행동’(청년공동행동)에 따르면 현재까지 경희대·서강대·서울대·성공회대·한신대 등에서 SPC 불매 운동이 진행되고 있으며, 가톨릭대·건국대·고려대·이화여대·중앙대·충북대 등도 동참할 계획이다. 서울 관악구 서울대 내 ‘SPC농생명과학연구동’ 등에는 SPC를 규탄하는 대자보가 붙었다. SPC연구동은 허영인 회장이 출연해 지은 건물이다.
SPC에 사회적 합의 이행을 촉구하는 서명 운동도 진행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