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궁훈, 홍은택(오른쪽) 카카오 대표가 19일 경기 성남시 판교 카카오아지트에서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김창길 기자
남의 집 빌려쓰다 터질 게 터진 꼴
올해 비로소 자체 데이터센터 조성
비자, 비용보다 안전·연속성 중시
총 7개의 독자적 POD 시스템 구축
1개가 멈춰도 문제없이 계속 작동
외부전력 차단 대비한 연료 저장에
재해·테러 막는 블로킹 시설까지
<스탈린이 죽었다!>라는 명작 영화가 있다. 1953년, 소련의 독재자 스탈린이 사망하자 수십 년 동안 스탈린 한 사람에게만 의존하던 소련 수뇌부가 일시에 기능을 정지하고 어쩔 줄 모르는 장면을 담은, 신랄한 풍자 영화이다.
독재와 독점은 분명히 다르지만, 분명 일주일 전 카카오톡이 멈췄던 그날, ‘영원한 2인자’ 라인은 1953년 3월5일의 게오르기 말렌코프처럼 주판알을 튕기고 있었을 터이다. 5000만 대한민국을 일시정지시킨 카카오톡 먹통 사태의 원인은 아주 간단하다. 판교의 SK C&C 데이터센터 전기실의 무정전 전원장치(UPS) 설비에 화재가 발생하였고, 이로 인해 카카오의 서버가 작동을 멈췄기 때문이다.
문제는, 카카오톡을 기반으로 하는 다른 수십 개의 서비스들까지 한꺼번에 같이 기능을 정지했다는 것이다. 카카오맵이나 카카오택시는 그렇다 치고, ‘돈’과 직결되어 있는 카카오뱅크와 카카오페이의 기능 정지는 대한민국 사회 전반에 엄청난 혼란을 불러왔다. 동시에 우리는 정부, 기업과 개인을 가리지 않고 그동안 얼마나 카카오 기반 서비스에 의존해왔는지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을 것이다.
지난 15일 발생한 화재의 영향으로 장애를 일으킨 카카오톡 오류 메시지. 연합뉴스
혹자는 이번 사태를 논하면서 카카오톡의 독점에 대한 문제를 제기한다. 그러나 여기서는 카카오톡의 독점 그 자체에 대해 지적하기보다는, 쓰기 편하고, 가장 범용성과 확장성이 좋으니 카카오톡을 전 국민이 쓴다는 것 그 자체를 받아들이고 거기서 파생되는 문제를 지적하고자 한다. 한국군의 어느 부대에서 대대장이 중대장들에게 유선 직통 전화 대신 카카오톡으로 업무 지시를 내리는 것은 더 이상 놀라운 현상이 아니다.
카카오톡은 분명 민간 IT 회사의 서비스에 지나지 않지만, 국가기간망이나 다름없어진 지 오래이다. 다만, 그렇게 국가기간망으로서의 지위를 유지하는 동안 카카오는 데이터센터의 백업과 분산에 대해 지금보다 훨씬 더 큰 주의를 기울였어야 할 것이다. 2023년, 카카오의 자체 데이터센터가 최초로 안산에 들어서는데 이 말을 반대로 생각하면, 지금까지 카카오는 그만한 영향력을 가지고도 변변한 자체 데이터센터 하나 없었다는 뜻이다.
실제로, 카카오는 그동안 KT 목동 IDC나 SK C&C 데이터센터 등에 더부살이를 해왔다. 이유는 영업비용 감축이겠지만, 외국에서 카카오와 비슷한 위상을 가진 회사들의 경우에는 데이터센터의 보안 확보와 분산을 통한 리스크 헤지에 훨씬 더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카카오와 똑같이 SK C&C 데이터센터에 입주했다가 똑같이 전원 공급이 끊긴 네이버는 2014년 강원 춘천시에 설립한 자체 데이터센터 ‘각’으로 상당 부분의 기능을 이전시켜놓았기 때문에 카카오에 비해 훨씬 빠른 서비스 복구가 가능했다. 이는 데이터센터 분산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카카오가 대한민국에서 차지하는 포지션, 즉 ‘민간 회사의 서비스이지만 안 쓰기에는 너무 멀리, 너무 넓게, 너무 깊이 퍼져버린 통합 IT 서비스’를 미국 혹은 전 세계에서 비슷하게 구현하는 회사를 생각하면, 가장 먼저 구글(Google)과 비자(VISA)가 떠오른다.
먼저 비자를 살펴보자. 카카오는 대한민국 밖에서는 별다른 힘을 못 쓰지만, 알래스카의 시골 마을 슈퍼마켓에서부터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희망봉에 있는 어느 관광 기념품 판매점까지, 전 세계에서 비자 카드 결제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 곳은 사실상 없다.
전 세계에서 20억명 이상의 고객과 6000만개 이상의 가맹점을 보유하고 있는 비자의 데이터센터에 사고가 발생해 결제 기능이 올스톱된다면 상상도 못할 대참사가 벌어질 것이다. 하루 3억건 이상의 결제가 처리되는데, 카카오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난 양의 데이터를 처리해야 한다. 그래서 비자의 데이터센터 위치는 극도의 보안 속에 숨겨져 있으며, 접근 권한이 없는 임원은 이 데이터센터의 위치를 모른다.
비자도 물론 그 규모만큼이나 입맛 도는 타깃이기 때문에 해커들의 공격을 종종 받는데, 2010년에도 비자와 마스터카드를 대상으로 한 대규모 해킹 사건이 있었다. 비자는 독자적인 데이터센터 포드(POD) 시스템으로 이를 훌륭히 방어했다. 총 7개의 포드가 있는데, 한 곳의 포드가 멈추면 다른 곳을 백업으로 가동하는 것이 아니라, 7개가 동시에 가동되면서 한 개가 멈추거나 말거나 나머지는 365일 계속 작동한다. 이 중 대표적인 OCE(Operation Center East) 포드의 보안 시스템을 ‘밝혀진 만큼만’ 자세하게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소프트웨어 보안이야 당연히 필요한 만큼 구축해놓았을 것이니 굳이 언급할 필요가 없고, OCE는 허리케인 등 자연재해에서 가장 안전한 미국 동부 해안 어딘가에 세워져 있으며 외부 전력 공급이 끊길 때를 대비해 시설을 9일 동안 가동할 수 있는 발전기용 디젤 연료를 저장하고 있다. 냉각수 공급이 끊기는 경우, 150만갤런의 물 저장 탱크에 있는 물을 대신 공급한다. 외벽은 시속 170마일, 허리케인 수준의 강풍과 지진에도 버틸 수 있으며, 자살폭탄 테러를 막기 위해 시속 50마일로 돌진하는 차량을 정문에서 막을 수 있는 블로킹 시설도 있다.
전직 군인들로 구성된 보안팀과 수백 개의 카메라가 각 포드를 방어한다. OCE에는 우편물 보관소가 없는데, 우편물 반입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테러-특히 탄저균 테러-를 막기 위해 인근의 모듈식 건물로 우편을 보내 먼저 개봉한 다음 이상이 없음을 확인한다.
비자는 영업비용보다 서비스의 안전과 연속성을 우선했고, 카카오는 그 반대였기 때문에 아직까지 자체 데이터센터를 갖추지 않았을 것이다.
카카오에 핵 벙커와 데이터센터 입구를 지킬 지대공 미사일 시스템을 바라는 것이 아니다. 준국가기간망으로서의 지위와 시장 점유율을 확보했다면 서비스의 연속성을 유지하기 위해 지금보다 훨씬 더 노력해야 한다. 남의 데이터센터 UPS실에서 배터리 몇 개가 불에 탔다고 전 국민이 주요한 통신수단과 결제수단 하나를 잃어버린다면,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는 전시 상황에서는 더한 일도 겪게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