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타는 지구를 그림이 보여주는 것은 아니지만
우석영 지음
마농지 | 304쪽 | 1만9000원
해가 뉘엿할 즈음 텐트 앞 모닥불을 피워두고 휴식을 취하려던 두 명의 사냥꾼 뒤로 커다란 곰 한 마리가 보인다. 한 명은 수상한 낌새를 채고 소스라치게 놀란다. 필립 굿윈(1881~1935)의 <곰이다!>에서 곰은 ‘불쑥 튀어나와 위협하는’ 타자다. 한편 다케우치 세이호의 <눈속의 곰>(1940) 속 고요한 화폭에 인간의 자리는 없다. 곰의 평균수명은 약 26년인데 이 중 짝을 이루고 새끼를 보살피는 2년을 제외하면 줄곧 야생에서 혼자 산다. 무리짓지 않는 고독한 삶이다. 곰을 단순히 ‘사냥감’이라든지 위협하는 ‘맹수’로 인식하는 시선으로는 주목할 수 없을 곰의 자연스러운 습성이다.
한 폭의 그림은 대상에 대한 시선을 오롯이 담는다. 우석영의 <불타는 지구를 그림이 보여주는 것은 아니지만>은 동물과 자연을 ‘그림’을 통해 보여준다. 제목처럼 이 책에 실린 글이 ‘불타는 지구’에 대한 직설적인 그림이나 글은 아니다. 다만 동물과 자연을 둘러싼 그림 속 시선들을 통해 우리는 인간이 비인간존재, 지구와 어울려온 과거와 현재를 톺아볼 수 있다. 수백년 전 개, 범, 고양이, 말 등 동물 그림에서 시작된 성찰은 오늘날 현재진행형인 문제들로 옮겨온다. 동물, 자연을 타자화해온 시선, 태도는 고스란히 기후위기, 팬데믹, 자연 훼손으로 번졌다.
기후 위기와 관련해 다양한 주장, 기사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기후 문제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의 마음은 좀체 움직이지 않는다. 이 책 속 다양한 동물, 자연을 각 시대의 독특한 시선으로 그려낸 그림들을 보며, 어쩌면 그림에는 백 마디 말보다 사람을 움직이는 힘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때론 직설적인 웅변보다도 에두른 문학이 큰 힘을 갖는다. 불타는 지구에 대한 ‘팩트’보다도 눈 속을 자박자박 밟아가는 까만 곰의 표표한 뒷모습이 무심한 이들의 마음을 움직일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