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층 아파트와 빵에는 공통점이 있다. 가루로 만들었다는 사실이다. 오늘날 건축물의 주재료는 콘크리트다. 콘크리트는 시멘트와 물, 골재인 모래와 자갈을 섞어 만든 것으로 신축 아파트 공사장에 줄지어 선 레미콘 트럭 안에 든 회색빛 물질이다. 모래와 자갈을 결합하는 접착제인 시멘트는 점토나 석회, 광물을 2700도가 넘는 가마에서 구워 빻은 가루다. 시멘트 10, 물 15에 골재 75 비율로 잘 섞으면 콘크리트가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콘크리트의 주성분인 모래는 무엇일까? 너무 흔해서 오히려 정의하기 어려운 사정을 살펴 지질학자들은 지름이 0.0625~2㎜ 크기의 알갱이를 따로 모래라고 부른다. 머리카락 지름이 대략 0.08㎜라면 모래알 크기를 얼추 가늠할 것이다. 사막이나 해변에 깔린 모래의 70%는 석영이다. 지각에 가장 풍부한 두 원소인 산소와 규소로 석영(SiO2)이 만들어진 덕분에 세상에 모래가 지천이다.
도시에 들어선 거의 모든 건축물과 도로는 콘크리트 기반으로 건설된다. 콘트리트는 위에서 누르는 힘에는 잘 버티지만 구부리면 쉽게 파괴된다. 이런 단점을 상쇄하고자 사람들은 콘크리트에 철근을 섞기 시작했다. 19세기 중반 프랑스에서 등장한 이 기법은 곧 세계로 퍼져나갔다. 1870년대 미국 뉴욕주에 최초의 콘크리트 건물이 들어섰다. 그 뒤로 도시는 확장을 거듭했다. 두바이와 홍콩 및 세계 곳곳의 마천루가 하천과 해안의 모래를 속속 빨아들인다.
반면 빵은 밀가루로 만든다. 질감을 부여하는 글루텐 단백질이 든 빵은 쫀득하다. 한국인들도 꽤 빵을 먹는다. 내가 처음 먹어본 빵은 원조 옥수수 알갱이가 고소하게 씹히는 투박한 것이었다. 내가 어릴 적에는 농가에서 밀을 많이 재배했다. 먼지 풀풀 날리는 논길을 걷다 밀 까불어 한참 씹으면 식감이 껌처럼 변했던 기억이 새롭다. 곡물인 밀은 공기 중 이산화탄소와 물을 재료로 한다.
벨기에 화학자 헬몬트는 물이 만물의 근원임을 증명하고자 화분에 버드나무를 심고 열심히 물을 주었다. 5년 뒤 버드나무는 164파운드로 늘었지만 흙의 무게는 거의 달라지지 않았다. 광합성 역사에 등장하는 이 긴 실험에서 헬몬트는 물이 나무로 ‘바뀜’을 수학적으로 증명했다. 하지만 그는 부분적으로만 옳았다. 성장한 버드나무 몸통은 대개 이산화탄소에서 비롯하기 때문이다. 최소한 생화학적으로는 그렇다. 하지만 나무가 뿌리를 내리고 창공을 향해 잎을 펼치지 못하면 물도 이산화탄소 기체도 빨아들이기 어렵다. 이때 등장하는 주인공이 바로 흙이다. 흙은 ‘풍화된 암석에 죽은 식물이 섞인 것’으로 정의된다.
육지에 있고 지구상에 식물이 등장한 이후 생겨난 물질이 흙이다. 식물이 진화하지 않았던 41억년 동안 지구에는 흙이 없었다는 뜻이다. 대신 화성이나 달 표면처럼 암석을 덮는 푸석푸석한 레골리스(regolith)가 있었을 뿐이다. 죽은 식물은 세균이나 곰팡이에 먹혀 공기로 돌아가지만 일부는 부식토로 변한다. 처음에는 이끼나 지의류가 흙을 만들었다. 헌칠했지만 뿌리는 보잘것없었던 석탄기 나무고사리가 진흙탕에 쓰러지면서 묻혀 ‘검은 다이아몬드’ 석탄으로 변신했다. 그 뒤로는 씨앗을 품고 세력을 확장한 겉씨·속씨식물이 흙의 주된 재료가 되었다. 지렁이는 낙엽과 점토를 먹고 흙 알갱이가 공처럼 쌓인 똥을 눈다. 그렇기에 우리 발아래 흙은 지렁이 똥이기도 한 것이다. 30년에 걸쳐 지렁이 분변토 실험을 마친 다윈은 이 환형동물이 1년에 2㎜ 두께의 토양을 만든다고 결론지었다. 동물과 식물이 합작하여 만든 흙은 지구 표면을 평균 1m 두께로 덮고 있다.
지구 피부인 흙은 태양 빛을 거두어 식물을 키운다. 17세기 헬몬트는 ‘질량 보존의 법칙’에 따라 식물이 크는 데 흙이 이바지하는 바가 없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흙 사이를 흐르는 물, 그 안에 든 질소와 인, 무기 염류가 없다면 식물은 자랄 수 없다. 약 1만년 전 농경이 시작되면서 흙은 본격적으로 인간 세상에 들어왔다. 숲에 불을 지르고 경작지를 넓히면서 인구가 급증했다. 사람들이 도시로 몰리자 모래가 건물 속으로 사라졌다. 인간은 스스로 거대한 생물학적 마천루가 되어 곡물과 그 안에 든 영양소를 고스란히 빨아들였다. 콘크리트 공간에 밀려 흙은 점점 여위어 간다. 보도블록 틈에 민들레가 간신히 노란 꽃을 틔운다. 가끔 허리 낮춰 흙 다시 만져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