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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순의 현실에서 벗어날 때

입력 2022.11.07 03:00

수정 2022.11.07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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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7일 경향신문 10면 상단에 “SPC 빵공장 노동자 끼임사 … 1주 전 비슷한 사고 있었다”라는 제목의 기사가, 같은 면 바로 아래에는 “기재부 ‘형사처벌’ 빼자 중대재해법 힘빼기 노골화”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모순의 현실이 한눈에 들어온다. SPC 계열사 SPL에서의 사망사고 이후에도 산재 사망사고는 끊이질 않는다. 지난달 18일 밀양 한국화이바에서 추락으로, 19일 거제 대우조선해양에서 지게차에 깔려, 20일 DL이앤씨 경기도 광주 고속도로 건설 현장에서 추락으로, 21일 SGC이테크건설 경기도 안성 물류창고 신축 현장에서 추락으로 노동자들이 사망했다. DL이앤씨의 사망사고는 올해만 벌써 4번째다. 일하다 죽고 죽고 또 죽는 참혹한 현실에서 ‘중대재해처벌법’은 더 엄격히 적용하고 개정한다면 강화하는 게 마땅하지만, 지난 8월 기획재정부는 기업의 입맛대로 경영책임자의 처벌 폭과 수위를 크게 낮추자는 법·시행령 개정 의견을 노동고용부에 전달했다. 이렇게 되면, 애초에 너무 느슨하게 제정된 중대재해처벌법은 무력화되고 사망사고를 비롯한 중대재해는 늘어날 것이다. 정부는 입만 열면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말하지만, 효율과 이윤이 안전과 생명을 압도하는 현실을 방치하거나 조장한다. 국민 대다수가 노동자다.

조현철 신부·서강대 교수

조현철 신부·서강대 교수

지난달 28일 한겨레 1면과 2면 상단에 “이대로면 21세기 말 지구 온도 2.5도 상승”이란 제목의 기사가, 같은 2면 상단 왼쪽에는 “3분기 성장률 0.3% … 소비·설비투자 덕에 역성장 피했다”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기후 재앙의 마지노선이라는 ‘1.5도 상승’을 1도 초과할 거라는 경고는 이전에 결정한 것보다 더 빠르고 더 많이 온실가스를 줄여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를 비롯한 세계 각국은 여전히 온실가스를 더 많이 배출할 수밖에 없는 경제성장에 몰두하는 게 현실이다. 끝없이 성장해야 하는 운명인 자본주의의 태생적 모순이다. 이 모순의 현실에서 어제 이집트에서 열린 제27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7)가 어떤 결론을 끌어낼지 모르겠다.

우린 비합리적 모순에 갇혀 있다

자동차는 놀라운 발명품이다. 하지만 차가 늘자 교통체증과 교통사고, 미세먼지와 온실가스 배출이 늘었다. 그런데 자동차가 몰고 온 문제가 아무리 심각해도 차를 줄일 생각은 하지 않는다. 대신 전기차와 수소차를 만들고, 길을 넓히고 새로 만든다. 그래야 경제가 성장한다. 이렇게 문제의 증상만 기술로 대응하면, 차는 계속 늘고 이전에 없던 문제도 생겨난다. 무엇보다 온실가스 배출을 필요한 만큼 적기에 줄일 수 없다. 지난해 독일 베를린 시민 5만명은 도심 내 일부 지역에서 원칙적으로 개인 차량 운행을 금지하는 법안에 서명했다. 교통 부문 탄소배출 목표를 달성하려면 전기차로 ‘주행 방식’을 바꿀 게 아니라 ‘주행량’을 줄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근본적이고 직관적이며, 상식적이고 효과적이다. 차량이 줄면 교통사고가 줄고 녹지와 공공장소는 늘 것이다. 좋은 삶으로 가는 첩경이다. 하지만 자동차의 편리나 매력, 무엇보다 경제성장의 당위가 상식을 압도하는 게 현실이다.

우리는 그 자체로는 합리적이고 효율적일지 모르나 전체로는 비합리적이고 파멸적인 모순에 갇혔다. 아무리 물질적으로 풍요로워도 우리 삶이 평온할 리 없다. 더 큰 문제는 갇힌 줄도 모른다는 것이다. 모순에서 벗어날 수 없는 까닭이다. “기술이 몰고 오는 위기, 기술로써 극복하라!” 요즘 어디선가 본 광고 문안이다. 멋지게 보일지는 몰라도, 새로운 기술을 말하기 전에 위기를 몰고 온 원인, 곧 그 기술을 먼저 돌아봐야 하지 않나. 그 기술도 애초에는 필요하다고 개발했을 텐데, 그렇게 생겨난 위기를 극복하려고 개발한 새 기술이 또 다른, 더 심각한 위기를 몰고 오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있나? 그러면 또 다른 기술로 극복하나? 그런데도 문제가 생기면 근원은 제쳐두고 증상만 해결해줄 기술에 매달리는 게 현실이다.

중요한 건 욕망 줄이는 법 배워야

인간에게는 한계가 있다. 기술로 한계를 늘릴 순 있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다. 이 한계를 인정하지 않고 기술로 한계를 밀어낼수록 삶은 기술로 재단되고 자율은 제거된다. 지난달 15일 판교 데이터센터 화재로 편리하고 자유롭기 짝이 없는 듯한 우리의 삶이 실제로는 얼마나 허약하고 매여있는지 드러났다. 우리의 “자유는 예속”이었다. 적절한 필요는 충족되어야 마땅하지만, 산업경제의 소비문화는 언제나 ‘더 많이’를 주장하며 우리를 옭아맨다.

지금 중요한 것은 무엇을 더 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할지, 언제 멈출지 아는 일이다. 우리가 부의 불평등 증대와 삶의 토대인 자연의 잠식을 원하지 않는다면, 지금의 욕망은 줄이고 다르게 욕망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한계 안에 기꺼이 머물려고 할 때, 우리의 삶은 안전하고 평화로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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