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제주비엔날레’, 진통 겪고 5년 만에 열려
‘움직이는 달, 다가서는 땅’ 주제로 내년 2월까지
박남희 예술감독, 16개국 작가 작품 165점 선보여
미술계, “안정적 비엔날레 위한 숙제는 여전”

‘2022 제주비엔날레’에서 선보이고 있는 김수자 작가의 신작 ‘흐름’. 제주도립미술관 제공
제주비엔날레가 16일부터 문을 열고 관람객을 맞이하고 있다.
2년마다 열리는 대규모 미술축제인 비엔날레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게 2017년 제1회 개최 이후 5년 만에 열리는 제주비엔날레다. 첫 회 개최 이후 졸속 추진, 내부 갈등 등 논란이 이어졌고 2020년에 추진되던 제2회 비엔날레도 연기를 거듭하는 진통 속에 코로나19 사태까지 겹치면서 추진 도중 무산됐다. 제주특별자치도 산하 제주도립미술관은 결국 지난해 연 ‘프로젝트 제주’ 행사를 제2회 제주비엔날레로 대체했다.

조선시대 제주도 곳곳의 기록화 화첩 ‘탐라순력도’(보물)를 재해석한 이이남 작가의 ‘기억의 뿌리’. 제주도립미술관 제공
‘2022 제3회 제주비엔날레’는 전시기획자로 활발한 활동을 펼쳐온 박남희씨(52)가 예술감독을 맡아 우여곡절을 딛고 5년 만에 막을 올렸다.
올해 비엔날레는 ‘움직이는 달, 다가서는 땅(Flowing Moon, Embracing Land)’을 주제로 내년 2월 12일까지 주제관인 제주도립미술관·제주현대미술관을 중심으로 제주도 내 곳곳의 문화예술공간(제주국제평화센터·삼성혈·가파도 작가 레지던스(AiR), 미술관옆집 제주)에서 펼쳐진다. ‘움직이는 달’은 달로 상징되는 자연의 순환성과 생명의 생동성을, ‘다가서는 땅’은 땅이라는 자연 속에서 호흡을 주고 받으며 살아가는 모든 생명의 관계적 행위를 의미한다.

제주 출신의 거상으로 조선 사회에 큰 영향을 끼친 김만덕을 오마주한 윤석남의 작품 ‘김만덕의 심장은 눈물이고 사랑이다’(2015). 제주도립미술관 제공
박남희 예술감독은 “비엔날레를 통해 자연 공동체의 신화와 역사를 만들어온 양생(養生)의 땅 제주에서 자연으로부터 부여받은 본래의 생명 가능성을, 또 자연 공동체의 일부로서 인간의 존재 이야기를 함께 사유해 보고자 한다”고 밝혔다. 박 감독은 “지구적 전염병과 기후 위기 등의 상황 속에서 전 지구적 공생의 방향은 자연의 순환성과 생동성의 회복”이라며 자연과 인간, 생명과 비생명, 물질과 비물질 사이의 공존과 조화 등을 다룬 출품작들을 통해 삶의 태도, 예술적 실천도 성찰할 수있기를 기대했다. 제주의 독특한 자연과 역사·문화 등 지역적 특성도 비엔날레의 한 토대로 작용하고 있다.
비엔날레에는 16개국 작가 55명(팀)이 모두 165점의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제주도립미술관에서는 국내외 작가 33명의 작품을 만날 수있다. 국제적으로 활발한 작품활동을 펼치고 있는 김수자를 비롯해 자연 소재로 예술가구 작업을 하는 최병훈, 인종과 탈식민주의·디아스포라 등을 주제로 한 존 아캄프라 감독의 작품 등이 대표적이다. 조선시대 제주 출신의 거상 여성으로 전국적으로 이름을 남긴 김만덕을 오마주한 원로작가 윤석남, 기계의 눈으로 본 자연으로 국제적 주목을 받은 과욜라 등의 작품은 제주현대미술관에 나왔다.

문경원&전준호의 ‘이례적 산책’(2018-2019)과 목진요의 ‘양단의 별’(2022). 제주도립미술관 제공

‘2022 제주비엔날레’ 예술감독인 박남희 전시기획자가 지난 15일 제주비엔날레 개막식에서 주제를 설명하고 있다. 제주도립미술관 제공
제주의 독특한 지역성을 기반으로 한 작품들도 있다. 조선시대 제주도 곳곳을 담은 채색 기록화 화첩이자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지정된 ‘탐라순력도’를 재해석한 이이남의 미디어 아트 작품을 비롯해 제주 해녀복을 소재로 하거나(이승수) 제주 바다를 1년 동안 그린(노석미) 작품 등이다(제주국제평화센터 전시장). 작가 레지던스(AiR)가 있는 가파도에서도 가파도 일대의 해양 쓰레기 문제를 다룬 홍이현숙의 작품 등을 만난다.
이외에도 제주의 유명 원로작가인 강요배를 비롯해 문경원·전준호, 김기라, 강이연, 박지혜, 신예선 등 국내 작가와 레이첼 로즈, 왕게치 무투, 자디에 사, 팅통창, 리크릿 티라바닛 등의 다채로운 작품도 감상할 수 있다.

아프리카 여성 미술 정신을 기반으로 한 작품활동으로 국제적 주목을 받는 케냐계 미국 작가 왕게치 무투의 작품 전시 전경. 제주도립미술관 제공
비엔날레 기간 동안 전시와 연계해 어린이·가족 체험프로그램, 시민교양 강좌, 작가와 큐레이터 토론회 등 여러 부대 행사도 열린다. 자세한 행사내용과 입장권 발매·전시장 관람 시간 등은 제주비엔날레 누리집(https://jejubiennale.org)에서 확인할 수 있다.
제주 미술가들을 비롯해 미술계 관계자들은 제주비엔날레 개최를 반기면서도 “안정적이고 제대로된 비엔날레 개최를 위해선 여전히 풀어야 할 숙제가 많다”고 밝혔다. “향후 비엔날레의 개최 여부가 여전히 불안하며, 존폐위기 마저 사라진 것이 아니다”는 것이다. 제주비엔날레를 불안하게 보는 핵심 요인은 국제적 비엔날레를 열고 있는 다른 지방자치단체들과 달리 제주비엔날레는 독립된 비엔날레조직위원회가 없다는 점이다.
한 지자체 비엔날레 예술감독 출신의 전시기획자는 “제주도립미술관이 국제적 비엔날레를 맡다보니 인력·예산 부족 등이 늘 지적돼 왔다”며 “사실 더 큰 문제는 별도 조직위가 없다보니 도청과 미술관과 예술감독 사이에 여러 마찰과 갈등이 발생한 게 지금까지의 제주비엔날레”라고 지적했다.
그는 “제주비엔날레가 이름에 걸맞게 안정적·체계적으로 개최되기 위해서는 제주특별자치도의 결단이 요구된다”며 “예산과 인력 등 여건상 힘들다면 비엔날레라는 문화예술 이미지로 제주도를 포장해보려는 욕심을 버리고 차라리 포기하는 게 맞다. 할려면 제대로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 제주도립미술관 관계자도 “비엔날레의 안정적 개최, 지속가능성을 갖기 위해서는 조직위 구성 등이 필요한게 사실”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