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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로시 떠난다…미 첫 여성 하원의장·명암 뚜렷한 거물 정치인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이 17일(현지시간) 20년 만에 민주당 지도부에서 물러나기로 했다. 미국 역사상 최초의 여성 하원의장으로 수많은 회의와 묵직한 입법안 처리,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 등을 이끌었던 그가 마침내 의사봉을 내려놓는 것이다. 펠로시 의장의 퇴진과 함께 최근 중간선거에서 하원을 공화당에 내준 민주당 내 세대교체가 빠르게 진행될 것으로 전망된다.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이 17일(현지시간) 워싱턴 연방의사당에서 연설하는 도중 동료 의원들로부터 기립박수를 받고 있다. 워싱턴|AP연합뉴스 사진 크게보기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이 17일(현지시간) 워싱턴 연방의사당에서 연설하는 도중 동료 의원들로부터 기립박수를 받고 있다. 워싱턴|AP연합뉴스

의원 경력 35년, 민주당 하원 리더 20년
여성 참정권 상징 흰색 정장 입고 퇴장 선언

펠로시 의장은 이날 하원 연설에서 내년 1월 시작되는 새 의회에서 당 지도부 선거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그는 “이제 우리는 대담하게 미래로 나아가야 한다”면서 “새로운 세대를 위한 시간이 왔다”고 말했다. 중요한 순간마다 즐겨입었던 여성 참정권 운동을 상징하는 흰색 정장 차림이었다.

펠로시 의장의 거취는 지난 8일 치러진 중간선거 하원의원 선거에서 민주당의 패배가 유력해졌을 때부터 미 정가의 최대 관심사였다. 공화당은 전날 하원 과반 기준인 218석을 확보했고, 펠로시 의장은 바로 다음 날 퇴진 의사를 밝혔다.

펠로시 의장은 대통령, 부통령에 이어 미국 권력 서열 3위인 하원의장직을 두 차례 수행했다. 여성 최초로 하원의장에 오른 2007년 1월~2011년 1월, 그리고 2019년 1월 민주당이 다수당이 된 뒤부터 현재까지. 민주당이 다수당 지위를 빼앗긴 뒤 민주당 하원 원내대표를 맡았던 기간까지 합하면 그는 장장 20년 간 하원에서 민주당의 리더이자 간판, 정신적 지주 역할을 했다.

2007년 1월 여성 최초로 하원의장이 된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 펠로시 의장을 둘러싼 어린이들은 미 의원들의 자녀 등 가족들이다.

2007년 1월 여성 최초로 하원의장이 된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 펠로시 의장을 둘러싼 어린이들은 미 의원들의 자녀 등 가족들이다.

하원의장 재임 시절 그는 오바마케어(의료개혁법안)부터 가장 최근 인플레이션 감축법(IRA)까지, 민주당 주도 입법안을 노련한 솜씨로 통과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역사는 그를 가장 훌륭한 하원의장으로 기억할 것”이라고 밝힌 성명에서 “그가 이끄는 한 나는 한 번도 법안 통과 여부를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그가 (찬성)표를 확보했다고 말하면, 진짜였다. 매번 그랬다”고 말했다.

펠로시 의장은 특히 2007년 7월 위안부 결의안이 만장일치로 하원 본회의를 통과하는 데 큰 역할을 하기도 했다.

트럼프 행정부 시기인 2019년 1월 그가 두번째 하원의장에 출마했을 때는 고령 등을 이유로 반대하는 여론도 있었다. 하지만 트럼프 전 대통령의 일방독주를 막는 데는 펠로시 의장 만한 적임자가 없다는 의견이 용퇴론을 압도했다.

펠로시 의장은 ‘트럼프 저격수’ 역할을 톡톡히 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에 대한 두 차례의 탄핵소추가 하원에서 가결되도록 이끌었다.

기싸움에서도 지지 않았다. 2020년 2월 트럼프 전 대통령이 의회 국정연설 당시 펠로시 의장이 청한 악수를 외면하자, 연설이 끝난 직후 연설문을 찢어버리는 강렬한 퍼포먼스를 했다. 특히 트럼프 전 대통령의 대선 패배에 불복한 극우 공화당 지지자들이 지난해 1월 6일 의사당에 난입했을 때 동요하지 않고 선거인단 투표 결과를 처리했다.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이 2019년 2월 도널드 트럼프 당시 대통령이 워싱턴 연방의사당에서 국정연설을 한 뒤 연단을 떠날 때 묘한 자세로 박수를 보내고 있다. 이 장면은 인터넷에서 수많은 밈을 탄생시켰다. 워싱턴|로이터연합뉴스 사진 크게보기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이 2019년 2월 도널드 트럼프 당시 대통령이 워싱턴 연방의사당에서 국정연설을 한 뒤 연단을 떠날 때 묘한 자세로 박수를 보내고 있다. 이 장면은 인터넷에서 수많은 밈을 탄생시켰다. 워싱턴|로이터연합뉴스

트럼프 독주 견제…연설문 찢기도
8월 대만 방문 강행 논란 빚어

근래 미국 정치에서 펠로시 의장 만큼 찬사와 비난을 동시에 받은 정치인도 찾아보기 드물다. 뉴욕타임스(NYT)는 “그처럼 오랫동안 보수층의 히스테리를 자아낸 인물도 없었다”고 전했다. 특히 재임 시절 그를 사사건건 비난했던 트럼프 전 대통령은 지난 15일 대선 출마 선언 자리에서도 “낸시 펠로시는 해고됐다”고 말했다. 진보 진영, 특히 민주당 내 젊은층 사이에에선 펠로시 의장을 두고 “너무 기득권이다. 너무 타협적이다. 지금의 정치적 위기를 이해하지 못한다”(NYT)는 비판이 제기돼 왔다.

펠로시 의장은 지난 8월에는 백악관과 국무부의 만류에도 대만 방문을 강행했다. 중국은 이에 강력 반발하면서 미·중 당국 간 대화 채널 8개를 끊어버렸다. 펠로시 의장이 미·중 관계 악화 부담에도 대만을 찾은 데 대해선 개인적 배경이 크게 작용했다는 관측이 있다. 중국계를 포함한 아시아계 이민자가 많은 샌프란시스코에서 정치를 시작한 그는 1991년 천안문 학생시위를 폭력 진압한 중국 당국을 비판하는 목소리를 낸 바 있다.

지난 8월 3일 대만을 방문한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이 타이페이에서 차이잉원 대만 총통과 만나 포즈를 취하고 있다. 타이페이|AP연합뉴스 사진 크게보기

지난 8월 3일 대만을 방문한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이 타이페이에서 차이잉원 대만 총통과 만나 포즈를 취하고 있다. 타이페이|AP연합뉴스

중간선거 직전에는 자신을 공격하기 위해 자택에 침입한 괴한에 의해 남편 폴이 피습을 당하는 사건도 겪었다. 당시 워싱턴에 머물고 있던 펠로시 의장은 명백한 정치테러에 비교적 침착하게 대처했지만, 트라우마와 생존자로서의 죄책감까지 겪었다고 고백한 바 있다.

볼티모어 시장이던 아버지 덕분에 어린 시절부터 선거 유세를 가까이서 봤던 그가 정계에 입문한 것은 1987년. 당시 그는 47세의 다섯 자녀를 키우는 전업주부였다. 늦깎이 정치인이었지만 타고난 언변과 협상력, 자금력을 바탕으로 빠르게 당 중심부에 진입했다. 그는 이날 연설에서 여성 의원 수가 1987년 12명에서 90명으로 늘어났다며 “이제 아름다운 미국의 구성을 반영하는 방향으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하원의장에서 내려오는 그는 샌프란시스코를 지역구로 하는 캘리포니아 11구의 ‘19선’ 의원이자 평당원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대선을 앞두고 펠로시 의장의 선거자금 동원 능력이나 정치적 영향력을 고려하면 막후 역할론이 대두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펠로시 의장과 함께 하원 민주당 2인자 스테니 호이어 원내대표, 3인자 제임스 클라이번 원내총무도 사퇴 의사를 밝혔다. 민주당 하원 핵심 지도부가 중간선거 패배 책임을 지고 물러나면서 당내 세대교체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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