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집 근처 시장 주변 골목을 걸었다. 화려한 조명과 함께 ‘노래방’과 ‘유흥주점’ 간판들이 보였다. 지나가던 어린아이가 “노래방 가고 싶다”고 말했다. 부모는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아마 ‘노래방’이 노래만 부르는 곳은 아니라는 걸 알아서였을까.
노래방이나 유흥주점 주변을 둘러보면 꼭 모텔이나 ‘호텔’ 간판이 붙은 곳이 있다. 좀 더 후미진 곳엔 여관도 있다. 이전엔 ‘왜 이런 곳에 있지?’라고 생각했다. 이젠 왜 여기에 존재하는지 안다. 한국의 성매매 산업은 합법과 불법이 한데 얽혀 30조원 규모를 육박한다. 유흥산업은 합법인데, 성매매는 불법이다. 하지만 흔히 ‘2차’라고 불리는 성매매가 존재한다는 걸 누구나 다 알고 있다. 주변 풍경과 어울리지 않는 호텔·모텔·여관들은 ‘2차’를 위한 공간이다.
“관심을 갖지 않으면 유흥업소 간판이 잘 안 보여요. 하지만 관심을 두고 보면 일상적 공간에 너무나 많은 유흥업소들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 못 보는 것일 뿐, 있는데도 없는 것처럼 유령처럼 존재하는 이상한 곳이죠. 내 바로 옆에 이런 공간들이 있고, 그 공간에 여성들이 있습니다. 작은 관심부터 갖는 것이 작은 연대가 될 수 있지 않을까요.”
황유나 반성매매인권행동 이룸 활동가가 말했다. 작심하고 찾아보니 보이지 않던 곳들이 분명히 보였다. 누군가의 눈에는 항상 보였고, 일상 속에서 쉽게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이었을 것이다. 한국의 성산업은 공기처럼 자연스럽게 일상 속에 존재한다. 이룸은 최근 성산업 안에서 억압받고 착취당하는 성매매 여성들을 처벌하는 현행법 개정을 요구하는 <불처벌>(휴머니스트)을 펴냈다. 이룸의 활동가 황유나와 노혜진을 지난달 24일 서울 중구 경향신문사에서 만났다.
“2016년 헌법재판소가 성매매 여성을 처벌하는 현행법이 합법이라고 판결했습니다. 현장에서 상담·지원 활동을 하면서 성매매 여성들이 처벌받는 현실이 여성들을 굉장히 고립시키는 원인이 된다는 걸 알게 됐어요. 법적 처벌뿐 아니라 낙인·차별·혐오 같은 사회적 처벌도 존재합니다. 연구자, 변호사 등이 함께 모여 성매매 여성이 처벌받아온 역사와 제도 등을 공부하면서 그 결과물을 사람들과 나누고 싶었습니다.”(황유나)
책은 2004년 제정된 성매매특별법의 한계로부터 출발한다. 군산 성매매 집결지에서 발생한 화재로 성매매 여성들이 2000년 5명이 사망하고, 2002년 14명이 숨진 뒤 ‘윤락행위등방지법’이 ‘성매매특별법’으로 개정됐다. 법 개정 후 18년, 한국의 성산업은 여전히 성행하고 있다. 성매매 여성에 대한 처벌을 유지함으로써 음성적 공간에서 이뤄지는 성폭력·폭력·절도 등 다종한 범죄에 여성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한다. “경찰에 신고하는 순간 성매매 사건이 되고 여성은 피의자가 되기 때문”이다. 성매매 여성들은 인권의 사각지대에서 착취당하고, 여기서 나오는 이익으로 거대한 성산업이 굴러간다. 한국 성산업 규모는 최대 37조원까지 추산된다. 반성매매 단체들은 ‘성매매 여성 불처벌’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올해 초 ‘성매매처벌법개정연대’가 발족했다.
“성매매 여성이라는 걸 드러내면 법적인 처벌뿐 아니라 사회적 비난과 혐오의 대상이 됩니다. 업주, 대부업자, 구매자들은 이를 이용해 성매매 여성들을 통제하고 착취해요. 구매자는 여성을 특정한 시공간에서 성적으로 통제하고 싶다는 욕구로 성구매를 하고, 금전을 줬기 때문에 폭행과 부당한 대우가 용인된다고 생각합니다. 업주와 성구매자로부터 폭행이나 성폭력을 당하는 일이 비일비재합니다.”(노혜진)
<불처벌>은 성매매를 개인 사이의 성적 거래를 넘어 여성의 몸과 성을 상품화하는 산업과 자본의 문제로 본다. 금융회사로부터의 대출 등을 통해 합법적 경제 영역까지 광범위하게 얽혀 있다. 성산업에 유입되는 여성들은 자원이 없는 가장 취약한 여성, 즉 어리고 빈곤한 여성이다. “우리 사회에서 빈민은 여성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성매매 산업은 여성의 개별적 탈빈곤 전략을 시장화하는 산업”이라고 책은 말한다.
노혜진은 “성매매 여성의 존재 자체가 불법이기 때문에 업주는 절대적 권한을 행사한다. 성매매 업주와 결탁한 대부업은 무법지대로 법정 최대 이자율을 상회한다. 업주가 대부분 대부업을 운영하거나 업주와 동업관계의 대부업자가 여성들을 대상으로 고리의 대출을 강요한다”고 말한다. 성산업의 구조상 ‘몸값’을 올리기 위한 성형수술 등이 강요되며, 이는 고리의 대출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황유나는 “<레이디 크레딧>이란 책을 보면 성매매 산업이 여성들의 몸을 담보 삼아 굴러간다고 지적한다. 계속 빚을 지게 만들어 끔 해서 성매매 산업에서 빠져나가지 못하게 하는 구조”라며 “인터넷에 검색해보면 ‘아가씨 대출’ ‘업소 대출’이 버젓이 광고되고 있다”고 말했다.
디지털 발달로 성산업도 다변화하고 있다. n번방은 극단적 사례로, 조주빈은 ‘성착취 영상’으로 돈벌이를 했다. n번방 사건으로 디지털 성착취가 공론화되고 관련 법들이 개정됐다. 미성년자에 대한 성착취라는 점에서 많은 사람들이 공분했다. 황유나는 “n번방 피해자 가운데 성인 여성도 있었지만 잘 드러나지 않았다. 온라인에 유행하는 ‘벗방’도 n번방과 유사하게 철저히 계획된 상태에서 여성들을 착취하는 구조로 이뤄진다”며 “성폭력과 성착취가 뭐가 다른지 논의가 확대되면 좋겠다. 성인이라고 해도 남녀 성별 권력관계가 존재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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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적 처벌을 없애는 것은 사회적 처벌을 없애는 것과 함께 가야 한다. 황유나는 “성판매 여성을 비난하고 어떤 폭력을 당해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은 동시대 시민으로 여기지 않는 것”이라면서 “인간으로서 어떤 사람은 권리를 박탈당해도 괜찮은 사람이라고 분리해서 생각하는 것이며, 그런 분위기 속에서 성매매 여성에 대한 처벌이 합리화된다”고 말했다.
성폭력 고발운동 ‘미투’ 당시에도 성매매 여성들이 당한 성폭력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어려웠고, 발언을 하더라도 지지받기 어려웠다. 성매매 여성에 대한 성폭력이 범죄로 여겨지지 않는 배경엔 성매매 여성을 ‘우리’와 분리시켜 동시대 시민으로 사고하지 않는 인식이 존재한다. 성매매 여성의 존재 자체가 ‘불법’인 점, 법적인 처벌과 ‘사회적 처벌’의 대상인 점이 그러한 인식을 가능하게 한다.
“성매매는 여성을 상품으로 거래하고 이윤을 창출하는 행위를 사회문화적으로 용인하기 때문에 지속됩니다. 성매매 여성 불처벌은 성매매를 사회구조적 젠더 문제로 사유하고 개입하기 위한 시작점이며, 성매매 산업의 축소·근절이라는 목표를 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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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경 기자 samemind@kh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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