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의 ‘쓸모’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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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와 도서관 이용자 사이
일면식도 없던 이웃 사이를
책을 매개로 이어주는 공간
사회적 공공 인프라 이루며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 창출
‘예산’만으로 재단할 수 없어
독자님은 도서관에 자주 다니시는 편이신가요? 저는 회사 근처에 커다란 도서관이 있어서 자주 다니는 편입니다. 인스피아를 시작하고 나선 한층 더 자주 오가게 되었고요.
최근 서울 마포구청장이 관내 구립 ‘작은도서관’의 예산 삭감, 축소 방침을 밝혀 논란이 되었는데요. 반발이 커지자 구청 측은 기존 도서관 기능은 그대로 둔 채 ‘독서실’로서의 기능을 더하겠다고 해명했지만, 여전히 의문은 남습니다. 도서관, 지역 시민단체들은 마포구의 작은도서관 축소, 폐관 조치에 맞서 청원을 진행했습니다.
도서관은 ‘독서실’이 될 수 있을까요? 왜 어떤 사람들은 여전히 도서관을 사랑할까요? 사람들이 책을 안 읽는 시대에 도서관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엉뚱하고 살아있는 도서관
수전 올리언이 쓴 <도서관의 삶, 책들의 운명>은 1986년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공공도서관 대화재 미스터리를 추적해가는 논픽션입니다.
이렇게 소개하면 스릴 넘치는 범죄 미스터리물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사실은 로스앤젤레스 공공도서관이 어떻게 책, 독자들과 교류해왔으며, 어떻게 화재에서 복구되었고, 그 이후 현재까지 어떻게 이용자들과 교류해 오고 있는지에 대한 내용이 주입니다. ‘도서관 덕후’인 저자에게 있어서 도서관이라는 공간은 곧 ‘삶’이었습니다. 그는 우연한 기회에 로스앤젤레스 공공도서관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화재 사건을 추적합니다.
저자는 “공공도서관이 지닌 공공성은 요즘 세상에서 점점 희귀해지고 있다. 모두를 환영하는 곳, 그리고 그렇게 따뜻하게 받아들여주면서도 돈을 청구하지 않는 곳을 떠올리기란 갈수록 어려워진다”고 하는데요. 로스앤젤레스 공공도서관은 노숙자, 아이 등을 이용자로 받아들이고 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만들었고요. 도서관은 때로 재난이 닥쳤을 때 마을의 ‘광장’이 되었습니다.
로스앤젤레스 공공도서관의 명성은 열의 있는 사서, 책임자들의 헌신에 큰 빚을 지고 있었는데요. 이용자에게 책을 추천해주는 것은 기본이고, 독특한 질문코너를 운영하며 이용자들의 궁금증을 풀어주었다고 합니다. ‘도서관 질문’의 전통은 지속되어 로스앤젤레스 도서관은 1970년대에는 SCAN이라는 ‘지식 응답서비스’를 운영하기도 했습니다. 들어왔던 질문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 “넥타이가 욕조에 빠졌어요”를 스웨덴어로 어떻게 말하는지 알고 싶어함. 그는 대본을 쓰고 있었음.
- 술고래인 남편을 위해 간질환에 관한 책을 요청함.
- “곰이 북극에서 기침을 했다”라는 표현의 원출처를 알고 싶어함(답을 알려주지 못함)...
이런 엉뚱한 질문들에 대한 답은 분명 인터넷 검색이나 책을 통해 얻기 힘들겠죠? 한편 열의가 지나친 사서였던 러미스는 도서관에 들어온 사이비 과학서적 등 형편없는 책에 ‘독극물 표시’를 하고, “이 책을 볼 거면 차라리 다른 책을 보는 편이 나을 것”이라고 경고를 하기도 했는데요. 이런 엉뚱하면서도 사서와 이용자 간의 돈독한 소통을 보여주는 에피소드들을 보면서 저는 생각했습니다. 어쩌면 이런 이야기들은 한물간 얘깃거리가 아니라, 미래에도 도서관이 어떤 형태로 이용자들과 소통해야 하는지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 하고요. 저자는 로스앤젤레스 도서관의 관계자들과 대화를 나누며 미래에 도서관이 어떤 모습이어야 할지에 대해 단서를 제시합니다. 미래엔 도서관이 “단순한 자료 보관소”가 아닌 “정보 및 지식 센터”가 돼야 한다는 것이죠.
로스앤젤레스 공공도서관에서 방문객들은 누구나 조언을 받아 원하는 책을 읽고, 사서와 담소를 나누고, 맘껏 해찰을 할 수 있었습니다. 가난한 아이든, 노인이든, 직장인이든 상관없이 말이죠. 이렇게 자유분방하고 열린 도서관의 정신이 수전 올리언 같은 ‘도서관 덕후’를 낳고, 이런 매력적인 책을 낳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구멍’을 내는 도서관
이처럼 오래전부터 사람들은 도서관에서 다양한 지식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다만 꼭 도서관의 목적이 ‘지식’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동네 도서관이 세상을 바꾼다>를 쓴 이소이 요시미쓰는 중소기업 사원이었다가 일본 내 ‘동네도서관 바람’의 주역이 된 인물입니다.
이소이 요시미쓰는 처음부터 굉장히 파격적인 선언을 하며 책을 시작합니다. “책이 많지 않아도 도서관을 할 수 있다!” 그는 일단 모이고 싶은 마음, 함께 배우고 소통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면, 책은 그 이후에 마련하거나 각자 가져와도 괜찮다고 말합니다. 이 때문에 도서관 서가에 책을 마련하는 것을 ‘나무 심기’에서 따와 ‘식본(植本)’이라고 부르기로 합니다.
이 책에서 소개되는 도서관들은 하나같이 독특한데요. 개인의 서재를 활용해 만든 작은 개인 도서관, 특정한 주제에 대한 도서관, 병원이나 대학에 차려진 간이 도서관 등입니다. 그런데 왜 굳이 도서관일까요? 저자에게 있어 ‘도서관’이라는 정체성은 중요합니다. 책을 매개로 했을 때 사람들은 나이, 계층, 목적 등과 무관하게 순수한 마음으로 모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책의 가치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배움에는 나이나 성별, 지위 따위의 사회적 조건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 책을 매개로 하면 지위나 입장이 아닌, 상대방을 사람 그 자체로서 받아들일 수 있고 평등한 관계를 유지하며 배움을 나눌 수 있다.”
오늘날엔 점차 아무런 연관이 없는 성인이 돈을 내지 않고 평등하게 어울려 담소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이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저자는 책에서 ‘제3의 장소’ 개념을 언급하기도 하는데요. 동네도서관이 바로 그런 공간이라는 것이죠. 저자는 도서관을 통해 이어진 인연인 ‘도서관 가족’에 대해 “피를 나눈 가족과 지역 커뮤니티의 중간쯤에 위치하는 존재”라며 “감성이 통하고 분위기가 맞는 사람들이 책으로 이어져 서로의 생활과 장래에 관심을 두고 도움을 주는 관계가 형성된다”고 말합니다.
저자는 나아가 ‘도서관’이 어른에게 놀이, 목적 없는 즐김, 조건 없는 호혜의 공간이 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저자는 동네도서관 활동을 하면서 “돈도 안 되는 걸 왜 하냐!”는 질문을 자주 받았다고 하는데요. 그는 동네도서관 활동을 “네 살배기 꼬마가 놀이터 모래밭에서 터널을 만들며 노는 것”에 비유합니다. ‘쓸모’나 ‘목적’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냥 재미’ ‘빈둥거림’을 위해 한다는 거죠. 그는 이런 “한눈을 팔며 이곳저곳을 산책”하는 것을 통해 만나는 발견이 “생활에 윤택함을 준다”며 그것이 바로 동네도서관의 역할이라고 말합니다.
앞서 마포구청장은 “예산 낭비”라며 도서관을 없애겠다고 했다지만, 저자의 입장에서 볼 땐 ‘대체 도통 뭘 하는 공간인지 모를 지경’인 편이 이상적인 도서관에 가까울 것입니다.
■도서관을 잃어버린 도시
1995년 극심한 폭염이 미국 시카고를 덮쳤습니다. 당시 무려 739명이 사망했는데요. 지역별 사망자 수엔 유의미한 차이가 있었습니다. 시카고 안에서도 잉글우드의 사망률은 10만명당 33명꼴이었던 반면, 오번그래셤의 사망률은 10만명당 3명꼴로 잉글우드보다 재난을 더 잘 견뎠다고 하죠. 이런 차이를 만들어낸 핵심 요소는 도시의 사회적 인프라, 관계망이었습니다. 비록 가난한 동네라고 해도 평소 주민 간의 교류가 활발하고 ‘사회적 자본’이 많은 도시는 상대적으로 피해가 적었습니다.
에릭 클라이넨버그는 <도시는 어떻게 삶을 바꾸는가>에서 ‘도서관’을 무척 중요한 도시 속 사회적 자본의 사례로 꼽고 있습니다. 같은 재난이 와도 도시에 어떤 사회적 인프라, 관계망이 조성되어있느냐에 따라 실제 피해에 큰 차이가 있는데, 도서관이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죠. 급속히 개인화, 원자화되는 도시에서 도서관은 이웃과 편견이나 허물없이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얼마 남지 않은 사회적 공간입니다. 책 속 내용 일부를 인용해보겠습니다.
“튼튼한 사회적 인프라는 친구나 이웃끼리 만나고 서로 지지하며 협력하기를 촉진하는 반면, 낙후한 사회적 인프라는 사회 활동을 저해하고 가족이나 개개인이 자기 스스로를 돌보지 않으면 안 되게끔 만든다. 사회적 인프라의 역할은 가히 결정적이라 할 만큼 중요하다. 학교나 놀이터 혹은 동네식당 등에서 벌어지는, 서로 얼굴을 직접 마주하며 이루어지는 지역적 교류가 곧 그들의 공공 생활을 구성하기 때문이다.”
이 책에선 도서관뿐 아니라 아이슬란드의 공공 온천(쉰드뢰이그), 교회 등이 ‘사회적 자본’의 사례로 다루어지는데요. 요는 어떤 형태로든 재난, 불시의 위험에서 우리가 안전하기 위해서는 서로의 삶을 공유할 수 있는 최소한의 공공의 안전지대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책을 덮으면서는, 실상 우리가 평소에 ‘사회적 자본’ 부족을 체감하기조차 어려운 이유가 우리가 그걸 가져본 적이 없기 때문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사회적 자본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고, 돈으로 거래되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평소에 그 가치를 느끼기 어렵습니다.
■맺음말
평소 저는 도서관을 주로 ‘책’을 목적으로 이용해왔지만, 오늘 소개한 책들을 읽으면서는 어쩌면 막연하게 바라왔던 공간이 바로 ‘좋은 도서관’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서로 사회적 조건, 배경과 관계없이 책을 매개로 바쁜 일상 중에도 생각과 안부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이요.
1980~1990년대에 미국 스펜서공공도서관에서 ‘명예사서’로 재직한, 인기 만점 ‘사서 고양이’ 듀이에 대한 이야기로 오늘 레터를 맺어볼까 합니다. 스펜서공공도서관은 아이오와주의 한 쇠락한 도시에 있는 작은 공립 도서관이었는데요. 이곳에 1988년 발을 붙이고 살기 시작한 살가운 도서관 고양이 듀이는 실직으로 인해 낙담한 사람들에게 차별 없이 다가가 얼굴에 미소를 띠게 만들어줍니다. 처음엔 고양이를 밀어내던 무뚝뚝한 사람들도 점차 고양이에게 무릎을 내어주게 되었죠.
“도서관에 와서 일자리를 알아보는 중년 사내도 있었다 (…) 어느 날 나는 듀이가 그 사내의 무릎 위에 앉아있는 것을 봤다. 몇주 만에 처음으로 중년 사내는 미소 짓고 있었다. 두 눈은 아직 슬퍼보였지만, 분명 미소 짓고 있었다 (…) 듀이는 매섭기만 했던 1988년 겨울, 스펜서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것을 주었다.-비키 마이런 외, <도서관 고양이 듀이>”
여기서 누구나에게 친절하게 다가가는 듀이는 어쩌면 ‘도서관의 요정’ 같은 존재는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이, 성별, 직업 등을 넘어서 누구나 환대하는 도서관의 정신이요. 이런 공간이 과연 “절대 정숙”하고, 서로 대화도 나누지 않고 오로지 효율적으로 각자의 일에만 몰두하는 ‘독서실’로 갈음될 수 있을까요?
도서관은 책을 만날 수 있는 소중한 공간입니다. 이와 동시에 사람과 사람이 조건 없이 만나는, 어려운 현실 속에서도 우리가 교류하고 안부를 물을 수 있는 얼마 남지 않은 ‘제3의 공간’이기도 합니다. 그런 공간이 자꾸만 더 줄어들게 된다면, 비단 ‘책 볼 곳’이 사라지는 문제에 그치진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