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80주년 경향신문

반복되어서는 안 될 말



완독

경향신문

공유하기

  • 카카오톡

  • 페이스북

  • X

  • 이메일

보기 설정

글자 크기

  • 보통

  • 크게

  • 아주 크게

컬러 모드

  • 라이트

  • 다크

  • 베이지

  • 그린

컬러 모드

  • 라이트

  • 다크

  • 베이지

  • 그린

본문 요약

인공지능 기술로 자동 요약된 내용입니다. 전체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 본문과 함께 읽는 것을 추천합니다.
(제공 = 경향신문&NAVER MEDIA API)

내 뉴스플리에 저장

반복되어서는 안 될 말

입력 2022.11.28 03:00

수정 2022.11.28 03:02

펼치기/접기

선명하게 기억나는 순간들이 있다. 치과 대기실에서 내 차례를 기다리던 중이었다. TV를 등지고 앉았는데, 맞은 편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TV에 집중된 것을 깨달았다. 몸을 돌려보니 화면 속에서 커다란 배가 기울어지며 가라앉고 있었다. 세상에 저렇게 큰 배가? 수학여행 가던 학생들이라고? 어떡하지? 하지만 걱정은 금방 사그라들었다. 빨간 바탕에 커다란 흰색 글자, 탑승객 전원이 구조되었다는 속보 자막이 흘러갔기 때문이다. 아유, 그럼 그렇지. 저 고등학생들, 오늘 저녁에 무용담 자랑 엄청나겠네. 그러고는 진료실로 들어갔다. 현실을 알게 된 것은 치료를 마치고 지하철로 이동해 일터에 도착한 다음이었다. 8년 전 일이지만, 그 순간의 느낌을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다. 분노도 슬픔도 아닌, 그냥 ‘얼음’이었다.

김명희 노동건강연대 운영위원장·예방의학 전문의

김명희 노동건강연대 운영위원장·예방의학 전문의

4주 전 주말 저녁, 바로 이 코너의 글을 쓰느라 머리를 쥐어짜고 있었다. 휴대전화에 재난 알림 메시지가 떴다. 코로나19 이후 재난 알림 문자에 둔감해졌지만, 이날은 달랐다. 오전에 요란한 경고음과 함께 괴산의 지진 발생 알림을 받았기 때문이다. 또 무슨 일? 이태원에서 심정지 환자가 다수 발생했단다. 아무 설명도 없었다. 불이 났나? 혹시 가스 유출? 건물 붕괴? 얼른 트위터에 접속했다. 그리고 영화에서조차 한 번도 본 적 없는 광경을 보았다. 전쟁터도 아니고, 병원 응급실도 아닌, 서울 시내 한복판 도로 위에 여기저기 사람들이 쓰러져 있고 ‘단체로’ 심폐소생술을 하고 있었다. 때마침 바깥에서는 다급한 구급차 사이렌이 울려 퍼졌다. 저 구급차들이 바로 이 작은 화면의 흔들리는 영상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참이었다. 초현실적이었다.

참사가 발생하던 두 순간의 기억이 충격의 스냅샷이라면, 이후의 수습 과정은 놀라움과 분노, 통탄의 롤러코스터였다. 진상조사를 통해 책임자를 처벌하고, 피해자에게 위로와 보상을 제공하고, 비슷한 사건이 재발하지 않도록 제도를 정비하는 것. 당연한 수순이지만, 이것이 말도 안 되게 어려워지면서 피해자들에게는 또 다른 ‘고통의 여정’이 시작되었다.

기억을 돌이켜보자. 세월호 유가족들은 이 당연한 것을 위해 정치인에게 무릎 꿇고 사정했다. 거리에서 노숙도 했고 물대포도 맞았다. 물론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어떤 유족이 이런 모습을 상상이나 했을까. 하지만 정부와 의견을 나눌 수 있는 통로가 차단되고 정부의 은폐와 책임회피가 계속되면서, 이들은 ‘투쟁’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렇게 되자마자 ‘순수성’을 의심받았다. 게다가 보상과 관련한 거짓 정보는 피해자들을 분열시켰고, 시민들이 피해자를 비난하도록 만들었다. 당시 여당 정치인들은 이를 제지하기는커녕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이태원 참사 이후 정부는 유가족들이 서로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아픔을 공유할 수 없게 만들었다. 뿔뿔이 흩어져 있으니, 정부와 만나 추모 절차나 진상규명에 대한 집단적 의견도 제시할 수 없다. 아마도 세월호 참사에서 얻은 그들만의 교훈이리라. 정부는 갑자기 국가애도기간을 선포하면서도 굳이 ‘참사 희생자’를 ‘사고 사망자’로 부르게 했다. 그러면서 참사의 책임은 아래로 아래로 내려보내는 중이다.

“가장 큰 치유의 약은 뭐냐, 딱 하나라고 보거든요, 죽은 건 어쩔 수 없는 거야. 정말로 안타까운데, 그 죽음으로 인해서 이렇게 세상이 바뀌었고 당신 자녀의, 이웃의 죽음이 그렇게 헛되지 않았어. 우리는 이렇게 기억할 것이고 이렇게 바꾸었어, 라고 하는 게 가장 큰 선물일 거 같아요. 그게 지금 안 되는 거예요, 왜 죽었는지도 모르겠어, 사방이 나를 지금 방해하고 있어, 거기서 무슨 치유가 된다는 것은 사실은 웃기는 거죠. 지금도 때리고 있으면서 약 먹으라고 하는 것과 똑같아요.” 세월호 관련 연구를 하면서 2015년에 만났던, 2003년 대구 지하철 화재 사건 유가족의 말이다. 2022년의 유가족이 다시 이런 말을 하게 할 수는 없다.

  • AD
  • AD
  • AD

연재 레터를 구독하시려면 뉴스레터 수신 동의가 필요합니다. 동의하시겠어요?

경향신문에서 제공하는 뉴스레터, 구독 콘텐츠 서비스(연재, 이슈, 기자 신규 기사 알림 등)를 메일로 추천 및 안내 받을수 있습니다. 원하지 않는 경우 [마이페이지 〉 개인정보수정] 에서 언제든 동의를 철회할 수 있습니다.

레터 구독을 취소하시겠어요?

뉴스레터 수신 동의

경향신문에서 제공하는 뉴스레터, 구독 서비스를 메일로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원하지 않는 경우 [마이페이지 > 개인정보수정] 에서 언제든 동의를 철회할 수 있습니다.

※ 동의를 거부하실 경우 경향신문의 뉴스레터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지만 회원가입에는 지장이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 1이메일 인증
  • 2인증메일 발송

안녕하세요.

연재 레터 등록을 위해 회원님의 이메일 주소 인증이 필요합니다.

회원가입시 등록한 이메일 주소입니다. 이메일 주소 변경은 마이페이지에서 가능합니다.
이메일 주소는 회원님 본인의 이메일 주소를 입력합니다. 이메일 주소를 잘못 입력하신 경우, 인증번호가 포함된 메일이 발송되지 않습니다.
뉴스레터 수신 동의
닫기

경향신문에서 제공하는 뉴스레터, 구독 서비스를 메일로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원하지 않는 경우 [마이페이지 > 개인정보수정] 에서 언제든 동의를 철회할 수 있습니다.

※ 동의를 거부하실 경우 경향신문의 뉴스레터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지만 회원가입에는 지장이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 1이메일 인증
  • 2인증메일 발송

로 인증메일을 발송했습니다. 아래 확인 버튼을 누르면 연재 레터 구독이 완료됩니다.

연재 레터 구독은 로그인 후 이용 가능합니다.
경향신문 홈으로 이동
뉴스레터 구독
닫기

전체 동의는 선택 항목에 대한 동의를 포함하고 있으며, 선택 항목에 대해 동의를 거부해도 서비스 이용이 가능합니다.

보기

개인정보 이용 목적- 뉴스레터 발송 및 CS처리, 공지 안내 등

개인정보 수집 항목- 이메일 주소, 닉네임

개인정보 보유 및 이용기간- 원칙적으로 개인정보 수집 및 이용목적이 달성된 후에 해당정보를 지체없이 파기합니다. 단, 관계법령의 규정에 의하여 보존할 필요가 있는 경우 일정기간 동안 개인정보를 보관할 수 있습니다.
그 밖의 사항은 경향신문 개인정보취급방침을 준수합니다.

보기

경향신문의 새 서비스 소개, 프로모션 이벤트 등을 놓치지 않으시려면 '광고 동의'를 눌러 주세요.

여러분의 관심으로 뉴스레터가 성장하면 뉴욕타임스, 월스트리트저널 등의 매체처럼 좋은 광고가 삽입될 수 있는데요. 이를 위한 '사전 동의'를 받는 것입니다. 많은 응원 부탁드립니다. (광고만 메일로 나가는 일은 '결코' 없습니다.)

뉴스레터 구독
닫기

닫기
닫기

뉴스레터 구독이 완료되었습니다.

개인정보 수집 및 이용
닫기

개인정보 이용 목적- 뉴스레터 발송 및 CS처리, 공지 안내 등

개인정보 수집 항목- 이메일 주소, 닉네임

개인정보 보유 및 이용기간- 원칙적으로 개인정보 수집 및 이용목적이 달성된 후에 해당정보를 지체없이 파기합니다. 단, 관계법령의 규정에 의하여 보존할 필요가 있는 경우 일정기간 동안 개인정보를 보관할 수 있습니다.
그 밖의 사항은 경향신문 개인정보취급방침을 준수합니다.

닫기
광고성 정보 수신 동의
닫기

경향신문의 새 서비스 소개, 프로모션 이벤트 등을 놓치지 않으시려면 '광고 동의'를 눌러 주세요.

여러분의 관심으로 뉴스레터가 성장하면 뉴욕타임스, 월스트리트저널 등의 매체처럼 좋은 광고가 삽입될 수 있는데요. 이를 위한 '사전 동의'를 받는 것입니다. 많은 응원 부탁드립니다. (광고만 메일로 나가는 일은 '결코' 없습니다.)

닫기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