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9일부터 10일, 서울 선정릉역 인근 민속극장풍류에서는 ‘김정희 오구굿’이 열렸다. 동해안 별신굿의 대가 김정희 명인이 세상을 떠난 2019년 이후, 3년이 지난 뒤에 열린 오구굿이었다. 굿의 현장에서는 그야말로 긴 역사를 느낄 수 있었다. 그날 배포된 안내 책자에 따르면 그 이틀간의 굿은 망자자리말기로 시작해 부정굿과 골매기굿, 청혼, 문굿, 문답설법, 오는뱃노래, 조상굿으로 쉼없이 이어졌고, 그 이후로도 열 개 이상의 다른 굿거리가 더해졌다. 이렇게 큰 형태를 이루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누적되었을지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그렇지만 그 긴 시간 속에서 굿의 형태가 단단히 굳어지기만 했다기보다는 꾸준히 새로운 흐름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반복해왔으리라고 추측해볼 수 있었다. 이렇게 망자의 집이 아닌 극장에서도 굿이 열리고, 고 김정희 명인의 이야기를 담은 작은 책자도 제작되었으니 말이다.
그날의 굿판에서도 굿의 일부가 머지않아 조금 달라질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큰 굿거리가 끝나면 노래와 춤판이 벌어지곤 했다. 그날의 굿을 소개해준 친구는 이때는 다 같이 트로트를 부르는데, 아마 지금의 굿 향유자들이 젊은 시절부터 접해온 유행가이기 때문인 것 같다고 말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이제는 시위 현장에서 민중가요뿐 아니라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를 부르는 일을 떠올렸다. 그렇게 우리의 시위 속 음악문화가 바뀌었듯이, 굿판에서도 그런 변화가 찾아올지 알고 싶었다.
약 2주 뒤, 11월26일부터 27일까지 이틀간, 서울 문래예술공장에서는 방지원의 ‘미래무속’이라는 공연이 열렸다. 방지원은 김정희 오구굿에서도 종횡무진 활약했던 화랭이였다. 여러 협력자들과 함께 만든 그 공연은 마찬가지로 일종의 굿으로, ‘육허’ ‘We Hold You’ ‘삼세계 본풀이’ ‘The Passage’ ‘군웅’ ‘예필_분부마침아룀’ ‘NEO-HEIR’까지 총 일곱 순서로 구성되어 있었다.
‘미래무속’은 여러 굿판을 오가며 방지원이 마음에 새긴 가치들, 그리고 그가 가진 물음들을 풀어놓는 자리인 듯했다. 그의 말을 빌려오자면, 굿판은 신성과 세속을 매개해온 곳으로 그는 그곳에서 겸허함과 연결의 감각을 배웠지만, 동시에 인간의 발복을 위해 수많은 생명이 희생되는 장면을 목격했다. 그리하여 이번 공연에서 그는 “동물성과 신성, 물질과 정신의 이분법을 허무는 시공간을 창조해 내는 무대로서 ‘굿’의 가치를 현재화한다”.
이 공연은 여러 차원에서 굿이라는 연행에 새로운 틈을 열어내는 듯했다. 무대를 신성한 장소로 만들기라도 하는 듯, 공연의 시작점에는 땅의 진동을 닮은 무거운 드론 사운드가 울려퍼졌고, 그가 굿판에서 느꼈던 영적인 힘과 일맥상통하는 듯한 다른 장르의 음악도 종종 들을 수 있었다. 예컨대 앨리스 콜트레인을 떠올리게 하는 재즈나 생기 넘치는 로큰롤 등. 악기도 타악기와 태평소, 거문고, 첼로, 베이스, 트럼펫, 바이올린, 기타까지 다양한 편성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굿의 한 순서는 백종관의 영상으로 가득 채워졌고, 종이로 만들어진 동물들은 2층 발코니에 신의 모습처럼 우뚝 서 있었다. 우리는 그들을 우러러보았다.
‘미래무속’은 답을 내리기보다는 질문하는 공연이었다. 긴 역사와 전통으로부터 다른 무언가를 상상하는 일은 외투를 바꾸어 입는 것처럼 간단치 않은 만큼, 그는 굿에서 자신이 사랑하는 것을 유지하는 동시에 조율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지 긴 시간 고민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단 한 가지 가능성을 선언하는 대신, 그가 굿에서 발견한 가장 중요한 가치와 그와 연결된 새로운 가능성들을 두루 풀어놓는 듯했다. 여러 장르와 매체, 여러 존재자를 두루 포용하며 연결하는 상생의 굿. 그가 제안한 가능성들을 곱씹으며, 계속해서 그가 제시할 ‘미래무속’의 모습을 상상해본다. 미래의 굿은 어떤 모습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