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3일(현지시간) 영국을 국빈방문한 시릴 라마포사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 | 로이터연합뉴스
뇌물 수수 및 돈세탁 의혹으로 탄핵 위기에 처한 시릴 라마포사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이 사퇴할 뜻이 없다고 3일(현지시간) 밝혔다.
로이터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빈센트 마궤니아 대통령 대변인은 이날 기자들에게 문자 메시지를 통해 “라마포사 대통령은 결함이 있는 보고서에 따라 사임하지 않을 것”이라 밝혔다. 또 그는 현재 아프리카민족회의(ANC) 당 대표를 겸하고 있는 대통령이 오는 16일 재선을 위한 전당대회를 앞두고 대표직에서 물러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부패 척결을 공약으로 내세워 지난 2018년 대통령직에 오른 라마포사 대통령은 현재 비리 의혹으로 탄핵 위기에 직면했다. 그는 지난 2020년 2월 개인 농장에 출처 미상의 400만달러(약 52억원)를 현금다발로 숨겨뒀다가 도난당한 사실을 은폐하려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른바 ‘팜게이트’라고 불리는 이 논란은 지난 6월 아서 프레이저 전 국가안보국(SSA) 국장의 고발로 불거졌다. 그는 라마포사 대통령이 문제의 돈뭉치를 신고하지 않고 개인 농장 소파에 숨겨뒀다가, 강도가 이를 훔치자 경찰에 신고하지 않고 직접 붙잡아 입막음했다고 주장했다. 프레이저는 제이콥 주마 전 대통령의 측근으로 라마포사 대통령과는 대립각을 세워온 인물이다.
이에 라마포사 대통령은 돈을 도둑맞은 것은 사실이지만 도난당한 금액은 400만달러가 아니라 58만달러(약 7억6000만원)이며 버팔로 판매대금으로 받은 것이었다고 반박했다. 또 그는 돈을 안전하게 보관하기 위해 대통령 주거지로 옮겼으며 도난당한 사실을 알게 된 후 경찰 출신인 대통령 경호팀장에게 알렸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의회 자문을 위해 구성된 독립 조사위원회는 라마포사 대통령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지난 9월부터 해당 논란을 조사해온 조사위원회는 지난달 30일 국회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문제의 돈이 버팔로 판매대금인지 확인할 수 없다”고 밝혔다. 또 “라마포사 대통령이 선서한 것과 달리 법과 헌법을 위반했을 수 있다”면서 국회 탄핵 표결로 이어질 여지까지 남겼다.
논란이 계속 커지는 가운데 야당뿐 아니라 집권당인 ANC 내부에서도 라마포사 대통령의 사임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야당 연합은 지난 3일 성명을 통해 “남아공의 모든 국민에게 헌법과 법치를 수호하기 위해 단결할 것을 촉구한다”며 사임을 압박했다. ANC에서도 라마포사 대통령의 경쟁자인 주마 전 대통령의 지지자들을 중심으로 라마포사 대통령의 사임 요구에 동조하는 여론이 생겨나고 있다고 가디언은 전했다.
하지만 ANC가 라마포사 대통령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지 않는 한 실제로 탄핵이 이뤄질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 ANC는 의회 의석의 60% 가까이 차지하고 있는데, 탄핵이 가결되려면 재적 의원 3분의 2가 찬성해야 하기 때문이다. ANC는 4일 자체 긴급회의에 이어 5일엔 전국 집행위원회 회의를 열고 라마포사 대통령의 진로를 논의할 예정이다. 국회는 오는 6일 조사위원회 보고서 결과를 채택할지 여부를 표결에 부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