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공권력에 의한 인권침해 사건인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 피해자 72명이 국가와 부산시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한다. 2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가 지난 8월 형제복지원 사건을 중대한 인권침해 사건으로 규정한 뒤 제기되는 첫 소송이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공익인권변론센터는 6일 서울 서초구 민변 대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형제복지원 피해자 71명과 고인이 된 피해자 정모씨의 유족 4명을 대리해 서울중앙지법과 부산지법에 각각 소송을 제기할 예정이라고 했다.
배상금 청구액은 피해자 1명당 5000만원이다. 민변은 피해 사실을 구체화한 뒤 청구액을 늘릴 계획이다. 진실화해위가 다른 피해자들에 대한 추가 조사를 마친 뒤 2차 진실규명 결정을 내리면 소송에 참여하는 원고는 더 늘어날 수 있다. 이번 소송의 배상금 청구액이 지금까지 제기된 형제복지원 관련 손해배상청구소송 중 최대 규모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민변은 “한국전쟁 이후 대한민국 정부가 소위 ‘부랑아’들을 치안·안보 목적으로 형제복지원에 수용했다”며 “가족이 있고 신원이 확실한 일반 시민을 포함해 많은 사람을 자의적, 무차별적, 폭력적으로 선별해 강제수용했고, 사회로부터 장기간 강제격리를 했다”고 했다.
이어 “그 과정에서 국가의 적극적이고 주도적인 협조, 비인간적인 방조, 기민한 은폐가 있었다”며 “피해자들은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 정부의 잘못된 정책과 공권력의 부당한 행사로 고통받았다는 것을 폭로하고 명예를 회복하고자 한다”고 소송 배경을 설명했다.
이날 회견에 참석한 피해자 임영택씨는 “저희가 무슨 죄를 지어서 국가를 상대로 한 소송에 휘말리고 고통당하고 있나 싶다”면서 “한국이 선진국이라면 아우슈비츠 수용소 피해자의 아픔을 보듬어주는 독일과 같이 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형제복지원 사건 피해자들은 지난해 5월 국가를 상대로 첫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하는 등 여러 건의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서울중앙지법은 지난해 11월 생존 피해자 13명에게 국가가 25억원을 배상하라며 강제조정을 결정했으나 법무부가 이의를 신청해 조정이 결렬됐다.
형제복지원 사건은 부산의 형제복지원에서 1975∼1987년 일어난 인권침해 사건이다. 불법감금은 물론 강제노역, 구타, 암매장 등이 자행됐다. 1987년 이곳을 탈출한 사람들에 의해 그 만행이 세상에 알려졌으나 가해자인 박인근 형제복지원 이사장은 업무상 횡령 등 혐의만 인정돼 징역 2년6개월을 받는 데 그쳤다. 부산시와 위탁계약을 체결한 1975년부터 1986년까지 총 3만8000여명이 형제복지원에 입소했다. 현재까지 밝혀진 사망자 수만 657명이다.
진실화해위는 지난 8월 형제복지원에서 강제노역과 폭행, 가혹행위, 사망, 실종 등 중대한 인권침해가 발생했다며 국가 차원의 공식 사과와 피해 복구 방안 마련을 권고했다. 국가기관인 진실화해위가 35년 만에 처음으로 형제복지원 사건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공식 인정한 만큼 답보 상태인 피해자들의 권리 구제가 보다 수월해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