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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영호씨와 사망 직전까지 노동운동…“미행당한다” 말한 뒤 실종, 9년간 주검 은폐

입력 2022.12.07 21:28

수정 2022.12.07 2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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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순 의문사 사건은

[그 시대, 유죄추정의 원칙] 복영호씨와 사망 직전까지 노동운동…“미행당한다” 말한 뒤 실종, 9년간 주검 은폐

1992년 8월29일 오후 9시55분. 경기 시흥역에서 한 남성의 시신이 발견됐다. 이 남성은 시흥역 저상홈 선로변에서 서울발 광주행 열차에 부딪쳐 두개골이 파열된 상태였다. 사고로 얼굴이 심하게 망가졌고, 소지품은 없었다. 경찰은 시신의 신원을 확인하지 못했다. 신원 미상의 남성은 파주시 용미리에 있는 무연고 사망자 유골 안치소 ‘추모의집’에 잠들었다.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가 이 시신이 노동운동가 박태순씨(사망 당시 27세)라는 걸 밝혀낸 건 그로부터 9년이 지난 2001년이었다. 박씨는 수원에서 노동운동을 조직한 복영호씨와 함께 1987년부터 사망 직전까지 활동했다. 이 조직은 창설자인 복씨 이름을 따 경찰로부터 ‘복씨 조직’으로 불렸다. 경찰이 박씨의 존재를 알게 된 것은 1987년 복씨가 경찰에 불법 구금된 이후로 추정된다.

박씨의 사망에는 의문점이 많다. 박씨는 사망 당일 오후 6시30분쯤 공장에서 일을 마친 뒤 저녁을 먹고 오후 9시쯤 역곡역에 들어섰다. 이후 구로역에서 수원행 열차로 갈아탄 뒤 오후 9시31분쯤 시흥역에서 내렸다. 박씨의 집은 시흥역이 아닌 석수역 근처에 있었다. 박씨는 하차 이후 집 반대 방향인 구로 방향 일반 승강장을 지나 승객들이 오가지 않는 저상 승강장 35m 지점까지 이동해 사고를 당했다. 일반 승강장에서 사고 지점까지 가려면 철문 위를 기어 올라가야 했다.

9년간 박씨의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점도 의문이다. 당시 경찰 보고서에 따르면 박씨의 주머니에서 발견된 건 전철 정액권뿐이었다. 그러나 박씨의 시신을 찍은 사진에는 손목시계가 채워져 있었다. 유족과 동료들은 “누군가 시신의 신원을 확인하지 못하도록 의도적으로 은폐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박씨의 지문 상태가 선명했고 민주화운동으로 전과가 있어 지문이 등록된 상태였는데도 경찰이 박씨의 신원을 확인하지 못한 점도 의심 가는 대목이다.

박씨는 사망 전 군과 경찰로부터 사찰을 당했다. 박씨가 사망 2주 전 중학교 동기들과 경기 광명시의 한 술집에서 만났을 때 “기관원의 미행이 있어 약속에 늦었다”고 말했다고 한다. 의문사위 조사 결과 경기지방경찰청 공안분실, 수원경찰서, 화성경찰서 등이 박씨와 복씨가 속한 수원 지역 노동운동가들을 검거하려고 시도한 사실도 확인됐다. 국군기무사령부(현 군사안보지원사령부) 역시 박씨가 위장 취업한 공장 등을 사찰한 것으로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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