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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를 내밀지 못하는 이들

입력 2022.12.14 03:00

수정 2022.12.14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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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 검진 시즌이다. 12월 말까지 올해의 검진을 받아야 하는 사람들이 많이 찾아오는 요즘이다 보니, 진료실도 검사실도 바쁘다. 상(上)복부초음파 검사를 받는 사람들도 덩달아 많다. 상복부초음파는 말 그대로 복부 위쪽에 있는 장기들을 관찰할 수 있는 초음파 검사로, 간, 담낭, 양쪽의 신장, 비장, 췌장까지를 보는 검사이다.

추혜인 살림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살림의원 가정의학과 전문의

추혜인 살림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살림의원 가정의학과 전문의

복부초음파 검사를 하려면 검사자도 힘을 많이 써야 하지만, 수검자(검사를 받는 사람)도 힘을 많이 써야 한다. 장기가 최대한 잘 보이도록 하기 위해 12시간 이상을 물도 마시지 않는 금식을 하는 것이 좋음은 물론, 검사를 하는 동안에도 상복부에 있는 장기들이 갈비뼈 아래로 내려와 초음파 화면에 잘 잡힐 수 있도록 숨을 들이쉬고 배를 불룩하게, 최대한 내밀어야 한다. 숨도 계속 참아야 한다. 초음파는 뼈를 통과할 수 없으니 어쩔 수 없다.

횡격막을 몸 아래쪽으로 최대한 끌어내려서 복강 내의 장기들이 갈비뼈 아래로 쭉 내려오도록 자세를 잡아야 하니, 나도 검사를 받는 분들에게 “숨 크게 들이마시면서 배를 빵빵하게 부풀리고 숨 참으세요”라는 요구를 하게 된다. 각 장기를 정해진 각도별로 관찰하려고 할 때마다 이런 동작을 취해야 하니, 가뜩이나 오랜 시간 굶어서 힘이 없는 수검자들이 검사를 받다가 지치기도 한다. 그나마 이 동작이 협조가 잘되는 분들이나 복부비만이 없는 분들은 검사하기가 수월한데, 동작이 잘 협조되지 않는 분들은 서로가 좀 힘이 들기도 한다.

나는 장애인 건강주치의 시범사업에 참여하여 중증 장애인들의 건강주치의를 맡고 있는 의사로서, 다양한 장애인들을 함께 진료하고 있고, 그중에는 지적·자폐장애인들과 같은 발달장애인들도 많다. 발달장애인들이 가정의학과에 왜 다닐까 생각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고혈압·당뇨·고지혈증과 같은 만성질환의 관리도 필요하고, 감기나 장염과 같은 급성질환의 진료도 필요하다. 발달장애인들의 비만율이나 염색체 이상의 비율, B형 간염 바이러스 감염률은 비장애인 인구보다 높다. 지방간, 간경화나 복강 내 장기의 이상 소견은 비장애인들보다 좀 더 많이 관찰될 수 있지만, 복부초음파 검사는 조금 더 힘이 든다는 뜻이다. 그래도 낯선 검사실에서 받는 검사보다는 평소에 얼굴을 알고 이름도 아는 사이에서 친근하게 진행하는 검사가 협조가 잘되는 편일 거라 믿고 검사를 진행하곤 한다.

또 이 동작에 의외로 협조가 잘 안 되는 분들 중에 일부 여성들이 있다. 숨을 들이마시고 배를 뽈록하게 내밀라는 요청에도 배에 계속 힘이 빠지는 어떤 여성들을 보면서, 나는 평소에 근력운동을 많이 하지 않아서 복근이 없어서 그런가, 심폐운동을 자주 하지 않아서 숨이 짧아서 그런가, 아니면 둘 다 원인인가 싶었다. 그런데 꼭 그렇지만도 않았다.

이 동작을 취하기 힘들어하는 어떤 여성분이 있었다. 그분도 힘들고 나도 힘든 검사 시간을 보낸 뒤에 한숨을 쉬면서 하시는 말씀이, “평생 배를 밀어넣으려고 애써 왔더니, 배를 내밀고 있는 동작이 너무 어렵네요. 제가 조금 통통한 편이잖아요.”

조금 통통한 편. 정말 ‘조금’ 통통한 편. 노력을 하고 있으면 뱃살이 별로 티가 나지 않는 그런 체형. 배를 밀어넣어 뱃살이 보이지 않도록 하려는 노력을 수시로 언제나 해 오고 있어서, 배를 내미는 그 간단한 동작에도 마음의 벽이 세워졌던 거다. 여성들이 힘을 주어 배를 뽈록하게 내밀고 버티기 힘들어했던 이유는, 물론 근력이나 심폐기능의 문제도 있을 수 있겠지만, 한 번도 그렇게 해본 적이 없어서였다. 여성이 배를 내밀어도 괜찮은 시공간을 경험한 적이 없어서. 조금이라도 날씬하게 보일 수 있도록 배에 힘을 주는 방향이 결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어떤 보이지 않는 틀을 상정하고 그 틀 안에 몸을 꿰맞추도록 스스로를 절제하는 데 너무 익숙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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