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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의 시대정신과 자유민주주의

입력 2022.12.14 03:00

수정 2022.12.14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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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우의 거리두기] ‘포스트’의 시대정신과 자유민주주의

먼 훗날 21세기의 ‘시대정신’을 꼽으라면 우리는 어떤 사건을 제일 먼저 떠올릴까? 우리의 삶과 사회를 근본적으로 바꿔놓은 역사적인 사건은 어떤 것일까? 한 해를 보내면서 습관적으로 던지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여러 가지이겠지만, 나는 주저하지 않고 ‘코로나와 우크라이나 전쟁’을 지목할 것이다. 3년에 걸쳐 우리를 괴롭히고 이제는 끝날 조짐을 보이고 있는 코로나19 팬데믹과 여전히 어떻게 끝날지 오리무중인 우크라이나 전쟁이 우리에게 익숙한 기존의 패러다임을 바꿔놓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진우 포스텍 명예교수

이진우 포스텍 명예교수

그렇다면 코로나19 ‘이후’ 우리의 삶은 어떻게 변화하고,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세계의 질서는 어떻게 바뀔 것인가? 우리는 ‘이후’라는 뜻의 라틴어 낱말 ‘포스트’(post)를 접두사로 사용하여 수많은 미래사회의 모습을 미리 그려본다. 포스트모더니즘, 포스트산업사회처럼 이제는 포스트코로나 사회를 말하고,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의 세계 질서를 논한다. 포스트가 어떤 단어 앞에 붙어 새로운 단어가 되게 하는 말이기는 하지만, ‘포스트’라는 접두사 뒤에 붙는 낱말이 훨씬 더 중요해 보인다. 포스트로 그려지는 미래사회의 모습을 예견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극복해야 할 현재 시대의 핵심을 포착해야 하기 때문이다.

‘시대정신’이라는 독일어 개념 ‘차이트가이스트(Zeitgeist)’를 정립한 독일의 관념론 철학자 헤겔은 어떤 사상도 그 시대의 자식이기 때문에 시대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없다고 강조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 그리고 여기’의 시대를 포착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한 이유이다. 그렇다면 코로나19로 대변되는 시대의 특성은 무엇인가? 거리 두기, 지역봉쇄, 마스크 착용과 같은 방역 조치들이 초래한 불편과 불안은 전염병이 끝나면 함께 사라질 것이다. 이러한 표면적 현상을 시대정신이라고 부를 수는 없을 것이다. 코로나19는 우리가 이제까지 당연하고 자명하게 여겼던 자유민주주의의 가치를 건드릴 뿐만 아니라 전염병이 끝난 뒤에도 계속해서 영향을 미칠 것이기 때문에 시대정신과 연관이 있는 것이다.

자유와 안전 공존할 조건 고민해야

우크라이나 전쟁도 마찬가지이다. 사람들은 이제 우크라이나 전쟁이 유라시아 대륙의 서쪽에서 발생한 하나의 지역 전쟁이 아니라 설령 제3차 세계대전으로 확산하지는 않더라도 세계의 지정학적 질서를 근본적으로 바꿔놓고 있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우리의 삶을 제한하는 코로나19 전염병이 빨리 끝나기를 바라듯이 에너지 위기, 곡물 가격 폭등, 인플레이션을 초래하여 우리의 삶을 불편하게 만드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빨리 해결되기를 바란다. 이후, 즉 포스트 세계에 대한 희망 속에는 이처럼 현재의 고통에서 가능한 한 빨리 벗어나려는 갈망이 들어 있다. 그러나 우리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표출된 시대정신을 포착하려면, 우리의 시대와 세계 질서가 전쟁이 끝난 뒤에 어떻게 변화할 것인지를 정확하게 판단해야 한다. 그 중심에는 자유민주주의가 있다. 코로나19와 우크라이나 전쟁이 위협하는 것은 바로 자유민주적 가치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오늘날 거론되는 수많은 ‘포스트’는 자유민주주의 이후의 사회를 가리킨다.

코로나19 전염병은 우리를 서로 대립적인 것처럼 보이는 두 가치를 대체 가능한 대안으로 간주하도록 강요했다. ‘자유’와 ‘안전’. 중국의 제로 코로나 정책은 안전을 그 어떤 가치보다 우위에 놓는 전체주의적 접근방식을 대변하였다면, 서구의 자유주의적 접근방식은 시민의 자유를 심각하게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 방역 조치를 모색하였다. 처음에는 안전을 절대화한 중국적 접근방식이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 훨씬 더 합리적인 조치처럼 보였다. 집단주의가 내면화된 사람들은 생명과 안전을 보장하기만 하면 국가가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고 억압하더라도 용인할 수 있다는 태도까지 보였다. 심지어 아시아의 몇몇 국가에서는 방역에서 ‘우리가 서구보다 훨씬 더 잘한다’는 보건 민족주의까지 나타났다.

그런데 중국은 강압적인 봉쇄정책에 대한 시위가 점점 더 늘어나자 급기야 제로 코로나 정책을 폐기하기에 이르렀다. 앞으로는 요양원, 학교, 유치원 및 병원에 대한 접근을 제외하고 더 이상 의무적인 공개 PCR 테스트와 의무적인 녹색 건강 코드가 없을 것이라고 한다. 항공 및 기차 여행 전에 PCR 검사를 수행해야 하는 의무도 폐지되고, 일부 도시에서는 당국이 이미 사람들에게 아무런 증상이 없으면 검사를 받지 말라고 요구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의 눈을 끄는 것은 이미 많은 상점 진열대에 걸려 있는 “모든 사람은 자신의 건강에 대한 책임이 있습니다”라는 표지판이다. 코로나 바이러스와의 싸움은 이제 국가에서 개인에게로 넘어간 것이다.

자유민주주의 지속 가능이 과제

중국당국이 제로 코로나를 포기하고 ‘위드 코로나’로 180도 전환한 이유는 무엇인가? 보건 상황이 갑자기 호전된 것인가? 시진핑이 당 대회에서 자신의 전능함을 확고히 하고 유일한 권력자로 등극하면서 중국에 제로 코로나 정책이 계속될 것이라고 맹세하지 않았는가? 무류의 지도자로 보였던 시진핑이 하룻밤 사이에 변덕스러워 보이는 이유는 간단하다. 중국 전역에서 들불처럼 번지는 코로나 봉쇄 반대 시위가 정권을 위협하기 때문이다. 안전을 빌미로 자신의 권력을 절대화하려는 시진핑에 반대하여 자유를 억압당한 시민들이 들고 일어선 것이다. 안전만 절대화하면 국민의 생명과 자유는커녕 궁극적으로는 안전마저 잃게 된다는 것이 코로나19가 보여준 역설이다.

외부 상황에 의해 어쩔 수 없이 변경한 중국의 코로나19 정책은 국민의 생명과 정권의 안전을 심각하게 위협할 것이다. 중국이 폭력적인 폐쇄정책을 쓴 이유는 사실 간단하였다. 예방 접종을 받은 시민, 특히 60세 이상과 80세 이상의 사람들이 너무 적고, 중국의 의료시스템은 전염병의 대량 발생에 준비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중국당국은 이러한 현실을 외면하고 오히려 봉쇄정책을 서구에 대한 체제의 우위로 선전하였다. 상황이 전혀 개선되지 않았음에도 ‘위드 코로나’로 정책을 전환했다는 것은 그만큼 거리의 저항이 심각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중국은 포스트코로나 사회의 문제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그것은 ‘자유’와 ‘안전’이 결코 대체될 수 있는 가치가 아니라는 점이다. 백신 접종률이 여전히 낮고 의료체계가 개선되지 않은 상태에서 봉쇄를 풀면, 중국 인구의 90%가 바이러스에 감염되고 사망자 수가 급속히 늘어날 것이라고 한다. 중국식 안전제일주의가 결국 안전을 지키지 못한 셈이다. 이에 반해 서구는 마스크를 벗고 서서히 일상을 되찾고 있다. 어떤 체제가 기아, 전쟁, 전염병과 같은 재앙에 대처하는 데 더 합리적인 방식인가가 이미 드러난 것이다.

자유민주주의는 결코 안전을 배제하지 않는다. 오히려 시민의 자유를 보장함으로써 더 안전해질 수 있는 길을 모색한다. 안전의 이름으로 자유를 억압하는 국가는 오히려 안전의 토대를 망가뜨리기 때문이다.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그의 최근 저서 <자유주의와 그 불만>에서 자유주의의 큰 장점은 자유와 평등, 개인주의 및 공동체와 같이 신성하지만 종종 모순되는 일련의 가치의 공존을 허용하는 정치적 조건을 만드는 능력이라고 강조한다. 이처럼 포스트코로나 사회는 자유와 안전이 공존할 수 있는 사회적 조건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유라시아 대륙의 동쪽 중국에서는 사람들이 국가의 폭력에 대해 저항한다면, 유라시아 대륙 서쪽의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침공에 맞서 국가의 주권과 국민의 생명을 위해 싸우고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비교적 오랜 기간 지속된 평화 패러다임의 종말을 말해준다. 미국의 시사잡지 타임이 2022년 올해의 인물로 선정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우크라이나 정신’은 무엇인가? 블라디미르 푸틴이 제국주의적 야심에서 전쟁을 일으켰다면, 젤렌스키는 전쟁의 의미를 바꿔놓았다. 그는 “죽음을 두려워하면, 우리의 자유는 죽게 된다”는 헤겔의 말을 온몸으로 보여주고 있다. 자유는 자유를 지킬 수 있는 자에게만 주어지는 것이다. 코로나19와의 전쟁이 종식되는 것처럼 우크라이나 전쟁도 끝날 것이다. 포스트의 시대정신은 코로나19와 우크라이나 전쟁이 우리에게 남겨놓은 과제에 의해 규정될 것이다. 자유민주주의를 어떻게 지속 가능하게 만들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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