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보낸 세 번째 해가 저물어간다. 한 해가 끝나는 시기에는 수많은 연말 의례가 진행된다. 보통 지난 한 해 우리가 어떻게 살았는지 돌아보고, 오는 해는 어떻게 살아갈지를 예측한다. 옥스퍼드 영어사전을 발간하는 옥스퍼드대학출판부(OUP·Oxford University Press)는 매해 말 ‘올해의 단어’를 발표한다.
이는 지난 12개월 동안 영어 사용자들을 사로잡은 풍조·분위기·생각을 반영하는 것으로, 향후 문화적으로 중요하게 사용될 가망성이 높은 용어나 표현이다.
단어 후보는 옥스퍼드 편집자가 옥스퍼드영어말뭉치(OEC·Oxford English Corpus)의 빈도 통계 및 기타 데이터를 추적 분석해 실제 언어 사용을 바탕으로 선정한다. OEC는 소설, 신문, 블로그, 소셜미디어 등 모든 유형의 영어 사용을 제시하도록 선택된 웹사이트로 구성되어 있다. 영국과 미국 외에도 아일랜드, 호주, 뉴질랜드, 카리브해 연안국, 캐나다, 인도, 싱가포르 및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사용되는 영어를 포괄하는 거의 21억개의 단어가 포함된다. 이전에 선정된 단어로는 vax(백신의 축약어·2021), climate emergency(2019), selfie(2013)가 있다.
올해는 역사상 처음으로 단어 후보들에 대한 대중 투표를 실시했는데, 2주 동안 30만명 이상이 참여했다. 이 투표에서 ‘고블린 모드’(goblin mode)가 투표자 93%의 압도적 지지를 받아 2022년의 단어로 선정됐다(2위는 ‘metaverse’, 3위는 ‘#IStandWith’). 고블린은 유럽 전설에 등장하는 요괴로, 주로 집에서 거주하며 인간에게 해를 끼치는 불량스러운 행동을 한다. 현대에도 영화나 게임 캐릭터로 자주 등장한다. OUP에 따르면, ‘고블린 모드’는 ‘고블린 모드로(in goblin mode)’ 또는 ‘고블린 모드가 되다(to go goblin mode)’라는 표현에서 자주 사용되는 속어로 “제멋대로 하고, 게으르고, 지저분하고, 탐욕스럽게 행동하는 것으로, 사회적 규범이나 기대를 거부하는 전형적인 방식”이다.
2009년 트위터에 처음 등장한 이 용어는 2022년 2월 소셜미디어에서 빠르게 확산되며 신문과 잡지에 사용됐다.
이 용어가 인기를 끈 시기는 많은 국가가 코로나 관련 제한을 완화하며 사람들이 집 밖으로 나가기 시작한 때이다. OUP는 이 용어가 이 시기 ‘정상적 삶’으로 돌아가는 것을 거부하거나, 소셜미디어에서 전시되는 도달할 수 없는 미적 기준과 지속 불가능한 라이프스타일에 반항하는 개인의 일반적 분위기를 포착한 것으로 본다. 실제 팬데믹 상황에서 재택근무를 하던 많은 사람들이 출퇴근 근무를 거부하며 퇴사하거나, 근로계약서에 제시된 최소한의 일만 하는 ‘조용한 퇴직’(quiet quitting)을 택했다.
흥미로운 점은 고블린 모드가 소셜미디어의 지배적인 ‘자기 개발 모드’와 상반된다는 것이다.
‘자기 개발 모드’가 새벽에 일어나 야채 주스를 마시고 계획된 일정에 따라 운동하고 일하는 모습이라면, ‘고블린 모드’는 옷 더미와 배달음식 상자가 널린 방에서 감자칩을 먹으며 침대에서 스마트폰을 보거나, 새벽 2시에 티셔츠만 걸치고 부엌에 서서 정크푸드를 먹는 모습이다. 전자가 사회적 규범에 따른 자기 관리를 전시한다면, 후자는 그러한 규범에 신경쓰지 않는 모습을 전시한다.
옥스퍼드 언어 회장인 캐스퍼 그래스월은 고블린 모드가 현재 상황에 압도당하고 있는 우리의 감정에 공명하며, 사람들이 이상화되고 선별된 자아가 아닌 편집되지 않은 자신의 이미지를 공유하며 내면의 고블린을 포용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으며, 내년에도 이러한 경향성이 계속될 것으로 예측한다.
올 한 해 사회적 규범에 맞춰 달려온 당신, 크리스마스는 고블린 모드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