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레반, “히잡 안 쓴다” NGO서 여성 활동 금지…인도주의 위기 심화 우려

박효재 기자
탈레반의 무장 대원이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의 한 행사장에서 경계 근무를 서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탈레반의 무장 대원이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의 한 행사장에서 경계 근무를 서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정권이 히잡을 쓰지 않는다는 이유로 여성들의 국내외 비정부기구(NGO)에서 활동을 금지했다. 아프간 여성 인권은 물론 인도주의 위기 상황이 더욱 심각해질 것이란 우려가 제기된다.

탈레반 경제부가 24일(현지시간) 아프간에서 활동하는 NGO에 여성을 계속 근무하게 할 경우 해당 기구를 폐쇄하겠다고 경고했다고 로이터통신 등이 전했다. 탈레반 경제부는 서한을 통해 여성 직원들이 이슬람 복장 규정에 대한 정권의 해석을 따르지 않았기 때문에 추가 통지가 있을 때까지 근무할 수 없다고 알렸다.

이번 조치는 지난 20일 여성의 대학 교육 금지를 발표한 지 나흘 만에 나왔다. 국제앰네스티 남아시아 지부는 “아프간의 정치·사회·경제 공간에서 여성들을 제거하려는 또 다른 개탄스러운 시도”라고 규탄했다. 탈레반은 이미 여학생들의 중학교 진학을 금지하고 있다. 탈레반 보안군은 이날 서부 헤라트 등 아프간 주요 도시에서 열린 여성 대학 교육 금지 반대 시위를 물대포까지 동원해 해산시켰다.

여성들의 NGO 활동 금지 조치로 인도주의 지원 활동에 차질이 예상된다. 탈레반의 이슬람 율법에 기반한 통치 규칙에 따르면 남성은 여성과 함께 일할 수 없다. 여성 직원 비율이 높은 해외 NGO 활동을 사실상 무력화시키려는 시도로 해석된다.

세계 최대 민간 원조기구인 케어 인터내셔널은 “여성 직원들은 다른 여성들과 소녀들에게 접근하는 역할을 한다”면서 “이들이 없다면 인도주의 상황이 훨씬 빠르게 악화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탈레반이 가족을 제외한 이성 간 접촉을 엄격히 금지하는 상황에서 여성 지원 활동이 위축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지난해 탈레반이 다시 집권한 이후 국제사회 제재가 복원되고, 지난 6월 남동부 파크티카주에서 규모 6.1의 강진까지 겹치면서 아프간의 인도주의 상황은 이미 크게 악화된 상태다. 분쟁·재해 지역 활동 단체 국제구조위원회(IRC)에 따르면 아프간 인구의 97%가 빈곤 위험에 처해 있다. 겨울에 접어들면서 주민 1890만명이 식량 부족을 겪고 있는데, 이는 지난해 여름 대비 두 배에 달한다. 아프간 가구 생활비의 91%는 식비에 쓰이고 있으며, 생활비 부족으로 아이들은 기아와 예방 가능한 질병 감염 위험에 노출돼 있다.

여성 직원 NGO 활동 금지 조치는 180개가 넘는 아프간 국내외 국호기구 연합체인 아프간 구호조율기구(ACBAR) 소속 단체들에 적용되며 유엔 산하기구들은 포함되지 않았다. 하지만 유엔은 아프간의 NGO들과 계약을 맺고 인도주의 업무를 수행하는 경우가 많아 향후 유엔 기구의 활동에도 제약이 예상된다.

라미즈 알아크바로프 유엔 아프간지원사절단(UNAMA) 부대표는 “인도주의 원칙의 명백한 위반”이라며 “매우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그는 25일 NGO, 유엔 기구들과 협의한 뒤 탈레반에 이번 조치에 대한 설명을 요청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조치로 아프간 가정 경제도 큰 타격을 입을 것으로 보인다. 저개발국에서 NGO 종사자들은 고소득 직군에 속한다. 아프간에서 여성 NGO 종사자들은 실질적인 가장 역할을 하고 있다. 한 여성 NGO 직원은 BBC와 인터뷰에서 “내가 직장에 못 나가면 누가 내 가족을 부양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다른 여성 직원은 자신은 탈레반의 엄격한 복장 규정을 준수했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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