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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주이 오라 캐라”

입력 2022.12.29 03:00

수정 2022.12.29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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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이터 저널리즘연구소가 발표한 2022 디지털 뉴스 리포트에 따르면 이용자의 69%가 ‘뉴스를 선택적으로 회피한다’고 답했다. 한국 이용자는 67%가 그렇다고 답했다. 5년 전에 비해 15%포인트 늘었다. 조사 대상 46개국 응답자 중 36%(2위)는 ‘뉴스가 내 기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답했다.

이용균 뉴콘텐츠팀장

이용균 뉴콘텐츠팀장

콘텐츠 수용성의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책 <영화를 빨리 감기로 보는 사람들>은 이런 현상을 두고 ‘상쾌한 콘텐츠를 찾는 현상’이라고 설명한다. 불편한 구석이 없는 편안한 콘텐츠를 보고 싶어 한다는 얘기다.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주인공은 큰 어려움을 겪지 않는다. 장애물은 쉽게 피하고, 악당과 싸워 이기는 방법을 이미 알고 있다. 조연 역시 주인공의 발목을 잡지 않는다. 심지어 요즘 콘텐츠에서는 주인공이 직접 싸우지도 않는다. 다른 캐릭터로 하여금 대신 싸우게 한다. 포켓몬이 대표적이다. 주인공 한지우는 피카츄로 대표되는 몬스터를 키우는 ‘트레이너’다. 위기에 빠진 주인공에 감정이입해 안타까워할 필요가 없다.

가장 잘 어울리는 플롯 구조가 바로 ‘회빙환’이다. 회귀, 빙의, 환생의 줄임말이다. 이미 한 번 겪어 본 일이기 때문에 ‘정답’을 알고 있는 구조다. 화제를 모은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이 바로 ‘회빙환’ 서사를 지녔다. 주인공 윤현우는 과거로 돌아가 재벌집 막내아들 진도준으로 ‘환생’해 인생 2회차를 산다. 현대사의 여러 굵직한 사건을 다 경험했기 때문에 필요할 때마다 ‘정답’을 통해 부를 일군다.

치열한 경쟁의 절대법칙 ‘가성비’

보는 이들도 대부분 알고 있는 내용이어서 ‘불편함’이 사라진다. ‘상쾌한 콘텐츠’ 스타일에 걸맞게 조연들은 발목을 잡지 않는다. 투자 파트너인 오세현은 가끔 반대 의견을 내지만, 결국 진도준의 뜻을 따른다. 여주인공에 해당하는 서민영 검사 역시 진도준을 적극적으로 돕는 역할이다. 연애 과정 중 일어날 법한 갈등조차 잘 드러나지 않는다. 드라마 속 진도준은 직접 싸우지 않는다. 오세현을 내세우거나 서민영 검사가 나선다. 또는 가족들끼리 싸우게 한 뒤 마지막에 ‘짠’ 나타나는 게 대부분이다.

‘상쾌한 콘텐츠’가 인기를 끄는 이유는 콘텐츠 소비의 ‘가성비’ 때문이다. 시간이라는 유한한 자원을 써야 하는데, 굳이 불편을 느끼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세상을 살아내는 데 가뜩이나 힘든 일이 많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가성비’는 절대 법칙으로 자리 잡았다. ‘성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실패’하지 않는 것이 생존 법칙이다. 버튼을 한 번 잘못 누르면 나락으로 떨어진다는 걸 온몸으로 느끼며 살고 있다. 수능, 학점, 입사, 취업, 재테크 등에서 모조리 ‘O’를 맞혀야 남들만큼 살 수 있다. 인생은 줄줄이 늘어선 OX 문제를 모두 맞혀야 생존 가능한 ‘오징어 게임’이다. 아주 간단한 선택 앞에서도 주저하게 되는 것은 ‘가성비’와 ‘효율성’의 압력이 그만큼 강해서다.

그 압력을 증폭시키는 장치가 SNS다. <영화를 빨리 감기로 보는 사람들>은 SNS를 두고 ‘자신보다 나은 사람을 금세 발견하게 되는 지옥’이라고 표현했다. 뭔가를 해보려 해도 도저히 따라잡기 불가능한 ‘레벨’이 널렸다. 결과의 수준을 고려하면 도전 자체가 쉽지 않다. 어설프게 알은 체를 했다가 ‘정답’이 아니면 두드려 맞는 세상이기도 하다. 그러니 ‘반박시 님 말이 다 맞음’이 해결책이다.

한 번의 실패는 곧장 낙인으로 이어진다. 선택은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고, ‘가성비’를 위해 더 많은 것을 따져야 한다. 돈을 덜 버는 ‘소아청소년과’는 선택지에서 제외되고, 통합수능의 가성비는 적성을 고려하지 않는 ‘이과 쏠림’을 가져온다. 코인과 부동산에 대한 영끌은 낙오하지 않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여권 폭주에 열린 ‘가성비 지옥문’

현 정부는 가치에 대한 재설정 대신 ‘시장’과 ‘자유’를 강조함으로써 가성비에 대한 압력을 더욱 강화하는 길을 택했다. 청년세대에게 국민연금은 더 내고 덜 받는, ‘가성비’가 도저히 맞을 수 없는 제도다. 가성비 강화 기조에서는 연금개혁을 설득할 명분도, 이유도 찾을 수 없다. 여당의 당권을 향한 ‘줄서기’ 역시 강화된 ‘가성비’ 전략의 결과다. 정책을 토론하기보다는 빨리 앞줄에 서는 것이 가성비가 낫다. 정부와 여당의 폭주 속에 가성비 지옥문이 열리고 있다. 새해에도 ‘가성비’의 중력을 탈출할 초속 11.2㎞의 에너지를 찾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어두운 연말, 답답한 새해에 어쩔 수 없이 물어볼 수밖에 없는 걸까. 진양철 말투대로 ‘도주이 오라 캐라, 내년에 우예되는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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