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깜이·밀실 심사’ 반복…민생보다 정쟁에 치우쳐
[주간경향]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다 둘 다 놓친 격이다.”
진통 끝에 국회 문턱을 넘은 2023년도 예산을 두고 전문가가 한 말이다. 재정지출을 늘려 ‘따뜻한 복지’에 나선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재정을 아껴 건전성을 늘린 것도 아닌, ‘어정쩡한 예산’이라는 의미다. 복합경제위기를 대비한 서민 취약계층 보호와 민생예산의 면모를 갖췄다고 하기에도 미흡하다는 평가다. 국회 심사 과정에선 ‘깜깜이·밀실 심사’가 또다시 반복됐다. 여야가 쟁점 예산을 절반씩 깎아 합의한 것을 두고서도 민생보다는 정쟁에 치우친 결과라는 평가가 나온다.

12월 24일 새벽 0시 55분쯤 국회 본회의에서 2023년도 예산안이 의결 통과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정부 첫 예산과 쟁점 예산은
12월 24일 새벽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2023년도 예산은 638조7276억원. 국회 심의를 통해 약 3조9000억원이 증액되고 약 4조2000억원이 감액돼 정부안(639조419억원)보다 약 3140억원 줄었다. 다만 2022년 2차례 추가경정예산을 제외한 본예산(607조7000억원)과 비교하면 5.1% 증가했다. 내년 국가채무는 1134조4000억원, 내년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은 49.8%로 전망됐다.
기재부가 예산안의 국회 본회의 통과 직후 배포한 자료를 보면, 서민 생계부담 완화 등 취약계층 맞춤형 지원 약 1조7000억원, 반도체 산업 투자(1000억원), 3축 체계 관련 전력 증강(1000억원), 이태원 참사 관련 안전투자(213억원) 등이 국회 심사 과정에서 각각 증액됐다.
9조7000억원 규모의 고등·평생교육지원특별회계도 내년에 한시(3년) 신설된다. 매년 학령인구가 줄어드는 유아·초중등 분야의 남는 예산을 대학과 평생·직업교육에 쓰자는 취지다. 기존 사업(대학 경쟁력 강화 관련)이 이관되면서 넘어오는 8조원에 약 1조7000억원(지방교육재정교부금 중 1조5200억원, 일반회계 전입금 2000억원가량)을 증액했다. 이 재원으로 기존 대학의 재정지원금(1조원)을 1조4000억원으로 늘리고 노후화된 국립대의 교육·연구시설을 보수한다.
나라살림연구소 분석에 따르면 국회 심사 과정에서 증액된 총 658개 사업(고등·평생교육지원특별회계 편성으로 인한 증액 제외)에서 300억원 이상 증액된 22개 세부사업의 증액 규모는 총 2조5000억원이다. 이중 국토교통부 공공 전세임대주택(융자) 사업이 6630억원으로 가장 많이 증액됐다. 이에 따라 내년 공공 전세임대주택 공급 물량이 기존 3만호에서 3만7000호로 늘어난다. 심상정 정의당 의원과 시민단체 등은 당초 정부가 제출한 예산안에서 공공임대 예산이 예년 대비 5조7000억원 감액됐다며 예산을 전액 부활시켜야 한다고 요구해왔다.
정부안(案)에서 전액 삭감된 지역사랑상품권(지역화폐) 발행지원 사업도 3525억원 증액됐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12월 23일 예산안이 법정처리시한(12월 2일)을 3주 넘겨 지각 처리된 배경에 대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7050억원의 지역화폐 예산을 요구하는 바람에 오래 걸렸다”고 했다.
예년과 마찬가지로 여야 실세 의원들의 지역구 예산 증액과 무늬만 증액된 ‘현수막 예산’이 또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현수막에 걸리는 홍보용 예산이라는 뜻의 현수막 예산은 예산을 늘렸다 해도 실질적으로 추가 지출이 불가능해 그대로 불용되는 것을 말한다. 지역구민 기만행위이자 정작 중요한 사업에 예산을 쓰지 못하게 한다는 비판을 받는다.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국토교통부 공공임대주택 사업 예산의 경우 정부안에서 6조원 넘게 삭감된 후 국회 심사 과정에서 불과 6630억원만 증액됐다”며 “이중 50억원 이상 국회에서 증액된 국토교통부 사업 32개 모두 임대주택과 상관없는 도로, 철도, 지역개발 사업”이라고 했다. 이 위원에 따르면 도담-영천 복선 전철 사업은 2021년 예산 5190억원 중 3356억원만 지출된 데 이어 2022년도(7월 말 기준)에는 2904억원 중 810억원만 집행됐다. 춘천-속초 철도건설 사업도 2021년 490억원 중 340억원만 집행됐으며 2022년(7월 말 기준)엔 1270억원 중 211억원만 집행됐다.
여야는 심사 과정에서 이른바 ‘윤석열표 예산’으로 불린 대통령실 용산 이전, 경찰국 신설 예산과 ‘이재명표 예산’으로 불린 지역화폐, 임대주택 예산을 두고 팽팽하게 맞섰다. 심사 결과 행안부 경찰국·법무부 인사정보관리단 운영 경비 예산은 당초 정부안(5억1000여만원)의 50% 감액이라는 선에서 타협을 봤다. 전액 삭감을 주장해온 더불어민주당은 12월 24일 국회 통과 직후 배포한 보도자료에서 “대표적 낭비 예산으로 꼽혔던 대통령실 영빈관 신축을 위해 책정된 497억원을 전액 삭감하고, 불법적 시행령 통치를 위해 신설된 행안부 경찰국 운영경비예산 2억900만원과 법무부 인사정보관리단 운영경비예산 3억700만원 등은 50%를 삭감했다”고 밝혔다.

윤석열 대통령이 12월 2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어려운 경제상황에서 민생을 살리기 위한 새 정부의 첫 예산이 대폭 수정돼서 매우 유감스럽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윤 대통령 “유감”, 여야 “성과” 자평
윤석열 대통령은 국회의 예산안 처리에 불편한 심경을 드러냈다. 윤 대통령은 12월 27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주재한 국무회의 모두발언에서 “어려운 경제상황에서 민생을 살리기 위한 새 정부의 첫 예산이 대폭 수정돼서 매우 유감스럽다”고 했다. 법인세 인하, 반도체 지원, 주식양도세 완화 등 기업의 경쟁력 확보와 시장 활성화를 위한 법안이 정부안대로 국회에서 처리되지 못한 것에 대해 아쉬움과 불만을 표명했다.
2023년도 예산안과 함께 국회를 통과한 예산부수법안 중 법인세법 개정안은 연간 영업이익 3000억원 이상 대기업에 적용되는 최고세율(25→24%)을 포함해 과표구간 세율을 1%포인트씩 낮추는 내용이 골자다. 정부는 현행 25%에서 22%로 3%포인트 낮추는 안을 제시했으나 민주당은 이를 ‘초부자 감세’로 규정하고 반대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2021년 현재 최고세율을 적용받는 3000억원 이상 과표구간에는 약 103개 기업이 포함된 것으로 추정된다.
조세특례제한법(조특법)의 경우 반도체·배터리·바이오(백신) 등 국가첨단전략산업 시설에 투자하는 대기업에 대한 세액공제를 현행 6%에서 8%로 상향 조정하는 내용이다. 현행 세액공제 비율은 대기업 6%, 중견기업 8%, 중소기업 16%다. 중견·중소기업은 기존대로 유지하고 대기업만 2%포인트 상향 조정됐다.
2023년부터 시행될 예정이던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 과세는 2년 미뤄진다. 이 기간 주식양도소득세 과세기준은 현행 10억원으로 유지했다. 정부·여당은 금투세 시행을 2년 유예하되, 이 기간 대주주 기준을 종목당 10억원에서 100억원으로 상향하는 방안을 고수했으나 부자 감세로 규정한 야당에 막혀 대주주 기준을 완화하지 못했다. 이를 두고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12월 27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내년도 예산안과 세제 개편안이 정부가 구상한 대로 다 통과되지 못해서 정말 아쉽고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며 “특히 법인세 체계 개편과 관련된 부분은 소망컨대 22대 국회에서 여건이 좋아지면 전반적인 구간 단순화와 최고세율 인하 부분을 본격적으로 논의하면서 관철하는 노력을 해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고 했다.
여야는 성과 홍보에 적극 나섰다. 국민의힘은 12월 24일 “고물가·고금리 민생부담 경감 분야 예산에 총 9323억원을 증액하는 등 국민의 빚은 늘리지 않으면서 민생부담 경감, 사회적 약자 돌봄, 미래세대 지원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을 끌어냈다”고 밝혔다. 민주당은 같은날 보도자료에서 “지역사랑상품권 예산 3525억원 증액과 주거 취약계층을 위한 임대주택 예산 6630억원 증액 등 초부자 감세 저지, 민생경제예산 확대, 불합리한 정부예산 삭감 등의 성과를 냈다”고 밝혔다. 정의당은 “법인세 최고세율 인하 등은 국제적 추세에도 역행한다”(김희서 수석대변인)며 양당을 싸잡아 비판했다.

11월 29일 국회 본청 계단에서 정의당 심상정 의원과 ‘내놔라 공공임대 농성단’ 주최로 공공임대주택 예산 삭감 저지를 위한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세법 개정 반영 안 된 세수 추계
윤석열 정부 첫 예산에 대한 전문가들 평가는 ‘미흡’에 가깝다. 예산안에 담긴 세수 추계부터 ‘졸속 처리’ 논란이 일고 있다. 국회를 통과한 정부 추산 총수입은 애초 정부안 625조9000억원보다 2600억원 줄어든 625조7000억원으로, 사실상 세수 규모에 변화가 없다. 법인세율 인하로 세수 조정이 불가피함에도 이를 제대로 반영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최근 큰 폭의 초과세수 발생 등 국세 수입 예측 실패가 사회적 문제가 되고 기재부가 사과까지 했음에도 여전히 안이하게 국세 세입추계를 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기재부는 2021년 61조원의 초과세수(정부 예상보다 세금이 더 걷힌 것)가 발생해 역대 최고 오차율(21.7%)을 보인 데 이어 2022년에도 53조원 규모의 초과세수 발생을 피하지 못할 것으로 전망된다. 감사원은 2022년 9월 기재부를 대상으로 세입예산 추계 운영실태 감사를 진행한 이후 “들어올 돈을 실제보다 훨씬 적게 잡은 탓에 국채 발행 규모가 불필요하게 확대되는 등 재정 운용 비효율로 이어졌다”고 지적한 바 있다. 방기선 기재부 1차관은 12월 26일 장혜영 정의당 의원의 “총수입 세부내역에서 애초 정부안과 수정안의 내용이 똑같다”는 지적에 대해 “수정안 통과에 따른 세수 변화가 800억원 정도로 너무 미미해 수정없이 반영했다”고 답했다. 이상민 위원은 “예산안과 부수법안을 둘러싼 여야의 대립과 막바지 협상에 맞물려 기재부의 시트 작업(계수조정 작업)이 늦어졌다 하더라도 법인세율 변동폭을 가정한 시뮬레이션은 사전에 충분히 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기재부가 여야 합의 내용을 토대로 다시 추계한 세수 감소 규모도 공개됐다. 기재부가 12월 28일 장혜영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를 보면 기재부가 여야 합의에 따라 세입예산을 다시 추계한 결과 법인세 개편으로 세수는 누적법(기준연도 대비 증감 계산) 기준 2023년부터 2027년까지 5년간 13조7000억원이 줄어들었다. 2022년 대비 2023년에 4000억원 줄고 2024년부터 매년 약 3조3000억원씩 세수가 감소한다. 종합부동산세(종부세) 개편에 따른 세수 감소 규모는 6조3000억원이다. 2023년에 9000억원 감소하고 2024년부터 매년 약 1조3000억원 안팎 줄어든다. 당초 정부안과 비교해 법인세 감면 폭은 3조5000억원, 종부세 감면 폭은 3조원 각각 적다. 법인세의 경우 정부는 당초 법인세 최고세율 구간을 현행 25%에서 22%로 내리고 중소·중견기업에는 과세 표준 5억원 구간까지 특례세율 10%를 적용해 세수 감소 규모를 추산했다. 그 결과 법인세 개편에 따른 세수 감소 규모는 17조2000억원이었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2월 27일 정부세종청사 기재부 기자실에서 출입기자 간담회를 열고 최근 주요 경제현안에 대해 답변하고 있다. 기획재정부 제공
‘소소위’ 속기록 작성 필요···추경 가능성은
깜깜이·밀실 심사 관행도 반복됐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예결위)는 정부 예산안의 국회 제출 후 여야 대치로 파행을 거듭하면서 법정 활동 기한인 11월 30일까지 감액 심사도 완료하지 못한 채 활동을 종료했다. 이후 예산안은 이른바 ‘소(小)소위’ 단계로 넘어갔다. 소소위는 교섭단체 원내 지도부와 예결위 간사 등 소수만 참여하는 협의체다. 법적 근거 없이 비공개로 회의로 이뤄지며 속기록도 남지 않는다. 실세 의원 지역구 예산 증액이나 쟁점 예산 협의가 대부분 이곳에서 다뤄진다. 나라살림연구소는 12월 25일 ‘2023년 예산 국회 심의 현황, 문제점, 개선 방안’ 보고서에서 “(일각에선) 예산 심의의 효율성 등을 위해 비공개 회의체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비공개 회의체가 필요하다고 하더라도 정확한 속기록이 작성되지 않을 필요는 전혀 없다. 국가 기밀이라 하더라도 일정기간이 경과하면 기밀에서 해제되는 것이 기본이다. 공개의 수준과 범위는 사회적 협의가 필요하다고 하더라도 속기록 작성은 즉시 시행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부와 정치권은 민생예산 확보에 공을 들였다고 강변한다. 하지만 2023년 우려되는 경제복합위기로 어려움에 처해질 수 있는 민생과 취약계층 보호엔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경민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팀장은 “정부는 2023년 복합위기 상황과 물가상승률을 감안해 취약계층의 복지지출 수요를 고려한 예산안을 제출해야 했다”면서 “그럼에도 정부안은 의무지출 정도의 예산만 확대했을 뿐 공공성 강화, 취약계층 대상 지원 예산은 예년 수준으로 편성하거나 되레 삭감했다. 국회에서도 여야 쟁점 예산만 다뤘을 뿐 사회안전망과 관련한 예산 증액 논의는 없었다”고 말했다.
한국 경제는 2022년 연간 물가상승률이 5%대를 보일 것으로 예상되는 반면 2024년 노인인구가 1000만명을 넘어서는 등 실질소득은 줄어들고 복지지출 수요는 늘어나는 구조다. 반면 2023년도 예산 총지출 증가율은 2022년 2차 추경 대비 소폭 줄어들고 본예산 대비 소폭 증가하는 데 그친다. 민생과 취약계층 보호에 들어갈 추가 재원, 즉 추경이 불가피할 것이란 관측이 정치권을 중심으로 제기되는 이유다. 이에 추 부총리는 12월 27일 간담회에서 “내년 굉장히 큰 재해나 외부의 경제적 충격이 크게 나타나지 않고, 현재 정부가 예측한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경기 흐름을 보인다면 추경 편성은 현재로서는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다”고 선을 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