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금흐름 막는 재고자산, 경기침체기 기업 리스크 관리 ‘1순위’

박동흠 회계사
박동흠 회계사

박동흠 회계사

경기침체의 늪이 깊어지면서 기업들의 재고관리에도 비상이 걸렸다. 특히 2022년 상반기까지 수출을 주도하며 호실적을 냈던 반도체 기업의 재고가 3분기 이후부터 너무 많이 쌓이고 있다.

전자공시시스템(DART)에서 SK하이닉스의 2022년 3분기 보고서를 찾아보면 9월 말 현재 보유한 재고자산은 약 14조7000억원이다. 2021년 말 8조9000억원이었는데 9개월 만에 64%나 증가했다. 판매가 너무 잘되어서 수요에 즉시 대응하기 위해 많은 재고를 보유했다면 다행인데 그렇지 않아 보인다.

SK하이닉스의 2021년 손익계산서를 보면 매출원가가 24조원으로 나온다. 매출원가는 생산이 완료되어 창고에 보관 중인 제품이 외부로 팔리면서 비용처리된 것이다. 쉽게 생각해서 기업이 제품을 보유하고 있으면 재고자산, 팔리면 매출원가다. 매출원가에 마진을 붙인 것이 매출액이다. 이 매출원가 24조원을 열두 달로 나누면 원가 기준으로 한 달에 약 2조원어치 팔렸다는 계산이 나온다. 한 달에 2조원어치씩 파는 회사가 8조9000억원어치의 재고를 갖고 있으니 4개월치 이상의 재고를 보유한 셈이다.

같은 방식으로 2022년 3분기까지 월 매출원가를 계산하면 1조8000억원이 나온다. 2022년 9월 말 현재 보유하고 있는 재고자산이 약 14조7000억원이니까 8개월치의 재고를 갖고 있는 셈이다. 최근 보도에 따르면 4분기 말에 10개월치의 재고가 쌓일 것이라고 한다. 1년 만에 재고자산 보유 기간이 2배 이상 길어졌다.

기업이 제품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재료비와 인건비 그리고 각종 경비 등을 투입해야 한다. 이 재고가 빨리 팔려서 판매대금이 잘 회수되어야 회사의 현금흐름이 원활해질 수 있다.

SK하이닉스는 지난해 9월 말 현재 보유한 현금이 7조원대지만 갚아야 할 차입금이 22조원이 넘는다. 한데 금리도 오르고 예년보다 시설 투자까지 늘리는 상황이라 재무적으로 아주 넉넉하다고 볼 수는 없다. 그래도 다른 여러 금융자산을 수조원대 보유했고 3분기까지 영업활동에서 13조원이 넘는 현금을 벌어들였기 때문에 위험한 수준은 전혀 아니다.

문제는 이런 대기업보다 재무구조가 넉넉지 않으면서 재고자산이 쌓이는 중소기업들이다. 금리 인상에 따른 이자 비용 부담과 최근까지 원자재 가격과 환율 상승으로 생산비 부담까지 겪었는데 재고자산마저 쌓이니 현금흐름에 비상이 걸릴 수밖에 없다.

재고자산이 쌓이면서 발생하는 또 다른 문제는 재고를 제값 받고 팔기 힘들 수 있다는 것이다. 보유 기간이 길어질수록 제품의 유행이 지나거나 옛날 사양으로 취급받는다. 물리적으로도 변형이 오기 때문에 판매 가치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제품 하나를 생산하면서 1만원을 지출했는데 진부화로 인해 가치가 떨어져 판매가격이 8000원으로 내려간다면 어떻게 될까? 기업들이 적용받는 회계기준은 즉시 손실로 처리하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들이 생기기 때문에 기업들은 원재료부터 완제품까지 모든 재고를 리스크의 관점에서 철저하게 관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재고가 많이 쌓인다는 것은 경기침체의 방증이다.

기업에 여신을 제공하는 은행이나 자본을 대고 있는 투자자들은 주로 기업의 재무제표에서 손익계산서를 집중적으로 보는데 경기침체가 본격화 할 때에는 재고자산이 얼마나 적체되고 있는지를 최우선으로 검토해야 한다. 재고자산이 많이 쌓이는 것은 손익과 현금흐름에 큰 영향을 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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