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건너 ‘남의 삶’ 구경하기
빈민 취재기 쓴 일본 기자 이치호이
노숙인 체험한 독일 기자 발라프
‘강 건너 일’이 내 일인 것처럼 꾸미기보다
잘 모르니 ‘구경’하고 배우겠다라는
솔직한 태도로 약자의 삶을 관찰
다른 세계를 이해하려는 시도는
때론 불경스러워도 안 하는 것보다 낫다
그들 문제와 내 문제가 연결돼 있음을
계속 바라보다 보면 깨닫게 되고
‘강 건너’로 넘어가 볼 수 있을지도…
지난달 25일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난쏘공)을 쓴 조세희 작가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1970년대 서울의 철거촌 ‘행복동’을 배경으로 한 이 소설은 도시 빈민의 삶을 생생하게 그려내면서도 대중적인 호응을 얻어 문학 작품 최초로 300쇄를 넘기기도 했는데요. 이는 가히 ‘난쏘공 현상’이라고 할 만한 것이었습니다. 언론은 조 작가의 부고를 전하며 씁쓸한 어조로 “여전히 난쏘공 세상”이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1970년대와 오늘날의 큰 차이가 있다면, ‘2023년 버전의 난쏘공 현상은 없다’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2023년의 가난에는 ‘얼굴’이 없습니다. 1960년대 소설 속 ‘달걀 지단 든 김밥’을 소풍에 못 싸가서 울상을 짓는 아이가 여전히 가난의 상징으로 등장하곤 합니다. 오늘날엔 적당히 달걀 김밥 정도는 싸갈 수 있으니 모두가 가난에서 벗어나 잘살게 된 것일까요? “여전히 난쏘공 세상”이라는데 가난이 보이지 않는 이유는 가난이 사라져서가 아니라, 우리가 단지 그것을 보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이 아닐까요?
오늘 레터에서는 ‘가난’ 그 자체보다도 ‘타인의 어려움을 쳐다본다는 것’에 대해 해찰해볼까 합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는, 나와 연관이 없어 보이는 다른 세계의 사람들을 이해하려고 하는 투박한 태도에 대해서입니다.
■‘빈민 대학’ 취재기
“내가 빈곤 대학 과정을 밟던 어느 여름날의 일이다…. -겐콘 이치호이, <도쿄의 가장 밑바닥>”
만약 오늘날 ‘빈민의 삶을 알아보겠다’며 ‘빈민가 관찰’에 나서는 사람이 있다면 어떨까요? 조금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일본 기자인 겐콘 이치호이(본명 마쓰바라 이와고로·1866~1935)가 쓴 <도쿄의 가장 밑바닥>의 부제는 ‘빈민가 잠입 취재기’입니다. 19세기 도쿄의 빈민가에서 500여일간 함께 부랑자들과 먹고 자고 일하며 이들의 삶을 가까이서 관찰한 르포죠. 생생한 취재를 통해 1890년대 도쿄 인력거꾼들이 언제 어디서 손님들을 구하는지, 경매장에서 짚 부스러기와 대팻밥까지 사고팔리는 실정, 일용직 잡부들이 힘들게 번 돈을 어떻게 술집에서 금세 써버리는지 등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책의 흥미로운 점은, 저자가 시종일관 굉장히 ‘구경꾼(?)’ 같다는 점이었습니다. 심지어 이 책에는 ‘빈민 대학’이라는 표현이 여러 번 등장하는데요. 저자의 태도는 순진 명쾌합니다. 자신은 ‘빈민(을 배우러 온) 대학의 학생’이라는 거죠. 그는 이 책의 첫머리에서 취재를 위해 빈민가로 걸어 들어가며 “암담한 세계로 출발할 시각이 다가왔다”며 빈민가를 “빈천지 대학”이라고 지칭합니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저자는 책 전반에서 ‘호기심’을 여과 없이 드러냅니다. 대표적으로 ‘잔반야(음식 찌꺼기를 그날그날 무게로 달아 파는 빈민용 식당)’ 풍경을 관찰한 대목에서 그는 “말로만 듣던 잔반야에 드디어 왔다”며 “빈민을 상징하는 잔반과 잔채의 실체를 확인할 기회를 마다할 수 없어서 부리나케 갔다”고 흥분하는데요. 남이 남긴, 쉬어빠진 음식 찌꺼기로 연명할 수밖에 없는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든 장면이 유쾌할 리 없습니다. 하지만 잔반야 취재를 앞두고 저자는 ‘마치 선물 포장지 뜯기를 기대하는 아이 같은 기대감’을 보여줍니다.
한편 저는 이 대목을 읽으며 곰곰 생각에 빠졌습니다. 남의 어려운 삶에 대해 ‘호기심’을 갖는다고 해서 그것이 꼭 불경한 것일까요? 애초에 자신의 고통이 아니라면 누구의 고통이든 ‘강 건너의 불’일 수밖에 없습니다. 섣불리 ‘강 건너’의 일을 내 일인 것처럼 짐짓 가식적으로 꾸며대거나, 내 일이 아니니까 관심을 차단하기보다는 - 나와 너 사이엔 강이 있고, 나는 너의 세계를 모른다. 그러므로 ‘구경’하고 배우겠다라며 - 순진하고 열정적으로 달려드는 쪽이 겸손하고 솔직한 태도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저자는 빈민가를 취재하기 위해 온 ‘빈민 대학 학생’입니다. 저자의 자세는 마치 새로운 세계를 눈앞에 둔 인류학자처럼 어리둥절하면서도 호기심이 넘칩니다. 그는 때론 아이처럼 순진한 눈으로, 때론 공무원 같은 시각으로 돈푼 한 전까지 빈민들의 삶을 기록합니다. 그들의 삶을 그저 숭고하게만 그려내지 않고, 즐거운 것은 즐거운 대로 절망스러운 것은 절망스러운 대로 고스란히 건져냅니다.
당시 빈민가에서 성업 중이었던 ‘침구 대여업’에 대해 겐콘은 “일 년 내내 어마어마한 이불 대여료를 치르느라 고생하다 보면, 내년에는 기필코 새 침구를 장만해서 편히 자겠노라고 각오한다”며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현실적으로는 그 각오를 실천할 재력이 없어서, 가엾지만 올해도 누구랄 것 없이 여전히 대여점의 신세를 진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침구 대여업이 빈민가에서 성업인 이유는 빈민들의 삶이 그때그때 ‘변통’하듯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만약 겨울용 도톰한 이불 한 채가 50원이라고 하면, 이불을 한철 빌리는 값이 30원입니다. 두 해만 빌린다고 해도 이불 한 채를 사는 편이 훨씬 저렴하지만, 이들에겐 목돈이 없기 때문에 빈민가 근처엔 항상 비싼 돈으로 이불을 빌려주는 일이 성행하는 것입니다.
그의 ‘관찰’은 관찰로만 끝나진 않습니다. 그는 이 책에서 중간중간 나름의 평론을 덧붙입니다. ‘강 건너’의 일을 구경하는 것에 대한 자기 자신과 독자를 향한 당부입니다. “날품팔이는 짐 주인 때문에, 도매상이나 채소 장수 때문에, 심지어 소비자인 우리 때문에 소득의 1할을 빼앗긴다. (…) 호주머니 속에 든 오늘 쓸 돈이 10엔이든 100엔이든 그중 5엔이나 50엔은 그들의 재산임을 명심하라. 어쩌다 길가에 엎드려서 남루한 옷차림으로 추위에 떨거나, 잔반도 못 먹어서 굶주린 모습을 보면 반성해야 한다.”
겐콘 이치호이라는 호기심 넘치는 기자 덕분에 당시 독자들은, 그리고 약 130년 뒤 한국 땅의 독자는 당시 가난한 사람들의 삶의 모습이 어떠했는지 자세히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흑인, 노숙인 체험한 기자
겐콘 이치호이식 ‘빈곤 체험’의 핵심은 “비록 나는 당신들과는 다른 세계에 살아. 하지만 나는 당신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진정 알고 싶어”라는 태도가 아닐까 싶습니다. 알고 싶기 때문에 갔습니다. 그리고 머무르고 관찰해 글을 썼습니다. 이런 태도는 어딘가 산뜻하다 못해 조금은 투박해 보이기까지 하는데요. 이와는 다소 다른 결이지만, 마찬가지로 조금 투박하나마 진심 어린 호기심으로 약자들의 삶을 ‘관찰’한 작품을 하나 더 소개해볼까 합니다.
‘잠행 르포의 전설’이라 불리는 독일 기자 귄터 발라프의 <언더커버 리포트>는 2007~2008년, 60대 후반의 나이에 흑인, 노숙인, 빵 공장 노동자, 콜센터 직원 등으로 ‘위장’해 취재한 생생한 르포를 엮은 책입니다. 그의 이름을 따서 ‘Wallraffa(위장해 내부로부터 비리를 폭로하다)’라는 신조어가 만들어졌을 정도라고 하네요.
사실 처음 이 책 속 ‘블랙페이스’(사진) 사진을 보며 조금 당황했습니다. 2000년대에 백인이 ‘인종차별 체험’을 하기 위해 얼굴을 검게 칠한다는 건 분명 시대에 맞지 않아 보였습니다. 그는 노숙인 분장을 하기도 하는데요. 저는 ‘이런 분장을 해봤자 어차피 이 사람은 세계적으로 성공한 백인 중년 기자인걸’이라고 생각하며 조금 못마땅해졌습니다. 또한 노숙인이 힘든 것은 단지 며칠간 돌바닥에서 잠을 자서 ‘좀 춥고 불편’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분장만 지우면 아파트로 돌아갈 수 있는 사람은 결코 ‘노숙인’의 심정을 100% 이해할 수는 없습니다. ‘교도소 1박2일 체험기’를 보며 머리를 긁적이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겠죠.
하지만 <언더커버 리포트>를 정작 읽어내려가면서는, 이런 우려와는 정반대의 생각을 떠올리게 됐습니다. ‘○○ 체험이 다소 투박하고 불경스러운 부분이 있을 수 있겠지만, 분명히 안 하는 것보다는 낫지 않을까’라고요.
이 책에는 극적인 차별의 현장보다는, 일상의 소소한 대목에서의 차별들이 주를 이룹니다. 귄터는 분장을 한 채 축구 경기장 앞에서 관중에게 말을 겁니다. 그는 경기장 앞, 경기가 끝난 뒤의 버스나 거리에서도 줄곧 수위 높은 모욕과 함께 물리적 위협에 시달립니다. 그는 당시 기억을 떠올리며 “나는 흑인이 아니고, 나는 나의 피부색에서 다시 빠져나올 수 있다. 그런데도 내 자존심은 상처받았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핵심이 되는 건 ‘나는 흑인이 아니라서 다행이다’가 아니라 ‘내 자존심은 상처받았다’라는 문장입니다. 그는 얼마든 이런 차별을 ‘보지 않고’ ‘강 건너에 불이 나지 않은 것처럼’ 살 수 있는 백인 남성 기자입니다. 그럼에도 그는 분장을 하고서라도 ‘강 건너의 불’을 바라보기 위한 시도를 했습니다. 그가 ‘피부색에서 빠져나오’게 되더라도, 그 기억까지 온전히 사라지리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습니다.
이어지는 챕터에서 그는 몇 주간 ‘노숙인 체험’을 합니다. 그중에서도 인상적인 건 귄터가 한 간이 홈리스 쉼터에서 잠들기 전 ‘라디오 볼륨을 좀 낮춰달라’고 부탁했다가 40대 남성 노숙인에게 살해 협박을 받은 사연이었습니다. 저자는 그를 무시하거나 그와 싸우지 않고, 다음날 “마지막 남은 용기를 쥐어짜서” 다시 말을 겁니다. 그러자 한층 누그러진 태도로 그 노숙인은 자신의 이름이 ‘프레드’이며 마약중독 치료를 받고 있다고 긴 이야기를 풀어놓습니다.
귄터는 아무리 분장을 해도 결코 프레드와 같은 노숙인이 될 수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자기와 다른 세계’에 대한 인정을 기반으로 정중한 ‘호기심’을 유지합니다. 그리고 진심으로 상대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맺음말
SNS 등 인터넷에서 자기와 의견, 성향이 비슷한 사람들끼리 어울리는 현상을 두고 ‘필터 버블’이라는 말이 유행한 지도 오래되었습니다. 어쩌면 이건 꼭 인터넷의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현실에서도 마찬가지로, 아니 현실에서 더더욱 ‘필터 버블’이 굳건해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예의와 거리 두기를 핑계로 서로 다른 배경을 지닌 사람들끼리는 마주칠 일도 없고, 마주칠 필요도 없는 세계 속에서요. 만남과 관찰이 아닌, 스쳐지나감만 남은 세상에서 가난한 사람들은 홀로 가난하고 괴로운 사람들은 홀로 괴로워할 수밖에 없습니다.
‘강 건너 불구경’이라는 말은 흔히 부정적으로 사용되어 왔습니다. 하지만 조금은 투박하더라도, 오해의 여지를 안고서라도, 과감하게 ‘강 건너’의 세계를 넘겨다보려는 욕구. 어쩌면 그것으로부터 변화가 시작되지 않을까요? 물론 개중에는 ‘불구경’으로 시시하게 끝나버리는 시도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바라보다 보면 누군가는 그것이 나의 문제와 이어져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누군가는 강 건너로 가 볼 용기를 낼 수도 있습니다.
올 한 해는 그간 바라보지 못했던 세계에 ‘호기심’을 갖고 다가가 보려 합니다. 그것을 위해서 어설프나마 아주 작은 실천이라도 하는 것이 올해의 목표입니다.
이 글은 인문교양 뉴스레터 <인스피아>에 실린 내용을 수정한 것입니다. 더 많은 글을 보고 싶으시다면 오른쪽 QR코드를 촬영하거나, 포털에 ‘인스피아’를 검색해서 구독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