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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와 피노키오

입력 2023.01.12 03:00

수정 2023.01.12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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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로 콜로디의 <피노키오의 모험>은 1883년 출간된 아동문학의 고전이다. 목수 제페토는 자신이 만든 말하는 목각 인형 피노키오에게 글자 공부 책을 사주기 위해 한 벌뿐인 외투를 팔 정도로 정성을 들이지만, 피노키오는 지지리도 말을 듣지 않는다. 꾀를 부리고 온갖 유혹에 빠지던 피노키오는 수차례 죽을 위기를 겪는다. 개과천선한 피노키오는 결국 바라던 대로 인간이 된다. 소설 결말부 제페토의 대사인 “못된 아이들이 착해지면, 그 아이들의 가정에도 새롭고 웃음 가득한 행복이 찾아온다”는 말에서 느껴지듯, 상당히 교훈적이다.

백승찬 문화부장

백승찬 문화부장

현대의 재능 있는 예술가들은 이 인기 있는 이야기를 ‘공부 안 하면 벌받는다’는 교훈담으로 내버려두지 않았다. <A.I.>(2001)는 30편이 넘는 스티븐 스필버그의 연출작 중에서도 손꼽히는 걸작이다. 인간이 되고 싶은 피노키오는 이 영화에서 사랑받기 위해 제작된 AI 데이비드의 모티브가 된다. 데이비드는 불치병에 걸려 치료제가 개발될 때까지 냉동된 아들을 대신하기 위해 한 가정에 입양된다. 기적적으로 회복된 아들이 데이비드와 사사건건 충돌하자 엄마는 망설임 끝에 데이비드를 숲속에 유기한다. 진짜 사람이 된다면 엄마의 사랑을 되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 데이비드는 인간이 되기 위해 험한 세상을 모험한다.

<A.I.>에서 가장 문제적인 것은 엔딩이다. 데이비드는 기후변화로 물속에 잠긴 유원지의 파란 요정 조각 앞에서 “저를 진짜 소년이 되게 해주세요”라고 기능이 정지할 때까지 빈다. 온 세상이 얼어붙고 인류가 멸망한 수천년 뒤, 살아남은 로봇들이 데이비드를 재작동시켜 그의 소원을 듣는다. 로봇들은 우연히 간직된 엄마의 DNA로 모자의 만남을 이뤄준다. 데이비드가 결국 엄마와 만났다는 점에서는 해피엔드이지만 이 만남은 하루뿐이다. 데이비드는 엄마로부터 “너를 언제나 사랑해”라는 말을 듣지만, 그것은 데이비드의 소원이 투사된 상황일 뿐이다. 영화 포스터에는 “소년의 사랑은 진짜지만, 소년은 진짜가 아닙니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사랑받기 위해 프로그래밍된 존재에 대한 사랑은 진짜 사랑인가. 동물, 식물, 사물에 대한 사랑은 인간에 대한 사랑과 얼마나 다른가. 비인간과의 반려가 보편화된 시대에 돌출하는 질문들을 20여년 전의 영화는 미리 던졌다.

멕시코 출신 감독 기예르모 델 토로가 연출한 스톱모션 애니메이션 <기예르모 델 토로의 피노키오>는 11일(현지시간) 열린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최우수 애니메이션상을 받았다. 델 토로 역시 원작을 순순히 따를 생각이 없었다. 델 토로는 시대 배경을 2차 세계대전으로 바꿨다. 피노키오는 제페토가 전쟁 중 아들을 잃고 비통에 빠져 만들어낸 인형이다. 국가는 피노키오를 파시스트 홍보대원으로, 죽지 않는 군인으로 이용하려 한다.

이 영화의 결말 역시 <A.I.> 못지않게 기묘하다. 피노키오는 불사의 몸을 포기하는 대신 익사 위기에 있던 제페토를 살리고 죽는다. 죽음은 사물과 인간을 가르는 중요한 특성이므로, 이 순간 피노키오는 인간의 한 조건을 획득한 것으로 보인다. 귀뚜라미인 세바스티안 J 크리켓이 자신에게 남은 소원을 빌어 죽은 피노키오를 되살린다. 피노키오는 제페토, 크리켓, 원숭이 스파차투라와 함께 가족을 이뤄 살아간다.

원작은 인간이 된 피노키오가 제페토와 함께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으로 끝나지만, 델 토로는 그런 결말을 내지 않았다. 나무 인형 모습 그대로인 피노키오의 간병을 받던 늙은 제페토가 병상에서 죽고, 크리켓이 죽은 채 창가에서 발견되고, 마지막 남은 스파차투라의 이름이 묘비에 새겨지는 모습을 이어서 보여준다. 이제 피노키오는 진짜 홀로 남는다. 그가 새로운 여행을 떠나면서 영화는 끝나지만, 가족이 살아있었다면 피노키오는 집을 떠나지 않았을 것이다. 이 모험은 자의인가 타의인가. 피노키오에게 가족은 안정과 행복이었나, 억압과 족쇄였나.

스필버그는 사랑받고 싶어 하는 인공지능 데이비드를 통해 감정이 인간의 전유물인지 물었다. 데이비드의 애정욕이 너무 강렬하기에, 관객은 사랑이 인간과 인간뿐 아니라 인간과 동물, 심지어 인간과 사물 사이에서 오갈 수 있다고 여기게 된다.

델 토로는 ‘불사’라는 피노키오의 조건을 조금 더 깊이 파고들었다. 인간들이 조금씩 죽음을 뒤로 미룰 능력을 갖춰가는 시대에, 예기치 않은 주변인의 죽음 이후 남은 삶이 어떤 것인지 탐구했다. 고전은 그렇게 새로 태어난다. 새로 태어날 수 있는 것이 고전의 조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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