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노위 이어 법원도 “단체협상 의무 인정”

서울행정법원이 CJ대한통운이 “단체교섭 거부는 부당노동행위라는 재심판정을 취소하라”며 중앙노동위원회 위원장을 상대로 낸 소송이 원고 패소로 판결을 내린 12일 전국택배노조원들이 서울 서초구 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김창길기자
CJ대한통운이 택배노동자들의 단체교섭 요구를 거부한 것은 부당노동행위라고 법원이 판단했다. 원청인 CJ대한통운은 하청노동자인 택배노조의 단체교섭 요구에 응해야 한다는 중앙노동위원회(중노위) 판정이 법원에서도 유지된 것이다. 하청노동자들과의 교섭이 원청업체 의무라고 본 이번 판결이 다른 업종의 원·하청 교섭에도 영향을 줄 지 주목된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2부(재판장 정용석)는 12일 CJ대한통운이 중노위를 상대로 낸 부당노동행위구제 재심판정 취소소송 1심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재판부는 “CJ대한통운은 집배점 택배기사의 근로조건을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다”며 “택배기사와의 관계에서 노동조합법상 사용자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중노위는 2021년 6월 CJ대한통운이 택배노조에 대해 단체교섭 의무를 부담하는 사용자가 맞고 CJ대한통운이 단체교섭을 거부한 것은 부당노동행위라고 판정했다. 중노위의 판정은 CJ대한통운의 사용자성을 부정한 지방노동위 판단을 뒤집은 것으로, 중노위가 하청노동자와의 단체협상 의무를 원청에 지운 첫 사례였다. 택배노조는 그동안 택배기사의 노동조건을 실질적으로 좌우하는 ‘진짜 사장’인 CJ대한통운을 상대로 교섭을 요구했지만 CJ대한통운은 ‘계약관계 없음’을 이유로 거부해왔다.
CJ대한통운은 중노위 판정에 불복해 2021년 7월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CJ대한통운은 재판에서 택배기사의 사용자는 대리점이라 원청은 교섭에 응할 의무가 없다는 주장을 유지했다. 중노위 판정은 ‘명시적·묵시적 근로계약 관계를 맺고 있는 자를 노동조합법상 사용자로 봐야 한다’는 기존 대법원 판례에 배치된다고도 주장했다.
하지만 중노위에 이어 법원도 이날 하청노동자가 원청과 교섭할 권리를 갖는다고 인정했다. 재판부는 대리점주와 화물운송 위·수탁 계약을 체결하는 택배기사는 CJ대한통운과 직접 계약관계가 없어도, 이들의 노동조건에 실질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사용자는 CJ대한통운이라고 봤다. 재판부는 “집화 및 배송업무가 CJ대한통운의 사업에서 차지하는 역할 및 비중, CJ대한통운과 집배점간 관계, 택배기사들 수와 택배사업의 규모 등에 비춰보면 택배기사들 근로조건에 대한 CJ대한통운의 지배는 사업특성상 구조적일 수밖에 없을 뿐만 아니라 지배력이 일시적이지 않고 지속적”이라고 판단했다.
또 “복잡한 노무관계가 확산하면서 근로조건에 대해 온전히 책임을 져야 할 원사업주(하청업체)임에도 근로조건 일부에 대해서만 권한과 책임을 갖게 되는 문제가 발생한다”며 “이런 상황에서 원사업주에게만 단체교섭 의무를 부담시킬 경우 근로조건 개선과 근로자의 사회적 지위 향상을 목적으로 하는 근로3권은 온전히 보호받지 못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이번 판결로 원청을 상대로 한 하청노동자들의 교섭 요구에도 힘이 실릴 것으로 보인다. 택배노조는 선고 직후 “2017년 노동조합 필증을 받고도 6년 동안 원청인 CJ대한통운과 교섭하지 못했다”며 “특수고용노동자의 교섭대상이 형식적 계약관계인 대리점·하청회사가 아니라 원청임을 확인한 판결을 환영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번 판결이 실질적으로 지배력을 행사하는 원청의 교섭 의무를 명시하도록 노조법 2·3조를 개정하려는 국회 논의 과정에 물꼬를 틔워주길 바란다”고 했다.
CJ대한통운은 “기존 대법원 판례를 뒤집은 1심 판결에 대해 납득하기 어렵다”며 “판결문이 송부되는 대로 면밀하게 검토한 뒤 항소할 계획”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