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시대부터 이어져 내려온 ‘전통 절식’
MZ세대 ‘약과 열풍’ 뉴트로 과자 급부상
흑임자 등 활용 외식업계 새 트렌드 주목
슈톨렌, 파네토네, 민스파이…. 크리스마스 즈음이면 곳곳에서 맛볼 수 있는 달콤한 디저트들이다. 그렇다면 우리 전통 명절인 설날과 관련 있는 한과로는 무엇을 연상하게 되나. 약과나 강정 정도가 고작일 가능성이 높다. 날로 화려하고 다양해지는 서양 디저트와 달리 전통 디저트 한과는 박제된 이미지 속에 머물러 있는 편이다. 요즘 입맛과는 맞지 않아 선뜻 손이 가지 않고, 관심 밖에 있다 보니 다양한 제품을 만나기도 어렵다. 하지만 최근 MZ세대를 강타했던 약과 열풍을 떠올려본다면, 흑임자나 서리태를 활용한 외식업계의 뉴트로 트렌드를 고려해 본다면 한과 중에서도 현대적으로 되살려볼 만한 것들이 꽤 있다.
“ ‘니가 무엇을 먹으랴느냐. 앵도를 주랴, 포도를 주랴. 귤병사탕의 혜화당을 주랴. 아매도 내 사랑아.’ <춘향전> ‘사랑가’에 나오는 과자는 이성의 환심을 사기 위해 애쓰는 이몽룡의 분신이다. 설탕, 꿀, 참기름, 잣같이 귀하고 달달한 재료로 만든 한과는 관혼상제는 물론 기호식으로서 늘 우리 민족과 함께했다.”
<조선 셰프 서유구의 과자이야기>라는 책에는 이 같은 대목이 나온다. 사계절이 뚜렷한 우리나라 기후 특성상 생과일이 없는 계절에도 과일을 말리거나 꿀, 설탕에 절여 다과상에 내거나 대소사에 사용할 수 있도록 준비해두는 것이 일상적이었다는 이야기다.
한과의 역사는 꽤 오래됐다. 삼국시대부터 이어져 내려온 한과는 경사스럽거나 중요한 의례에 빠지지 않고 올랐던 절식(節食)이다. 삼국유사 가락국기 수로왕조에는 제수용품으로 보통 과일을 쓰지만 과일이 없는 계절에는 곡물가루와 꿀을 섞어 썼다고 기록돼 있다. 또 <삼국유사> ‘김유신전’에도 말린 과일로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과자가 등장한다.
한과의 종류 중 가장 고급스럽고 귀하게 여겨졌던 것은 유밀과다. 밀가루에 기름과 꿀을 섞어 반죽한 뒤 기름에 튀겨 다시 꿀을 바른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약과다. 유밀과는 고려시대에 특히 발달했다. 불교를 국교로 삼아 살생을 금했던 때라 육류나 생선 대신 제사상에 올랐다. 비싸고 진귀한 꿀과 기름, 향신료까지 더해 만들어진 유밀과는 부드럽고 달콤한 고급 음식이었다. 이 때문에 물가가 오르거나 가뭄이 들었을 때 유밀과 금지령이 내려지기도 했다. 조선시대에도 명나라 사신을 위한 잔치를 베풀 때나 제사를 지낼 때, 회갑연이나 혼인을 할 때 외에는 만들지 못하게 했다.
숙실과는 과일을 익혀 만든 것으로, ‘초(炒)’와 ‘난(卵)’으로 나뉜다. 초는 열매를 통째로 익혀 원래의 형태가 유지되도록 설탕이나 꿀에 졸인 것이다. 밤초, 대추초 등이 있다. 난은 과일이나 열매를 익힌 뒤 으깨서 꿀을 섞어 다시 원래 모양대로 빚은 것이다. 율란, 조란, 생강란은 각각 밤과 대추, 생강으로 만든 것이다.
과편은 과일로 만든 젤리쯤으로 생각하면 된다. 과일을 삶아 걸러낸 즙에 꿀 따위를 넣어 졸이고, 다시 틀에 넣어 굳힌 뒤 편으로 썬 것이다. 전통적으로 앵두나 살구, 복숭아 등 새콤달콤한 과일을 많이 활용한다.
다식은 녹말이나 찹쌀, 흑임자 등 곡물가루를 꿀이나 조청으로 반죽해 모양틀(다식판)에 찍어낸 것이다. 봄철 소나무에 피는 송화를 말려두었다가 만드는 송화다식은 최고급 다식으로 여겨진다.
정과는 식물의 뿌리나 열매를 꿀에 넣고 졸여 만든다. 끈적하게 만드는 것이 진정과, 설탕의 결정이 보이도록 마르게 만든 것이 건정과다. 주로 모과나 유자, 생강, 도라지, 인삼 등을 사용한다.
엿강정은 곡물이나 견과류를 튀겨 조청이나 엿물에 버무려 엉기게 한 뒤 약간 굳었을 때 썬 과자다.
최근 서울 안국동 한국사찰음식 문화체험관에서 진행됐던 ‘산사 향기 가득한 다과 선물 특강’은 큰 인기를 끌었다. 설을 앞두고 마련된 네 차례 강의가 모두 순식간에 마감되면서 ‘피케팅’(피가 튀는 전쟁 같은 티케팅)이라는 말이 붙었다. 맛도 모양도 좋은 한과 3가지를 만든 뒤 선물용으로 포장하는 방법까지 배울 수 있어 입소문이 났다. 메뉴는 호두정과, 곶감단지, 율란이다. 한국사찰음식 문화체험관 부관장 성화 스님의 설명에 따르면, 한나절이면 완성할 수 있는 메뉴들이다. 일반적인 한과류는 절차가 번거롭고 만드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이 음식은 초보자들도 도전해볼 만하다.
한눈에 쏙, 한입에 쏙 레시피 노트
성화 스님의 도움말로 3가지 한과 만드는 법을 소개한다. 재료의 양은 8구짜리 상자 4개를 채울 수 있는 분량으로, 상황에 맞게 조절하면 된다.
■호두정과
재료: 호두 400g, 설탕 120g, 조청 50g, 소금 한 자밤, 물 100㎖, 튀김유
설탕만 넣으면 너무 딱딱해지고 조청만 넣으면 지나치게 끈적거리기 때문에 설탕과 조청을 적절히 섞는 것이 좋다.
1. 호두를 깨끗이 씻어 끓는 물에 3분 정도 데친다. 생기는 거품은 모두 버린다.
2. 물에 헹궈 체에 밭인 뒤 1시간가량 말린다.
3. 물에 설탕, 조청, 소금을 넣고 설탕이 녹을 때까지 끓인다. 전체적으로 거품이 끓어오르면 불을 낮춘다. 설탕을 끓일 젓지 말아야 한다.
4. 호두를 넣고 표면에 윤이 날 때까지 중불로 졸인다. 조청물이 호두에 배어들도록 뒤적이면서 끼얹어준다.
5. 기름을 끓여 호두를 넣고 연한 갈색이 될 때까지 튀긴다. 튀기는 대신 오븐(175도에서 20분 정도)에 구워도 된다. 색깔을 봐가며 시간을 조절하면 된다. 한 번에 너무 많이 넣으면 호두가 들러붙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6. 튀겨진(구워진) 호두를 체에 밭여 기름을 빼고 넓은 쟁반에 펼쳐 하나씩 떼어 식힌다.
■곶감단지
재료: 대추채 100g, 호두정과 150g, 백앙금 200g, 곶감 8개
반건시보다는 좀 더 질긴 건시를 사용하는 것이 속을 채우기 편하다.
1. 대추와 호두정과를 잘게 다진다.
2. ①에 백앙금을 섞어 꾸덕꾸덕하게 만든다.
3. 곶감의 꼭지를 잘라 씨를 제거하고 섞어 놓은 재료를 꼭꼭 눌러 담는다. 곶감이 동그랗고 팽팽하게 펴지도록 모양을 잡아가며 속을 채운다.
4. 냉동실에서 살짝 굳혀 네 쪽으로 자른다.
■율란
재료: 밤 20개, 꿀, 소금, 계핏가루
1. 밤껍질을 깨끗이 벗겨 찜기에 푹 찐다.
2. 뜨거운 상태에서 밤을 으깬 뒤 타공채반에 걸러 매끈하게 만든다.
3. 으깬 밤에 꿀을 조금씩 넣으면서 반죽한다. 촉촉하게 잘 뭉쳐지도록 적정량을 조절한다.
4. ③의 반죽을 밤 모양으로 빚는다.
5. 아래쪽에 계핏가루를 찍어 밤 모양 경계를 만들어준다. 계핏가루 외에 흑임자가루나 카카오가루처럼 색감이 있는 가루를 사용해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