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위조꾼’ 카민스키
프랑스계 유대인 카민스키는 1만여명의 목숨을 구한 레지스탕스
사진작가로 활동하며 나치 치하 유대인을 위해 여권·문서를 위조했다
세계대전 종전 이후에도 부당 징집·반전 운동가를 위한 위조 계속
“위조자로서 나의 삶은 불평등, 인종 차별, 독재에 대한 끊임없는 저항”
지난 9일 프랑스 사진작가 아돌포 카민스키(Adolfo Kaminsky)의 사망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프랑스계 유대인인 그는 사진작가로 활동하면서 1만명이 넘는 유대인을 구해낸 레지스탕스입니다.
그런데 그의 부고가 실린 신문을 읽다가 문득 눈길이 머문 대목이 있습니다. 이처럼 훌륭한 일을 한 사람을 주인공으로 한 책과 다큐멘터리의 제목 두 개 모두 <아돌포 카민스키, 위조꾼의 인생> <위조꾼>이었다는 점이었죠. 즉 그의 레지스탕스 활동의 핵심은 ‘위조’였습니다. 카민스키는 처음부터 위조꾼이었을까? 어떤 마음으로 이런 일을 수십 년간 해왔을까? 등이 궁금해져서 조금 해찰해보기로 했습니다.
■어쩌다, 위조꾼 : <위조꾼의 인생>
“당신은 어떻게 하다가 위조꾼이 되었습니까?” 아돌포 카민스키는 이런 질문을 종종 받았다고 합니다. 그는 이렇게 답했죠. “글쎄요… 뭐, 어쩌다 보니.”
<아돌포 카민스키, 위조꾼의 인생>(이하 <위조꾼의 인생>)은 그의 딸이자 작가인 사라 카민스키가 20여회의 심층 인터뷰를 통해 아버지 아돌포 카민스키의 삶을 자서전 형태로 써낸 책입니다.
1925년 러시아계 유대인 부모에게서 태어난 아돌포 카민스키는 프랑스의 한 시골 마을에서 비교적 평범한 어린 시절을 보냅니다. 가계에 도움이 되기 위해 초등학교만 졸업하고 염색사로 취직했다가 곧 염색의 매력에 푹 빠졌습니다. 그는 에미상을 받은 뉴욕타임스 다큐멘터리 <위조꾼>(2016)에서 “집에서 모든 세탁용 통과 냄비 등을 꺼내와서 염색 연구를 했다”며 “사장은 이 얘길 듣고 크게 웃으며 가장 힘든 과제들을 내주었고, 예를 들면 잉크 얼룩이 묻은 실크 웨딩드레스 같은 것을 떠맡게 됐다”고 회상합니다.
하지만 그의 어머니가 나치에 의해 죽고, 1943년 가족 및 지인들이 수용소에 수감되면서 그의 삶은 크게 변화하기 시작합니다. 아르헨티나 여권 덕에 그의 가족은 3개월 만에 수용소에서 탈출할 수 있었지만 당시 수용소에서 그와 함께 어울렸던 ‘대부분의 나머지 유대인들’은 목숨을 잃었죠. 그는 이후 “목숨을 빚진” 마음으로 살았다고 합니다.
17세 때 위조사로서 우연히 레지스탕스에 합류한 이후 상황이 다급할 땐 잠도 못 잘 정도로 일을 했는데요. 특히 어느 날은 사흘 만에 300명분의 서류를 위조하라는 임무가 떨어집니다. 그는 거의 시체가 될 정도로 사흘 동안 잠을 자지 못하고 위조에 전념합니다. “만약 내가 한 시간 자면, 30명이 죽을 것”이라면서요. 세계대전 종전 이후에도 그는 부당징집, 반전운동가 등을 위한 위조를 지속해갑니다. 그의 목적은 단 하나였습니다. “부당하게 무고한 목숨이 사라지는 것은 반드시 막아야 합니다.”
수많은 유대인이 ‘우연히’ 목숨을 잃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그가 위조꾼이 된 것은 잔혹한 시대가 만들어낸 ‘우연’이었습니다. 만약 이런 우연이 없었다면 그는 화학자로서 성공하거나 존경받는 염색장인 할아버지가 되었겠죠. 많은 죄 없는 목숨들이 사라질 이유도 없었을 테고요.
자신의 삶을 차분하고 객관적인 어조로 덤덤히 서술하고 있는 <위조꾼의 인생>의 마지막 대목에서야 아돌포 카민스키는 조금 자신의 마음을 꺼내 보입니다. 그는 자신의 ‘위조꾼’으로서의 삶을 돌이켜보며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위조자로서 나의 삶은 나치 시대 이후에도 불평등, 분리, 인종차별, 파시즘, 독재에 계속 저항하기 위한 끊임없는 저항이었다. (…) 현실은 손 놓고 바라보고만 있기엔 너무나도 참혹했다. 지난 30년간 내가 가진 기술에 대한 지식, 독창성, 확고한 유토피아적 이상이라는 유일한 무기를 갖고 싸워왔다. 내게 앞날을 바꿀 힘이 있고, 미래에 더 나은 세상이 가능할 것이며 거기에 이바지할 수 있다는 확신 덕분이었다. 아무도 위조자를 필요로 하지 않는 세상은 여전히 나의 꿈이다.”
■어쩌다, 거짓말 : <페르시아어 수업>
야만의 시대에, 어떤 사람들은 살아남기 위해 거짓말을 해야 했습니다. 바딤 피얼만 감독의 영화 <페르시아어 수업> 역시 그러한 ‘살아남기 위한 거짓말’에 대한 작품입니다.
나치에 붙잡힌 유대인 주인공 질은 총살의 위기를 피하고자 “나는 페르시아인”이라고 거짓말을 합니다. 당시 그를 붙잡은 군인들의 상관인 코흐 대위가 페르시아어를 배우고 싶어 했기 때문에 그의 전속 페르시아어 교사가 되죠. 단, 질은 페르시아어를 전혀 몰랐습니다. 이 때문에 이 영화의 주된 테마는 ‘거짓말’이 됩니다. 어떻게 페르시아어를 하나도 모르는 주인공이 대위에게 페르시아어를 가르칠 것인지가 이야기의 중심이죠.
이 영화의 중심 인물은 질과 코흐 대위입니다. 그리고 카민스키의 경우와 비슷하게, 이 둘을 여기까지 데려온 것은 모두 ‘어쩌다 보니’였습니다. 영화에서 코흐 대위는 온전한 ‘악당’으로 묘사되진 않습니다. 그는 지독하게 가난한 집 출신이고, 페르시아어를 배우는 이유는 테헤란에 있는 가족을 만나기 위해서입니다. 부하들에겐 엄격하지만 자신에게 언어를 가르쳐주는 질을 각별히 아끼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나치에 가입하게 된 이유도 ‘어쩌다 보니’입니다. 어느 날 길거리를 걷다가 갈색 셔츠를 입은 당원 청년들이 수다를 떨며 웃고 있는 모습을 보고 그 길로 당에 가입했죠.
한편 주인공인 질의 삶에 대해서는 그의 아버지가 랍비라는 것 외에는 거의 다뤄지지 않는데요. 그 역시 ‘어쩌다 보니’ 유대인으로 태어나, ‘어쩌다 보니’ 잡혀서 죽을 위기에 처하고, ‘어쩌다 보니’ 그 자리에서 코흐 대위와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같은 ‘어쩌다 보니’이지만 누군가에게는 돛을 부풀리는 순풍 같은 것이고, 누군가에게는 거짓말을 해야만 간신히 살아남을 수 있는 파괴적인 함정인 것입니다.
주인공은 수천 개의 거짓 단어를 만들고 외우기 위한 묘안을 떠올립니다. 수감자 명부의 이름을 따서 단어를 만들기로 한 것이죠.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거짓투성이’인 이 ‘가짜 페르시아어’는 훗날 유일한 진실의 증거가 됩니다. 전황이 나빠지자 나치는 수용소들의 학대, 학살 흔적을 말살하기 위해 수용소 사진이나 명부 등을 모조리 불태우는데요. 이는 질이 있던 수용소도 마찬가지였고, 이 때문에 훗날 그 수용소에서 수많은 사람이 죽었다는 증거는 ‘가짜 페르시아어’로만 남은 것입니다. 나치가 증거를 불태우고 무수히 죽어간 ‘이름 없는 자들’을 역사의 무덤에 묻으려 해도 질의 ‘거짓말’만은 진실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습니다.
피얼만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전쟁 중 나치에 의해 수감자 명부가 전부 불타면서 수용소에 있던 많은 사람들이 완전히 잊힌 이들이 되었다”며 “질이 수감자들의 이름을 외국어로 바꾸는 것은 곧 그들을 영원히 기억하고 살아남게 만드는 방식”이라고 말했습니다.
■누가 거짓말을 하는가
무고한 사람들을 학살하는 것이 ‘합법’인 시대, 거짓이 곧 진실처럼 여겨지는 시대에 수많은 사람은 ‘거짓말’ ‘위법’을 해야지만 가까스로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마리아 베테티니는 <거짓말에 관한 작은 역사>에서 ‘거짓말이 만든 역사’에 대해 살핍니다. 역사적으로 거짓말은 커다란 악덕 중 하나로 꼽혀왔지만, 실제 역사에선 권력자에 의한 거짓말이 커다란 역사의 물길을 ‘만든’ 경우가 수없이 많았다는 것입니다. 한 예로 중세 유럽의 유명한 위조문서인 ‘콘스탄티누스 기증장’은 원래 313년에 작성된 것으로 되어 있었는데 알고 보니 754년 정치적인 목적으로 위조한 것이었다고 합니다. 이 문서를 근거로 교황 측 세력이 교회 국가의 탄생을 정당화하려 했던 것이죠.
나아가 저자는 수많은 역사적 비극이 권력자의 ‘거짓말’에 의해 일어났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16세기에 출간된 마르틴 루터의 <유대인과 그들의 거짓말에 관하여>에서 루터는 유대인이란 “진정한 거짓말쟁이이며 잔학한 민족” “다른 민족을 깔보고 원망하는 일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민족”이라고 신랄하게 비판합니다. 이 때문에 루터는 “유대인의 교당과 학교에 불을 지르고, 집을 부수고, 자유롭게 나다닐 권리를 금지하고 추방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죠. 이 책은 훗날 나치가 그들의 선전에 이용했다고 합니다.
다만 저자는 어쩌면 오늘날엔 상황이 더 나쁠 수도 있다고 지적합니다. 굳이 ‘거짓 증오’를 신랄하게 내세우지 않아도, 증오의 이유를 ‘객관적인 진실’인 양 선포하는 경우가 점점 많아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들의 성향이 ‘증오스럽기 때문에 차별해야 한다’고 말하기보다는 객관적으로 이들이 사회적 비용을 초래하거나, 위험하기 때문에 이들을 차별해야 한다고 말하는 식입니다. 저자는 앞선 루터의 책과 약 400년 후 아돌프 히틀러가 쓴 <나의 투쟁>을 비교하며 아래와 같이 말합니다.
“이 책(<나의 투쟁>)이 전하는 메시지는 간단명료하고 솔직하고 오해의 여지가 없다. ‘민족적 세계관은 인종의 평등을 믿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인종들의 상이성과 인종들의 우수한 가치와 열등한 가치를 알고 있다.’ (…) 아마도 지난 세기의 가장 비극적인 기만행위는 진리와 진리라는 이름으로 행사되는 권력의 방조 아래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
이 대목을 읽으며 저는 곰곰 생각했습니다. 이처럼 수많은 폭력, 기만행위가 숫제 ‘진리’ ‘객관’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시대에도, 과연 표면에만 돋보기를 가져다 대는 것이 옳은 것인지에 대해서요.
■맺음말
당대의 진실 혹은 거짓은 후대에 뒤바뀌거나 다른 평가를 받기도 한다
오늘날의 현실에도 해소되지 못한 불의가 있고 수많은 ‘위법’이 존재
하지만 훗날 불의는 정의로, 악은 선으로, 우연은 필연으로 바뀔 수도…
“때론 당대에 ‘진실’로 여겨지는 것이 ‘거짓’보다 더 거짓일 수 있다. 따라서 그 맥락이 중요하다”는 메시지는 <페르시아어 수업> 중 주인공이 샌드위치 반쪽과 페르시아어 책을 바꾸는 장면에서도 엿볼 수 있습니다. 영화 초반에 주인공은 같이 붙잡혀 온 한 남성과 트럭 안에서 샌드위치 반쪽을 책과 바꾸는데, 이 책은 그 남자가 훔친 책이었습니다. 이때 랍비의 아들인 질은 그를 향해 “도둑질하지 말지니라”(제8계명)라는 십계명 구절을 외웁니다. 하지만 막상 이 영화는 십계명 중 “거짓 증거하지 말지니라”(제9계명)를 질이 줄곧 어기는 내용입니다.
오늘 다룬 아돌포 카민스키의 삶, 질의 거짓말 같은 삶은 오늘날 보기엔 ‘영웅’ ‘위대한 생존자’의 삶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당대의 눈으로 봤을 땐 가족에게도 자신의 일을 숨기고 전전긍긍해야 하는 위조꾼이자 언제 들통날지 몰라 조마조마한 거짓말쟁이였습니다. 그럼에도 질은 살아남아 ‘이름 없는 자들’의 이름을 후세에 남기기 위해, 카민스키는 “도저히 두 손 놓고 볼 수 없는 참혹한 현실”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했습니다.
오늘날에도 수많은 ‘위법’이 존재합니다. 그중 훗날 역사에 ‘악’으로 남는 것은 무엇일까요? 두 명의 거짓말쟁이와 위조꾼의 이야기를 보며 문득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영화 <페르시아어 수업> 중 부헨발트 수용소 문 위에 적혀 있던 문구를 인용하며 글을 끝맺겠습니다. “각자의 몫을 제대로 받으리라(Jedem das Seine).”
이 글은 인문교양 뉴스레터 <인스피아>에 실린 내용을 수정한 것입니다. 더 많은 글을 보고 싶으시다면 오른쪽 QR코드를 촬영하거나, 포털에 ‘인스피아’를 검색해서 구독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