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100’ 관심없는 윤 정부?, 신재생에너지 ‘의무공급비율’ 하향

박상영 기자

기업·시민사회 “세계 흐름에 역행”

한화큐셀이 경남 합천댐에 설치한 41MW 규모 수상태양광 발전소. 사진 크게보기

한화큐셀이 경남 합천댐에 설치한 41MW 규모 수상태양광 발전소.

정부가 ‘신재생에너지 의무공급비율(RPS)’을 하향 조정하면서 유관 산업이 위축되고 있다. 기업이 사용 전력의 100%를 재생에너지로 층당하는 ‘RE100’ 달성도 지연될 전망이다. ‘신재생에너지 확대’라는 국제적 흐름을 깬 정부의 역주행을 우려하는 기업과 시민단체들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이들은 “깨끗한 에너지 조달을 중시하는 글로벌 스탠다드를 맞추지 못하면 한국의 수출 경쟁력에도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주장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 13일 ‘신에너지 및 재생에너지 개발·이용·보급 촉진법 시행령 일부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개정안에는 주요 발전사들의 연도별 RPS를 하향 조정하는 내용이 담겼다. 신재생에너지는 수소에너지, 연료전지 등 신에너지와 태양광, 풍력 등 재생에너지를 포괄하는 개념이다.

RPS는 500MW 이상 발전 설비를 보유한 사업자가 전체 발전량의 일정 비율 이상을 신재생에너지를 사용해 전기를 생산하는 제도다. 직접 생산하지 못하면 다른 신재생에너지 발전사업자로부터 공급인증서(REC)를 구매해야 한다. REC는 신재생에너지 발전 설비로 얻는 전기 생산에 대한 인증서다.

RPS 25% 달성 시점 최소 4년 지연

당초 정부는 RPS를 올해 14.5%에서 2024년 17%, 2025년 20.5%, 2026년 이후 25%까지 늘린다는 목표를 세웠다. 그러나 이번 개정안에서 연도별 RPS 목표치를 올해 13%, 2024년 13.5%로 낮췄다. ‘제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통해 신재생에너지 보급 목표치가 낮춰지면서 RPS 25% 달성 시점도 2030년 이후로 미뤄졌다.

제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은 2030년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 목표를 재작년 확정된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보다 8.6%포인트 내린 21.6%로 설정했다. 목표치가 낮아지면서 그에 따른 발전사들의 신재생에너지 의무 발전 비중도 내려간 것이다. 정부는 지금까지 신재생에너지 시장의 외형적 성장에 치중했기 때문에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이번 조치로 한국전력은 부담을 덜게 됐다. 그간 한전 산하 발전사들은 RPS 의무비율을 채우지 못한만큼 신재생에너지 발전사로부터 REC를 구매했다. 발전사들은 RPS 지출 비용을 전력거래소에 청구했고, 한전은 이를 정산해 전기요금에 반영했다. 한전에 따르면 RPS 지출 규모는 2019년 2조475억원, 2020년 2조2470억원, 2021년 3조2649억원으로 매년 큰 폭으로 늘었다. RPS가 매년 상향되는데다 전력도매가격(SMP)도 오르면서 한전의 부담이 가중돼 왔다.

발전사들도 한숨 돌리게 됐다. 지난 16일 기준 1MWh당 REC 평균 가격은 6만1909원으로 올해 한전에서 보전받을 수 있는 상한선인 5만7600원을 웃돌아 구매할 때마다 손해가 발생했다. 지난해 1월 4만원이었던 REC 가격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가파르게 상승해 같은해 8월부터는 거의 6만원을 상회하고 있다.

기업 ‘RE100’ 이행 차질, 신재생 산업 타격 불가피

정부는 중장기적으로 RPS 제도를 폐지하고 경매 제도로 전환할 계획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현행 RPS 제도는 시장원리가 작동하지 않고 비용 절감 유인도 낮다”며 “해외 보급제도 등을 조사해 개편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이 같은 방침으로 신재생에너지 수요가 떨어지면서 태양광·풍력 산업은 타격을 입게 됐다. 1월 첫째 주 1MWh당 REC 가격이 5만7898원으로 5개월 만에 6만원 밑으로 떨어지는 일도 있었다. REC 가격이 내려가면 관련 사업자들의 발전 수익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기후환경단체 ‘플랜 1.5’ 권경락 활동가는 “전 세계가 지구 평균 기온 상승을 1.5도 이내로 제한하는 파리협정 목표 달성을 위해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공격적으로 늘리고 있는 마당에 이를 축소하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고 말했다.

기업들의 RE100 달성에도 차질이 빚어졌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9월15일 ‘신환경 경영전략’을 제시하며 RE100 가입을 선언했다. 글로벌 정보통신기술(ICT) 제조업체 가운데 가장 많은 전력을 사용하는 삼성전자가 RE100 가입을 선언한 것은 의미가 크다. RE100은 자발적 캠페인이지만 글로벌 투자사는 물론 이미 여기에 가입한 기업들이 협력업체들을 상대로 가입을 요구하면서 새로운 무역장벽으로 떠오르고 있다.

RE100 달성을 위해 기업들은 재생에너지를 직접 생산하거나 이를 생산하는 업체와 전력구매계약(PPA)을 체결해야 한다. 그런데 한전이 산하 발전사들의 신재생에너지 생산 비율을 낮추면 기업 입장에서는 그 비중을 늘릴 재간이 없다. 삼성전자는 국내 사업장 사용 전력의 100%를 재생에너지로 전환하는 시점을 2050년으로 잡았는데, 이는 국내 공급 여건이 그만큼 열악하기 때문이다.

국내의 한 제조업체 관계자는 “글로벌 수요처로부터 재생에너지 사용 요구가 점차 늘고 있다”며 “앞으로 RE100 에 제대로 대응하지 않으면 수출 경쟁력에 큰 차질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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