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윤심’이 주저앉힌 나경원, 정당민주주의 후퇴다

나경원 국민의힘 전 의원이 25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굳은 표정으로 질문을 듣고 있다. 박민규 선임기자

나경원 국민의힘 전 의원이 25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굳은 표정으로 질문을 듣고 있다. 박민규 선임기자

나경원 국민의힘 전 의원이 오는 3월8일 열리는 전당대회 당대표 선거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25일 밝혔다. 나 전 의원은 기자회견을 열어 “당 분열과 혼란에 대한 국민적 우려를 막고, 화합과 단결로 돌아올 수 있다면, 저는 용감하게 내려놓겠다”고 했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과 기후환경대사 직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해임한 데 이어 윤핵관들과 친윤계 초선의원들까지 자신을 공격하자 고심하다 출마의 뜻을 접은 것이다. ‘윤심’에 맞지 않는 후보는 누구든 밀어내겠다는 윤 대통령과 윤핵관들의 뜻이 관철된 것으로, 정당민주주의 후퇴로 기록될 수밖에 없다.

나 전 의원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당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솔로몬 재판의 진짜 엄마 심정으로 그만두기로 했다”고 말했다. 두 여인이 서로 자기 아이라고 주장하자 솔로몬 왕이 “아이를 둘로 나누자”고 하자 진짜 엄마가 포기했다는 일화에 빗대면서 당을 걱정해 사퇴한다는 뜻을 강조했다. 나 전 의원은 오로지 당의 혼란과 분열을 막기 위해 스스로 내린 조치라고 했지만, 그동안 언행으로 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는 점은 삼척동자도 안다. 윤 대통령과 윤핵관들에 굴복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중진답지 않은 정당민주주의에 대한 확신 부족과 겉 다르고 속 다른 행태에 실망을 금할 수 없다.

나 전 의원은 불출마 선언은 윤 대통령의 뜻과 일치하지 않으면 여당대표가 될 수 없다는 점만 보여줬다. 윤 대통령의 뜻을 받드는 윤핵관들은 유승민 전 의원 출마를 저지하기 위해 전당대회 룰에서 여론조사 30% 비율을 빼는 당헌개정안을 관철시켰다. 당대표 후보들은 저마다 윤 대통령과 관저 식사를 했느니, 윤 대통령과 몇차례 통화했느니 볼썽사나운 윤심 경쟁만 벌였다. 집권여당대표를 뽑는 선거인데, 국가 현안과 미래 비전을 둘러싼 토론은 보이지 않았다. 경제·안보 위기상황에 주도적으로 대응해야 할 여권의 최정점에서 벌어진 일이라고는 믿기지 않는다. 이래서는 국민의힘이 민심을 최우선으로 받드는 민주정당이 될 수 없다. 이런 식으로 뽑힌 당대표가 민심을 얼마나 대변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윤 대통령과 윤핵관들은 처음부터 대통령의 말을 잘 듣는 대표를 세워야 국정을 안정시키고 내년 총선에서 승리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 때 청와대와 새누리당 친박 인사들은 친위세력을 구축한다며 2016년 총선 공천에 개입했다가 선거에서 참패하고 결국 탄핵까지 당했다. 윤 대통령과 윤핵관들은 나 전 의원의 굴복에 기뻐할 때가 아니다. 과거의 잘못에서 교훈을 얻지 못한 세력은 실패를 반복할 수밖에 없다.


Today`s HOT
러시아 공습, 지하철로 대피한 우크라이나 시민들 프란치스코 교황과 팔레스타인 대통령의 만남 미국의 상점과 재단이 협력한 자원봉사 스페인 왕실의 이탈리아 방문
시리아의 정권 붕괴 이후 이스라엘의 계속되는 공습 철권정치의 끝, 본국으로 돌아가는 시리아 난민들
인도 원주민 문화의 전통이 보이는 혼빌 페스티벌 영국 정부의 토지 상속세 규정에 반대하는 농부들
아티스트들이 선보인 SF 테마 디스플레이 과달루페 성모 축일 축제를 준비하는 순례자들 2034년 월드컵 개최 장소 사우디아라비아, 전시회를 열다. 자원봉사단 후원자 카밀라 여왕이 함께하는 크리스마스 모임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