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경원 국민의힘 전 의원이 오는 3월8일 열리는 전당대회 당대표 선거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25일 밝혔다. 나 전 의원은 기자회견을 열어 “당 분열과 혼란에 대한 국민적 우려를 막고, 화합과 단결로 돌아올 수 있다면, 저는 용감하게 내려놓겠다”고 했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과 기후환경대사 직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해임한 데 이어 윤핵관들과 친윤계 초선의원들까지 자신을 공격하자 고심하다 출마의 뜻을 접은 것이다. ‘윤심’에 맞지 않는 후보는 누구든 밀어내겠다는 윤 대통령과 윤핵관들의 뜻이 관철된 것으로, 정당민주주의 후퇴로 기록될 수밖에 없다.
나 전 의원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당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솔로몬 재판의 진짜 엄마 심정으로 그만두기로 했다”고 말했다. 두 여인이 서로 자기 아이라고 주장하자 솔로몬 왕이 “아이를 둘로 나누자”고 하자 진짜 엄마가 포기했다는 일화에 빗대면서 당을 걱정해 사퇴한다는 뜻을 강조했다. 나 전 의원은 오로지 당의 혼란과 분열을 막기 위해 스스로 내린 조치라고 했지만, 그동안 언행으로 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는 점은 삼척동자도 안다. 윤 대통령과 윤핵관들에 굴복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중진답지 않은 정당민주주의에 대한 확신 부족과 겉 다르고 속 다른 행태에 실망을 금할 수 없다.
나 전 의원은 불출마 선언은 윤 대통령의 뜻과 일치하지 않으면 여당대표가 될 수 없다는 점만 보여줬다. 윤 대통령의 뜻을 받드는 윤핵관들은 유승민 전 의원 출마를 저지하기 위해 전당대회 룰에서 여론조사 30% 비율을 빼는 당헌개정안을 관철시켰다. 당대표 후보들은 저마다 윤 대통령과 관저 식사를 했느니, 윤 대통령과 몇차례 통화했느니 볼썽사나운 윤심 경쟁만 벌였다. 집권여당대표를 뽑는 선거인데, 국가 현안과 미래 비전을 둘러싼 토론은 보이지 않았다. 경제·안보 위기상황에 주도적으로 대응해야 할 여권의 최정점에서 벌어진 일이라고는 믿기지 않는다. 이래서는 국민의힘이 민심을 최우선으로 받드는 민주정당이 될 수 없다. 이런 식으로 뽑힌 당대표가 민심을 얼마나 대변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윤 대통령과 윤핵관들은 처음부터 대통령의 말을 잘 듣는 대표를 세워야 국정을 안정시키고 내년 총선에서 승리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 때 청와대와 새누리당 친박 인사들은 친위세력을 구축한다며 2016년 총선 공천에 개입했다가 선거에서 참패하고 결국 탄핵까지 당했다. 윤 대통령과 윤핵관들은 나 전 의원의 굴복에 기뻐할 때가 아니다. 과거의 잘못에서 교훈을 얻지 못한 세력은 실패를 반복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