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처벌법이 오는 27일 시행 1주년을 맞는다. 하지만 설문조사 결과, 건설노동자 태반은 “현장에 변화가 없다”고 응답했다. 건설업은 산재로 사망하는 노동자가 가장 많은 업종이다. 이곳이 바뀌지 않았다면, 다른 현장은 물을 것도 없다. 그런데도 윤석열 정부는 기존의 중대재해처벌법마저 약화시키려 하고 있다. 산재공화국 오명을 지우려는 노력이 퇴색되어서는 안 된다.
민주노총 전국건설노조가 25일 건설노동자 7500여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정부가 해온 안전 강화는 말뿐이라는 점이 드러난다. 우선 중대재해법 시행 이후에도 달라진 게 없다는 응답이 52%에 달했다. 43%는 안전을 명목으로 ‘감시와 통제가 심해졌다’고 답했다. 폐쇄회로(CC)TV 설치도 노동자 안전이 아니라 노동자에게 ‘안전 책임 떠넘기기’ 목적이라는 응답이 과반에 달했다. 기본 안전수칙과 표준작업 절차서는 무시한 채 작업 속도를 내라고 강요한다는 것이다. 건설노동자 10명 중 6명은 현장의 재해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중대재해법이 제대로 시행될 필요가 있다고 답했다. 중대재해법은 상시 근로자 50인 이상 또는 공사금액 50억원 이상인 사업장에서 노동자가 사망하는 중대재해가 발생할 경우 사업주·경영책임자를 1년 이상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렇게 된 데는 윤석열 정부의 기조 탓이 크다. 정부는 출범 직후부터 줄곧 노골적으로 친기업 성향을 드러내며 법을 제대로 시행하기는커녕 무력화하고 있다. 지난해 중대재해법 적용대상 229건 중 노동부가 검찰에 송치한 것은 30여건, 이 중 재판에 넘겨진 것은 11건에 불과했다. 중대재해법이 이렇게 무디게 적용되니 산재가 줄 리 없다. 게다가 윤석열 정부는 재계의 요구에 맞춰 기업의 책임자들에 대한 처벌 규정을 완화하는 쪽으로 법을 바꾸려 하고 있다. 처벌로 기업인을 겁주기보다는 실질적인 예방이 우선이라는 게 재계의 입장이지만, 노동자의 안전을 제물 삼아 이윤극대화를 추구해온 한국 기업의 고질적인 안전불감증이 과연 자율에 맡겨 해결될 문제인가.
윤석열 정부는 한국이 세계 10대 경제대국을 자임한다. 그런데 중대재해율이 가장 높은 수준이라는 점은 외면하고 있다. 정부는 중대재해법 시행 1년을 맞아 노동자들의 견해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법을 무력화하려는 시도를 중단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