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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보험은 전진해야 한다

입력 2023.01.30 03:00

수정 2023.01.30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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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청년 세대에게는 원래 있는 제도이지만, 필자의 건강보험 자격득실확인서를 떼어보면 1987년부터 가입 내역이 시작된다. 그 이전에는 건강보험에 가입하지 못했던 것이다. 부모가 공무원이나 교사, 대기업 직원인 경우에만 의료보험이 있었고, 그래서 동네에서 누가 의료보험 있는 직장에 다닌다고 하면 다들 부러워했다. 엄연한 불법임에도 다른 사람의 보험증을 빌려 병원에 가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의료보험은 그야말로 ‘특별한’ 혜택이었다.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이야기 같은가? 전 국민 건강보험 시대는 겨우 한 세대 전인 1989년에야 도래했다. 한참 뒤 본인 일터에서 건강보험에 강제 가입한 친구들은 한동안 성토대회를 열었다. “나는 생전 병원에 안 가는데 왜 의료보험료를 ‘따박따박’ 내야 하는지 모르겠어. 들고 싶은 사람만 들게 하면 안 되나?” 이런 경솔한 불만은 몇 년 안 지나 사라졌다.

김명희 노동건강연대 집행위원장·예방의학 전문의

김명희 노동건강연대 집행위원장·예방의학 전문의

건강보험의 보편성은 뜻밖의 곳에서도 위력을 발휘한다. 채용 과정에서 고용 이력을 확인할 때 건강보험자격득실 확인서를, 장학금 신청에 건강보험자격확인서와 보험료 납부증명서를 제출한다. 행정적 측면이든, 혜택 측면이든 건강보험은 대부분의 시민들에게 가장 가깝고 ‘경험치’가 많은 사회적 보호장치이다.

전 국민 건강보험을 달성한 이래로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모든 정부는 건강보험의 보장성 강화를 위해 노력했다. 예컨대 박근혜 정부의 4대 중증질환 보장성 강화 조치, 이전 정부의 문재인케어가 그것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불충분하다. 국제비교가 가능한 가장 최근 연도인 2020년 OECD 자료를 참고하면, 한국의 전체 의료비 중에서 ‘정부 혹은 강제보험’, 즉 건강보험으로 지급된 몫은 62.6%에 불과하다. 통계자료가 있는 38개국 중 한국보다 보장률이 낮은 나라는 그리스와 멕시코뿐이다. 그나마 입원 치료에 대해서는 이 비중이 조금 높아져 69.8%가 된다. 비교 가능한 30개국 중에서 역시 그리스와 멕시코만 우리보다 낮다. 입원의 경우 30개국의 보장률 평균은 90%에 달한다. 국립보건서비스 체계를 갖춘 스웨덴이나 아이슬란드의 99%는 말할 것도 없고, 우리처럼 사회보험 제도를 가진 캐나다와 독일도 각각 92%와 97% 수준이다.

시민들은 나머지 비용을 스스로 부담하거나 별도의 민간보험에 의존해야 한다. 2022년 조사에서 민간보험 가입률은 80%를 넘어섰다. 건강보험의 보장성이 높고 상병수당이 있었더라면 별도로 지출하지 않아도 되는 비용이다.

그런데도 현 정부가 제동을 걸고 나섰다. 이전 정부의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대책을 ‘국민 혈세를 낭비하는 인기영합적 포퓰리즘’이라고 정의했다. ‘지난 5년간 보장성 강화에 20조원 넘게 쏟아부었지만, 정부가 의료 남용과 건강보험 무임승차를 방치하면서 대다수 국민에게 그 부담이 전가’되었다며 건강보험을 ‘정상화’시키겠다고 천명했다. 정부가 제공한 보도자료에는 ‘도덕적 해이’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의료남용 사례들이 친절하게 실려 있다.

진료량이 늘어날수록 의료기관 수익과 의사의 보상이 높아지는 구조, 수익성을 좇아 거의 제한 없이 공급을 늘리는 민간병원 중심의 의료제공체계, 환자가 적절한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안내해주는 일차의료의 부재. 이런 것들이야말로 그동안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건강보험 보장성이 획기적으로 개선되지 못했던 원인이다. 그런데 정부는 의료비가 너무 싸서 환자들이 마구잡이로 이용하는 것이 문제니, 이를 차단하겠단다. 지금도 본인부담금이 이렇게 높은데 말이다. 캐나다 의료보장제도인 ‘메디케어’ 소개 책자에 실린 캐나다 할머니의 인터뷰를 인상 깊게 읽은 적이 있다. 돈이 없어 치료를 받을 수 없었던 비참한 상황을 회고하며 “메디케어가 없던 그 시절로는 결코 돌아갈 수 없다”는 이야기였다. 우리도 과거로 돌아갈 수는 없다. 건강보험의 보장성 강화는 전진, 계속 전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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