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딸 김주애가 지난 8일 인민군 창건 75주년 기념 열병식에 등장해 주민들 앞에 처음 나섰다. 열병식 전날 김 위원장과 함께 기념연회에 참석하고 연이틀 공식석상에 나온 것이다. 김 위원장이 미래세대 안전을 담보한다는 상징적 존재로 평가되지만 한국 정부도 가능성을 더 열어두는 등 후계자 여부 논란이 불붙고 있다.
조선중앙통신·노동신문 등 북한 공식매체가 9일 일제히 공개한 군 창건 75주년 열병식 보도와 사진을 보면 김주애는 김 위원장 손을 잡고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열병식에 참석했다. 김 위원장 배우자인 리설주 여사는 김주애 뒤편에서 따라왔다. 통신은 “김정은 동지께서 사랑하는 자제분과 리설주 여사와 함께 광장에 도착하시였다”고 밝혔다.
김주애는 김 위원장과 당·정·군 핵심간부들이 위치한 주석단에서 열병식을 지켜봤다. 북한 최고지도부 일원인 조용원 노동당 정치국 상무위원과 당 비서들이 “존경하는 자제분을 모시고 귀빈석에 자리잡았다”고 통신은 전했다. 김주애는 주석단에서 김 위원장과 웃으며 대화를 나누고 열병식 장면을 보며 박수를 쳤다. 조선중앙TV의 열병식 녹화중계 영상에는 김주애가 열병식 전 김 위원장의 뺨을 어루만지는 모습이 나왔다.
김주애가 주민들이 참여한 공식석상에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김주애는 그간 화성-17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현장과 미사일 기지 등 주민들이 없는 장소에서의 모습이 공개됐다. 열병식 전날 김 위원장과 함께 군 창건 75주년 기념연회에 참석하고 이틀 연속 모습을 드러냈다.
열병식에 등장한 모습은 김주애의 위상이 더욱 커지고 있음을 실감케 한다. 열병식 전날 기념연회에선 군 장성들을 병풍처럼 뒤에 세워두고 김 위원장과 리 여사 사이에 앉은 모습이 공개되기도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백두 혈통’ 김주애가 김 위원장의 후계자가 아니냐는 논란이 더욱 점화되고 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장은 “김주애에 대한 개인숭배 시작은 김주애가 아직 공식 후계자 지위를 갖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사실상 후계자로 내정돼있음을 시사한다”고 평가했다. 외신들이 열병식 보도에서 김주애의 후계자 가능성을 조명하는 등 국제사회의 관심도 커지고 있다.
정부도 김주애가 후계자일 가능성을 예전보다 열어두는 분위기다. 통일부 당국자는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기자들과 만나 “(김 위원장 딸의) 후계구도 판단에 이른 감은 있지만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과 함께 있는 사진만 공개됐던 것과 달리 이번 열병식에서는 김주애만 찍힌 사진이 나오는 등 김주애를 이전처럼 단순히 선전용 존재로만 보기 어렵다는 기류가 정부 안팎에서 감지된다. 일각에선 “군 창건 75주년 기념연회와 열병식에서 (김주애가) 주인공으로 보일 정도”라는 평가가 나온다.
김주애를 김 위원장의 후계자로 단언하기엔 섣부르다는 평가도 많다. 그간 김주애가 다섯 차례 공개된 장소가 국방·군사와 관련된 곳이라는 주장과 맞닿아 있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통화에서 “후계 수업을 한다면 김 위원장의 현지 지도나 부대 시찰 등 주요 행사에 동반해야 하는데 군 행사에만 마스코트로 등장하는 상황”이라며 “후계구도로 등장하기엔 나이가 너무 어리기도 하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이 김주애를 ‘미래세대 안전 보장’의 상징적 존재로 내세워 경제 성장보다 핵무력 개발을 우선하는 기조를 정당화한다는 시각이다. 가족과 함께하는 모습을 통해 주민을 사랑하며 안정감을 주는 지도자 이미지를 구축하려 한다는 평가가 나온다.
국회 정보위원회 더불어민주당 간사인 윤건영 의원은 이날 MBC 라디오 인터뷰에서 “(국가정보원이 김주애의) 후계자 가능성은 되게 낮게 보는 것 같다”며 “북한 미래세대들을 핵 자산으로 안전하게 책임지는 상징을 보여주고 가족을 동원해 정상국가 이미지를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윤 의원은 “최근 북한 보도를 보면 김주애에 대한 호칭과 군부 인사들의 태도가 달라졌다”며 “좀 두고 봐야 될 지점들이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