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인민군 창건 75주년을 맞아 지난 8일 밤 김정은 국무위원장 일가가 참석한 가운데 대규모 열병식을 개최했다. 이 자리에는 약 10~12개의 화성-17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신형 ICBM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무기 전문가들은 북한이 역대 어느 열병식 때보다 많은 개수의 ICBM을 보여줬다며 특히 고체연료 주입 ICBM으로 추정되는 신형 미사일에 주목했다. 고체연료 주입 미사일은 기존 액체연료 미사일보다 이동성이 높고 신속하게 발사할 수 있어 북한 입장에서 대미 억지력 확보의 관건으로 여겨졌다. 북한은 아직 고체연료 주입 ICBM을 실험한 적이 없는데, 향후 어느 시점에 발사 실험을 할 가능성이 있다. 북한이 지난해 집중 실험한 전술핵무기를 담당하는 ‘전술핵운용부대’도 열병식에 처음 참여해 한국, 일본 등에 대한 메시지도 보냈다. 그 자체로 한국과 미국 등 주변국을 긴장시키기는 충분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별도 연설을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지난해 4월 인민혁명군 창건 90주년 열병식 때와 달라 많은 해석을 낳았다. 김 위원장은 대신 열병식 이틀 전 주재한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회의에서 “전쟁준비태세 엄격 완비”를 언급한 데 이어 딸 김주애와 함께 기념연회에 참석해 군 장성들의 사기를 북돋우는 행보를 보였다. 내부 정비에 주력하는 모습이다. 그런 가운데 정보 당국이 북한 내 식량문제가 있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제2의 고난의 행군이 올 것이라는 분석이 있었는데 현실화하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실제로 북한은 이번 열병식에 앞서 이달 하순 ‘농사문제와 농업발전의 전망목표’ 토의를 위한 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 개최를 예고했다. 북한의 지난해 식량작물 생산량은 451만t으로 전년도에 비해 18만t가량 떨어졌다. 김정은 집권 당시에 비해 식량생산이 줄어들었다. 수입 물량을 고려하더라도 만성적 영양 부족 상태가 이어지고 있다고 보는 게 합리적이다.
북한은 지난해와 달리 올해 40일 동안 이렇다 할 도발적 행동을 하지 않았다. 북한 자체 시간표에 따른 완급 조절이겠지만, 한반도 긴장 고조를 바라지 않는 우리 입장에서는 이 기간을 기회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는 북한 문제를 대외정책 우선순위에 놓지 않고 있다. 한반도 문제의 가장 직접적 당사자인 한국 정부가 적극적으로 아이디어를 내고 대화 국면을 만들어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