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 부장판사가 김명수 대법원장의 대법관 후보 추천 개입 의혹을 제기했다. 김 대법원장이 법원행정처 판사를 통해 자신의 선호 후보를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추천위)에 제시했다는 것이다. 대법관은 대법원장 제청으로 국회 동의를 거쳐 대통령이 임명한다. 대법관을 제청하는 것은 대법원장의 권한이지만 3배수를 뽑는 대법관 후보 추천 과정에는 대법원장이 개입할 수 없다.
송승용 서울동부지법 부장판사는 최근 법원 내부통신망에 올린 ‘대법원장은 헌법재판소 재판관 지명권을 적정하게 행사해야 한다’는 제목의 글에서 2020년 9월 퇴임하는 권순일 대법관 후임 대법관 후보 추천을 맡은 추천위원장으로부터 ‘법원행정처 측에서 특정 후보를 거론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밝혔다. 특정 후보는 이흥구 당시 부산고법 부장판사로 그는 실제로 추천위 추천과 대법원장 제청을 거쳐 대법관에 임명됐다. 송 부장판사가 전하는 정황은 구체적이다. 당시 추천위원장은 “(법원행정처) 인사총괄심의관이 모 신문기자의 칼럼을 뽑아와서 피천거 후보 중 특정 후보에 대해 ‘이분을 눈여겨보실 만합니다’라는 취지의 말을 하고 갔다”고 했다고 한다. 송 부장판사는 “만약 인사총괄심의관의 위 행동에 대법원장의 의중이 반영된 것이라면 대법원장은 스스로 약속한 제시권 폐지를 뒤집고 간접적이고 음성적이면서도 보다 교묘한 방식으로 추천위원장에게 제시권을 행사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때까지는 대법원장이 대법관이나 헌법재판관 후보를 제시하는 것이 관례였다. 그러나 김 대법원장은 추천위가 거수기로 전락하는 것을 막겠다며 ‘대법원장의 후보 제시권’을 폐지했다. 송 부장판사의 폭로가 사실이라면 김 대법원장은 그동안 말과 행동이 달랐던 셈이다. ‘김명수 사법부’ 체제에서 이뤄진 대법관 및 헌법재판관 추천의 독립성과 신뢰성도 타격을 받게 된다. 송 부장판사가 2년이나 지난 일을 지금에 와서야 밝히는 것이 다소 의아하다. 모종의 의도가 개입돼 있는 게 아니냐는 의심이 제기될 수 있는 상황이다. 그렇다 해도 “통상적인 업무였다”는 안희길 인사총괄심의관의 해명과 사과로는 납득이 가지 않는다. 논란이 확산되고 사법부에 대한 불신이 커지기 전에 김 대법원장이 나서 진솔하게 설명하는 게 옳다. 김 대법원장은 3월과 4월 퇴임하는 이선애·이석태 헌법재판관의 후임 재판관 지명권 행사를 목전에 두고 있다. 오는 7월에는 조재연·박정화 대법관이 퇴임한다. 김 대법원장의 향후 헌법재판관과 대법관 지명·제청 과정에 의혹이 없도록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