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과의 싸움에서 이긴 사람들.’
지진 발생 후 통상 72시간으로 여겨지는 골든타임을 3배 가량 버틴 생환자들 소식이 이어지고 있다. 지진 발생 열흘째인 15일(현지시간) 222시간 만에 40대 여성이 구조되기도 했다. 튀르키예 현지 언론들은 생존자들을 ‘승자’로 부르며 구조작업이 계속되고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기적은 잠시 뿐, 이날 튀르키예·시리아 사망자는 4만1000명을 넘어섰다. 지금까지 집계된 수치만으로도 이번 대지진은 튀르키예 역사상 최악의 참사로 기록됐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이번 지진을 “유럽에서 일어난 세기의 자연재해”라고 표현했다.
튀르키예 국영 아나돌루 통신에 따르면, 이날 카라만마라슈의 건물 잔해에서 지진 발생 222시간만에 42세 여성이 구조됐다. 보온용 담요에 덮인 생존자의 정확한 건강 상태는 확인되지 않았다. 구조대원들은 생존자를 구급차에 태운 뒤 눈물을 흘리며 서로를 격려하고 축하했다.
이에 앞서 아디야만의 7층짜리 아파트 건물 잔해에서는 77세 여성인 파트마 귄고르가 구조됐다. 지진 발생 212시간 만이었다. 귄고르가 무사히 구조돼 병원으로 이송되자 주변에서 기다리던 그의 친척들은 구조대를 껴안으며 환호했다.
Adıyaman'da Merve Apartmanı'nın enkazından 77 yasındaki Fatma Gungor, depremin 212. saatinde kurtarıldı https://t.co/Cm4gkhGrqv pic.twitter.com/rqLTCJhsjE
— ANADOLU AJANSI (@anadoluajansi) February 14, 2023
아나돌루 통신은 ‘세기의 재앙’으로 불리는 이번 지진에서 기적은 이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지진 발생 141~212시간이 지난 후에도 최소 64명이 잔해 속에서 구조됐다고 밝혔다.
튀르키예 안타키아에서도 14일 지진 발생 208시간 만에 65세 시리아 남성과 어린 소녀가 무너진 건물 잔해 속에서 구조됐다.

튀르키예·시리아 대지진 9일째인 14일(현지시간) 튀르키예 남부 하타이의 안타키아의 지진 피해지역에서 한 남성이 건물 잔해에서 아버지를 찾은 후 오열 하고 있다. 안타키아(튀르키예)|문재원 기자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기적이 일어날 확률은 낮아지고 있다. 이날 튀르키예·시리아 대지진의 사망자 수는 4만1000명을 넘어섰다고 워싱턴포스트(WP)는 추산했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이 발표한 튀르키예 공식 사망자 수 집계(3만5418명)에 시리아 국영 사나통신이 전한 시리아 정부 통제지역 사망자 수(1414명), 유엔인도주의업무조정국(UNOCHA)이 발표한 시리아 반군 지역 사망자 수(4400명)를 더한 수치다.
지금까지 집계된 사망자 규모만으로도 이번 대지진은 1939년 에르진잔 대지진(3만3000명)을 뛰어넘어 튀르키예 역사상 최악의 참사로 기록되게 됐다. 한스 클루게 WHO 유럽사무소 국장은 이번 지진에 대해 “유럽지역에서 발생한 100년 내 최악의 자연재해”라고 밝혔다. 부상자·실종자 수가 많아 사망자 규모는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튀르키예·시리아 대지진 8일째인 13일(현지시간) 튀르키예 남부 카라만라슈의 남쪽 교외의 한 공터에 마련된 지진 희생자 매장지에서 한 유족이 나무 묘비에 비닐을 씌우고 있다. 카라만라슈(튀르키예)|문재원 기자
게다가 시리아는 오랜 기간 내전으로 정확한 통계 작성이 어려워 사망자 수가 아직 제대로 집계되지 않았을 가능성도 크다. WHO 유럽사무소는 이날 브리핑에서 시리아의 사망자 수에 대해 “국경을 따라 약 5000명이 사망했다”고 추정했다.
시리아 민간구조대 ‘하얀 헬멧’은 내전 때보다 더 힘든 상황이라고 호소했다. 하얀 헬멧 미디어센터 책임자인 이스마일 압달라는 “내전 중 날아드는 폭격은 재앙 수준이어도 한번에 피해를 입히는 장소가 20곳을 넘기지 않았지만 현재 지진으로 동시에 100곳 이상이 파괴된 상황”이라며 “국제사회는 지진 발생 이후 일주일 동안 약간의 구호자금을 보냈을 뿐 중장비는 한 대도 보내지 않아 손으로 일일이 잔해를 파헤쳐야 했다”고 로이터통신에 밝혔다.
하얀 헬맷 봉사자인 살람 알마흐무드(24)는 알자지라에 “지진 발생 첫 날 억수로 쏟아지는 빗속에서 맨손으로 잔해를 파내려갔다”면서 “우리는 원조, 식량, 물을 원한 것이 아니라 잔해 속에 갇힌 사람들을 구할 수단을 원했다”고 했다.
시리아 반군 장악 지역 주민 왈리드 이브라힘은 이번 지진으로 20명 이상의 가족을 잃었다. 그는 로이터통신에 “사람들이 콘트리트 밑에서 ‘꺼내줘’라고 비명을 지르는데 우리는 장비가 없어 맨손으로 잔해를 치웠다”며 “결국 우리는 사람들을 살릴 수 없었다”고 말했다.
화이트헬멧의 래드 살레는 “사람들을 살리는데 중장비가 필수적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중장비가 이 지역 재건을 위해 사용될까 봐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은 중장비 지원을 허락하지 않았다”면서 “내전 기간 10년을 통틀어 가장 힘든 일주일이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