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 4사, 취약층 난방비 360억 기부
15년 전 고유가 땐 1000억 기금 조성

14일 강원 춘천시 내 한 주유소. 연합뉴스.
지난해 막대한 수익을 냈음에도 사회공헌에 미온적으로 나선 은행처럼 정유업계도 난방비 지원에 소극적이란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앞서 2008년 고유가로 실적이 껑충 뛰었을 당시, 정유업계는 취약계층 난방비 지원금으로 총 1000억원의 기금을 조성하겠다며 여론 달래기에 나선 바 있다. 이에 비해 지난해 사상 최대실적에도 이번에는 300억원대 기부금에 그친 모습이다.
16일 정유업계에 따르면 정유 4사가 올해 취약계층을 위해 최근까지 기부키로 한 난방비 규모는 360억원이다. 지난 9일 현대오일뱅크와 에쓰오일(S-OIL)이 에너지 취약계층 난방비 지원에 각각 100억원, 10억원 기부 발표를 시작으로 10일 SK에너지와 GS칼텍스가 각각 150억원, 100억원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해 정유사가 사상 최대실적을 낸 것을 고려하면 이전 사회공헌 활동에 비해 오히려 후퇴한 규모다. 이명박 정부 초기인 2008년 고유가로 국민 부담이 늘고 있는 상황에서 정유업체들만 사상 최대실적을 기록하는 등 호황을 누린다는 지적이 제기되자, 정유사들은 3년간 1000억원 규모의 특별기금을 조성한다고 발표했다.
최근 정유사들이 난방비 기부를 통해 여론 달래기에 나서고 있지만, 난방비 폭등과 맞물려 정유사가 거둔 초과 수익에 세금을 물려야 한다는 이른바 ‘횡재세’ 도입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여전하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외부적 요인으로 지난해 정유 4사가 15조원에 가까운 영업이익을 내 역대급 ‘배당·성과급 잔치’에 나서고 있어서다.
대통령실은 ‘은행 돈잔치’에 대해서는 대책 마련을 주문했지만, 정작 정유업계에는 미온적으로 나서고 있다. ‘사기업에게 고통 분담을 요구한다는 차원에서 야권의 횡재세 요구와 다르지 않다’는 비판에 대해 대통령실은 지난 13일 “금융(기관)은 국가의 인허가를 받아 사실상 과점으로 유지되고 있고, 공공적 성격이 있다”고 설명했다. 더불어민주당 등 야권을 중심으로 정유사의 초과이익에 대해 횡재세를 부과하자는 주장에 정면으로 반박한 것이다.
그러나 정유업도 일정 조건을 갖춰 당국 승인을 받아야 하는 금융업처럼 진입 문턱이 높고, 정유 4사가 과점체제를 유지하고 있어 본질적으로 큰 차이가 없다. 휘발유·경유 가격에 정부가 직간접적으로 통제하는 점도 유사하다. 정부는 지난해 전국 주유소 기름값이 연일 고공행진을 이어가자, 정부가 유류세 인하분이 시장에 제때 반영됐는지 합동 점검에 나섰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정유 4사의 석유제품 출고 가격에 대해 정유사들로부터 매일 보고를 받는 것으로 전해졌다.
나아가 정부는 정유사의 휘발유·경유 등 판매가격을 대리점·주유소 등 판매 대상과 지역별로 구분해 공개하는 방안까지 추진 중이다. 정유업계는 “영업비밀 침해”라고 반발하고 있다. 산업부는 “유류세 인하분이 석유정제업자(정유사), 주유소 등 업계 마진으로 일부 흡수됐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고, 국민들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는 상황”이라며 개입 의지를 고수하고 있다.
일반 세금 형태인 ‘법인세 중과’나 ‘횡재세 신설’보다 특정 업종에 부과할 수 있는 ‘부담금’이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민주당은 석유 수급과 가격 안정을 위해 국내외 가격 차액을 넘지 않는 선에서 징수할 수 있다는 ‘석유 및 석유대체연료 사업법’ 제18조를 근거로 ‘에너지 복지’ 등에 쓸 부담금 부과를 추진하고 있다.
우석진 명지대 교수는 “법인세나 횡재세는 형평성 논란이 제기될 수 있지만, 부담금은 지금도 특정 업종에만 부과하고 있다”며 “정부 인허가를 받아야만 시장에 진출할 수 있는 금융이나 정유업종의 경우, 부담금 신설 방안도 고려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정유업계에서는 부담금 신설이 석유제품 가격 상승으로 이어져 소비자 부담이 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석유협회 관계자는 “부담금 신설로 소비자 가격이 오를 수 있다”며 “정유사의 수익을 추가로 걷는다면 신규 투자도 위축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