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가족부가 변화한 사회상을 반영하겠다며 새로운 국가성평등지수 지표(측정 방식)를 개발해 놓고선 별다른 설명 없이 기존 지표로 지수를 발표했다. 개편한 지표로 성평등지수를 측정했더니 기존 지표로 산출한 것보다 점수가 15점 이상 떨어진 결과가 나왔다. 새 지표를 반영한 지수가 하락했다고 해서 성평등 수준 자체가 하락한 것도 아닌데 오해를 받을 것을 의식해 기존 지표를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결과적으로 3년의 연구 끝에 개발한 새 지표는 사용도 못하는 처지가 됐다. 정부는 국가성평등지수와 연동되는 지역성평등지수도 개편해 지난해 17개 시·도에서 설명회를 열었는데 지역에서는 성평등 정책 연구와 수립에 혼란을 우려하고 있다.
16일 여가부가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소속 유정주 의원실에 제출한 ‘2022 국가성평등보고서 요약본’을 보면 여가부는 기존 국가성평등지수 지표를 바탕으로 완성된 보고서를 준비 중이다. 지난달 26일 여가부는 기존 지표를 바탕으로 “‘2021년 국가성평등지수’는 75.4점으로 2020년 대비 0.5점 상승했고, ‘지역성평등지수’는 77.1점으로 0.3점 상승했다”고 발표했다. 여가부는 양성평등기본법에 따라 2010년부터 매년 국가·지역성평등지수를 발표한다.
📌한국 성평등 75.4점…‘여성 의사결정’은 여전히 낙제점
정부는 기존 국가성평등지수가 지난 10여년간 변화된 사회상을 반영하지 못한다고 보고 2019년부터 개편을 추진했다. 3년간 연구가 이뤄졌고 2021년 국가성평등지수 검토위원회에서 통계의 적절성 등을 살펴본 후 2021년 12월 개편안을 확정했다. 지난해 2월에는 새로운 국가성평등지수 지표를 국무총리 소속 양성평등위원회에서 심의·확정했다. 국가성평등지수는 양성평등기본법에 따른 양성평등위 심의 사항이기 때문이다. 당시 정부는 “개편된 지표는 ‘2021년 국가성평등지수’ 발표 때부터 적용할 예정”이라고 일정표를 밝히기까지 했다.
국가성평등지수 하락…‘오해 우려’로 기존 지수 발표로 가닥
기존 지표에는 셋째아 출생 성비 등이 포함돼 있어 변화된 사회상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을 받았다. 이에 따라 시의성이 떨어지고 성평등 관련성이 낮은 기존 지표의 항목은 삭제하고 기존의 8개 분야를 7개 영역으로 개편, 22개 항목 체계로 다시 구성했다. 성역할 고정관념과 노동시장 성평등 태도 항목이 담긴 ‘젠더의식’ 영역이 추가됐고 장관 비율, 경력단절 여성 비율, 고등교육기관 취학률 등 15개의 신규 항목이 포함됐다. 젠더의식 영역의 가중치는 0.1824로 가장 높다.
새로운 지표로 실제 국가성평등지수를 산출했더니 기존 지표로 나온 지수(75.4점)보다 15점 이상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같은 결과는 지난해 말에 여가부에도 보고됐다. 그러나 여가부는 기존 지표로 산출한 국가성평등지수 측정결과를 발표하기로 결정했다. 지표 구성이 달라졌기 때문에 두 지수를 평면적으로 비교할 수 있는 것은 아닌데, 여가부는 국가 성평등 수준이 떨어졌다는 오해를 할까 우려한 것으로 보인다. 여가부는 “측정방법의 적절성 추가 검증, 통계 샘플 규모의 신뢰성 검증, 지역별 통계 부재에 따른 대안 검토 등 세부적인 지표 검증이 필요해 기존지수로 측정한 결과만 발표하기로 한 것”이라고 했다.
연구에 참여한 연구위원들은 지난해 말 장관 보고 후 기존 지수 발표로 방향이 틀어졌다 의심하고 있다. 3년간 연구 끝에 확정된 새 지표로 측정한 결과가 2개월여 만에 통계 신뢰성 등을 이유로 사용이 배제된 것이 이해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여가부는 ‘2021년 국가성평등지수’를 발표하기 전인 지난 1월 열린 양성평등위원회에 “성평등 수준의 정확한 파악과 실질적 활용도 제고를 위해 개편 지표의 통계품질 등에 대한 추가 검증을 실시하는 등 개편 성평등지수를 수정·보완하겠다”고 보고했다.
지역성평등지수 개편한다고 설명회까지 하더니 ‘혼란’
지역의 연구위원들은 혼란스러운 분위기다. 지역에서도 새로운 지표를 바탕으로 관련 연구를 진행했는데, 별다른 설명도 없이 개편 전 지표가 반영됐기 때문이다. 경향신문이 입수한 ‘2022년도 지역성평등지수 지역 설명회’ 문건들을 보면 여가부는 지난해 9월14일과 15일 이틀에 걸쳐 17개 시·도를 대상으로 개편안에 대한 지역 설명회를 열었다. 각 시도별로 지자체 담당 공무원과 연구기관 담당자 등 2명씩 참석했다.
설명회 개최 이후 일부 지역에선 개편된 지표를 기준으로 지역성평등지수를 전망하는 연구를 진행했다. 한 연구위원은 “내년부터 개편된다고 발표하고 설명회까지 했는데 변경되지 않은 측정결과가 나와 당황스러웠다”고 말했다. 또 다른 지역의 한 연구위원은 “대비할 필요가 있다고 보고 지난해 양성평등정책 5개년 계획을 수립하면서 연구를 했는데 이번 성평등지수 발표에 대해 아무런 정보도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번 개편 연구 작업에는 수십여명의 지역 연구위원도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연구위원들은 “과거의 지표체계로 성평등지수가 발표된 이유를 명확히 밝혀야 한다”며 “개편에 참여한 연구자와 전문가의 긴 시간과 노력은 어디로 사라진 것인지 참담한 심정”이라고 했다.
▼ 임아영 소통·젠더 데스크 layknt@khan.kr, 유선희 기자 yu@kha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