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대지진 피해자 돌본 경험으로 쓴 ‘재난 이후’의 고통을 치유하는 길

김지원 기자
[책과 삶]일본 대지진 피해자 돌본 경험으로 쓴 ‘재난 이후’의 고통을 치유하는 길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일
안 가쓰마사 지음·박소영 옮김
후마니타스|320쪽|1만8000원

1995년 일본에서 발생한 한신·아와지 대지진은 무려 6400여명의 목숨을 앗아가 일본 전역을 큰 충격에 빠트렸다.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일>은 고베대학병원 신경정신과에 근무하던 의사 안 가쓰마사가 지진 이후 약 3년간 “재난의 안”에서 직접 이재민들의 상처를 돌본 기록이다.

이 책이 독특한 부분은 재난의 순간보다도 ‘재난 이후’에 주목하고 있다는 점이다. 통상 사람들은 재난의 순간, 무너진 교각과 빌딩의 장면에 주목하곤 하지만, 저자는 정말 중요한 것은 그런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는 “집이 무너졌을 때의 충격은 지금도 여전하다”며 다만 “지난 3년의 세월을 살아내는 것이 더 힘들었을 뿐”이라고 한다. 재난 이후 문제는 더욱 복잡해지고 만성화된다. 예를 들어 이 책은 지진 이후 가정 폭력, 학교 내 괴롭힘 등이 늘어난 장면을 다룬다. 과연 이런 문제들은 지진 때문인가, 아니면 원래 있던 문제가 지진을 통해 증폭된 것인가. 오히려 재난의 순간엔 살아남기 위해 사람들이 힘을 모은다. 이런 현상을 재난심리학에선 ‘재난 허니문’이라고도 말한다. 하지만 재난이 휩쓸고 간 뒤, 세상은 이재민들만 두고 돌아가고 이들은 가난하고 이해되지 못한 채 뒤에 남는다.

이 때문에 저자는 ‘치료’ 대신 ‘치유’에 집중한다. 치료는 전문가 의사에 의해 단번에 끝나는 일이다. 재난의 마음 치료는 그런 식으로 주사 한 대 맞고 끝나는 간단한 수준의 일이 아니다. 의사뿐 아니라 사회의 넓은 지지가 필요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그 지난한 ‘재난 이후’를 이재민이 스스로 버텨 살아갈 수 있도록 의지를 북돋는 ‘치유’의 과정이다.

출간된 지 약 30년이나 흐른 책이지만 재난의 내부자로서 재난 이후를 간절하게 써낸 이 책은 오늘날에도 울림을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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