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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값 300억’ 소셜벤처 대표, 학력 부풀리기 의혹···“이면엔 학벌중시 현실”

이유진 기자
학벌 관련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학벌 관련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세계 최대 규모 ‘국제전자제품박람회(CES) 2023’에서 최고혁신상을 수상한 정보기술(IT) 소셜벤처 ‘닷’의 성모 공동대표(33)가 학력 부풀리기 의혹에 휩싸였다. 그간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미국 유타주 솔트레이크시티에 있는 유타대학교 출신이라고 밝혀왔으나, 실은 명지대학교 재학 중 1년 교환학생 경험을 한 게 전부로 파악됐다. 업계에서는 “해외대나 명문대 출신을 우대하는 풍조가 만들어낸 슬픈 현실”이라는 반응이 나온다.

2015년 4월 설립된 닷은 이달 초까지 총 300억원 규모의 투자를 유치했다. 점자 스마트워치인 ‘닷 워치’를 개발했고, 올해는 시각장애인용 촉각 디스플레이 ‘닷 패드’로 CES에서 혁신상 수상 기업 중 하나로 선정됐다. 지난 2일에는 윤석열 대통령이 주재한 ‘CES 디지털 기술혁신 기업인과의 오찬 간담회’에 초대되기도 했다.

닷은 ‘해외 명문대 출신이 합심해 만든 회사’로 알려져 있다. 2017년부터 2021년까지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성 대표는 유타대, 김모 공동대표는 미국 워싱턴대를 각각 중퇴했다고 소개해왔다. 중소벤처기업부도 2019년 6월15일 배포한 언론 보도자료에서 성 대표의 학력을 ‘유타대 컴퓨터공학과’로 표기했다. 문재인 당시 대통령의 스웨덴 국빈방문을 계기로 양국간 교류행사에 참석할 한국 유망 소셜벤처 6개사를 소개하는 자료였다. 중기부 관계자는 통화에서 “통상 (기업) 이력은 업체에서 전달받아 제공한다”고 했다.

하지만 성 대표의 이 같은 학력은 사실과 달랐다. 성 대표는 명지대 컴퓨터공학과 재학 중 명지대 국제교류처가 제공하는 ‘SAF(Study Abroad Foundation)’ 프로그램으로 2013년 가을학기부터 미국 유타대에 1년간 교환학생을 다녀왔다. 2014년 7월 귀국해 닷을 창업한 후 복학하지 않아 명지대에서 제적됐다.

성 대표는 22일 “의도적으로 속이려고 한 것은 아니지만 (학력이) 와전된 측면이 있다”고 했다. 그는 “마케팅 측면으로 학력을 활용하고자 하는 욕심은 전혀 없었다”며 “교환학생 신분이라고 해도 캠퍼스에서 공부를 한 것은 맞기 때문에 학력을 위조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이어 “일부 이력에 유타대만 기재됐을 수는 있지만, 명지대·유타대를 학력란에 같이 써서 제출한 적도 있다”며 “인생을 걸고 시각장애인의 삶을 바꾸려 했던 진심을 알아달라”고 했다. 성 대표는 ‘유타대 출신’으로 소개된 과거 인터뷰 기사를 쓴 언론사에 연락해 정정을 요청키로 했다.

스타트업·벤처업계에서는 ‘학력·이력 부풀리기’ 사례가 드물지 않다는 반응이 나온다. 특히 창업 초기에는 기업의 성과보다 대표 개인의 역량·이력을 통해 기업이 알려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학력·이력을 부풀릴 유인이 크다는 것이다. 투자사들이 이력 검증을 별도로 하지 않는 점도 문제로 지목된다. 2019년 7월에는 정부 예비유니콘 기업으로 선정됐던 메쉬코리아 유정범 대표이사가 학력 위조로 논란이 됐다. 2018년 4월에는 P2P금융업체 미드레이트 이승행 대표가 학력 허위 기재 의혹이 불거져 사임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해외 인맥과 창업 서사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만큼 ‘해외대 출신’이란 이력이 투자 유치와 사업 확장에 미친 영향이 적지 않을 것”이라며 “스타트업 대표 학력 논란은 도덕성 등 신뢰기반을 무너뜨리기 때문에 가벼운 문제가 아니”라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검증 시스템의 부재도 문제이지만 투자사가 대표 이력을 검증하는 것은 학벌주의 고착화 등 다른 문제를 야기할 우려가 있어 신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 벤처캐피털(VC) 관계자는 “허위 경력 논란이 끊이지 않는 이면엔 국내 대학 졸업장만으로 인정받기 어려운 청년 창업가들의 슬픈 현실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글로벌 로컬, 초격차 등이 업계 트렌드로 떠오르면서 ‘누가 세계시장에 나갈 수 있느냐’를 보기 시작했다”며 “언론에서도 기업이 가진 기술이나 가치보다 해외 명문대 출신 대표에 주목한다. 김봉진(배달의 민족), 이수진(야놀자)과 같은 이른바 ‘비명문대’ 출신 창업가의 등장이 더는 어렵다는 말이 나온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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