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너스 하이’란 말이 있다. 장거리 달리기를 했을 때 느낄 수 있는 도취감을 말한다. 팔과 다리가 가벼워지고 리듬감이 생겨 피로를 잊고 계속 달릴 수 있는 힘이 나온다고 한다.
백승찬 문화부장
수년째 달리기를 해왔지만 난 한 번도 러너스 하이를 경험한 적이 없다. 첫발을 뗀 순간부터 달리기를 멈출 때까지 줄곧 고통이다. 숨이 차오르고 발목과 무릎이 아프다. 조금 무리하게 달린 날이면 통증이 며칠간 이어지기도 한다.
이대로 무릎이 고장나는 거 아닐까 두려워하다가도 통증이 가라앉으면 다시 뛰었다. 비나 눈이 오면 원망스럽게 하늘을 바라봤다. 혹한이 이어진 이번 겨울에는 조금이라도 기온이 오르는 날만 기다렸다.
러너스 하이를 느낀 적도 없으면서, 매번 힘들어하면서 왜 달렸을까. 잘게 이어지는 내 발자국 소리가 좋았고, 1~2㎞쯤 달린 뒤 땀이 서서히 배어나는 순간이 좋았고, 마구 들이마시는 공기가 좋았고, 두 다리만으로 밟아냈던 길들이 좋았을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목표로 삼았던 거리를 달린 뒤, 아무도 뛰라고 강요하지 않았지만 스스로 몰아세웠던 그만큼을 달린 뒤 땀을 식히며 집으로 돌아갈 때 느끼던 뿌듯함도 있다.
넷플릭스 예능 <피지컬 : 100>의 마지막 회인 9화가 21일 공개됐다. 100명 중 최후까지 남은 5명이 1등이 되기 위해 겨뤘다. 최종 우승자는 마지막까지 겨뤘던 상대의 석고 토르소를 망치로 부수면서 승리의 세리머니를 했다. 패자는 자신의 분신 같은 토르소가 우승자에 의해 파괴되는 모습을 눈앞에서 목격했다. 아쉬움을 감출 수 없지만 최선을 다했다는 점에 만족하며, 우승자에게 박수를 보낸다고 했다.
오직 자신 육체의 한계 시험
<피지컬 : 100> 마지막 회의 게임들은 예상보다 우직했다. 별다른 전략이나 테크닉이 필요하지 않았다. 더 센 힘으로 상대를 끌어오거나, 더 빨리 사각판을 뒤집거나, 오랫동안 지치지 않고 왕복달리기를 하거나, 무거운 밧줄이 다 풀릴 때까지 당겨야 했다. 성장기 이후 대부분의 시간을 자신의 신체 능력을 발달시키는 데 활용해온 참가자들은 바로 그 능력이 완전히 바닥날 때까지 게임에 임했다. 여느 성인 남성의 허벅지만 한 팔뚝을 가진 남자는 경기가 끝나자 가쁜 숨을 몰아쉬며 고목처럼 쓰러졌다. 초반에는 기세 좋게 밧줄을 당겼으나 시간이 흐르며 힘이 빠진 남자는 마비되다시피한 팔뚝을 움직여보려 안간힘을 썼다.
패배가 분명한 상황에서도 포기하는 이는 없었다. 이미 상대는 중요하지 않았다. 우승상금 3억원이나 그에 따르는 인기, 명예도 나중 일이었다. 이들은 오직 자기 육체의 한계를 시험하기 위해 움직이는 사람들이었다. 힘에 부치다 보니 자꾸 욕설을 내뱉는 사람도 있었다. 방송에 욕설이 나오는 건 좋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이번에는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인 듯했다.
가끔씩 하는 달리기로 육체의 한계를 시험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심장이 주체할 수 없이 뛰거나 다리가 후들거릴 때까지 달려본 적도 없다. 그런 상황이 오기 전에 스스로를 멈춘다. 다쳐서 회복하지 못할 상황을 걱정하기 때문이다. 아주 조금씩 천천히 신체가 고통에 적응하도록, 혹은 나이 먹는 것보다 빨리 퇴화하지 않도록 단련할 뿐이다.
그래서 난 <피지컬 : 100>의 참가자들이 영웅처럼 느껴졌다. 자신의 한계를 잊고, 부상을 두려워하지 않고, 패배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지 않은 채 대결하는 사람들이었다. <슬램덩크>의 강백호는 막강한 상대 산왕공고와의 경기 막판 부상을 당한다. 무리했다가는 자칫 선수생활이 끝날 수도 있다. 강백호는 자신을 벤치로 불러들이려는 안 감독에게 이렇게 말하고는 다시 코트로 나간다. “영감님의 영광의 시대는 언제였죠? 난 지금입니다.”
자신의 몸에 말을 걸어보자
<피지컬 : 100> 최종 우승자가 기획의도대로 ‘완벽한 피지컬’이었다고 단언하긴 어렵다. 게임의 규칙에 따라, 대진운에 따라 우승자는 바뀔 것이다. 여성 참가자도 다수였던 만큼 여성의 신체 능력을 고려한 게임이 더 많았다면 좋았을 것이다. 몇 가지 아쉬움이 있지만 <피지컬 : 100>은 신체의 한계를 시험하는 일은 숭고하고 아름답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달리기든, 필라테스든, 축구든, 웨이트트레이닝이든 자신의 몸에 말을 걸어보자. 때론 속삭이고, 때론 화난 듯 소리 질러보자. 평생에 걸쳐도 <피지컬 : 100>의 참가자가 될 수는 없겠지만, ‘고통의 기쁨’을 느낄 수는 있다. 이런 형용 모순은 오직 스포츠의 세계에서만 가능하다.